— 별명 하나에 마음을 담는 일
우리 집 개 만두의 별명은 ‘스토커’다.
내 주변을 늘 맴돌고,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문 앞에서 조용히 보초를 선다. 이쯤 되면 스토커보다는 ‘보디가드’라는 별명이 더 어울릴 법도 한데, 나는 왜 굳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을까.
생각해보면 별명이란 게 꼭 좋은 마음에서만 붙는 건 아니었다.
어릴 적 우리는 키가 크면 꺽다리, 작으면 난쟁이, 마르면 멸치, 통통하면 뚱땡이. 서로의 다름을 웃음거리 삼아 부르며 자랐다.
그 시절의 기억이 남아서일까.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지켜주려는 우리 만두에게도, 나는 습관처럼 ‘스토커’라는 이름을 붙여버렸다. 사실 그 애는 그냥 나를 좋아할 뿐인데 말이다. 내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르고 싶은, 지극히 충성스럽고 다정한 마음 때문일 텐데.
어릴 적 나의 별명은 ‘나방’이었다. 이름에 ‘나’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꽃을 찾는 ‘나비’가 아니라 밤을 헤매는 ‘나방’이 됐다.
큰언니는 ‘송충이’, 작은언니는 이름이 ‘우리’라서 ‘돼지우리’. 그땐 그저 웃기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서운하면서도 귀여운 별명들이다.
결혼 후에는 남편을 장난스럽게 ‘돼지야’라고 불렀고, 남편은 답장처럼 나를 ‘참새야’라고 불렀다.
그렇게 우리는 가볍고 아무렇지 않은 이름들 사이로 일상을 흘려보내 왔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별명에도 마음이 묻어난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부르는 말이 하나둘 쌓여 결국 관계의 얼굴이 된다는 것도.
그래서 나는 이제 사랑하는 존재들을 기능으로 부르지 않으려 한다. 성격으로, 역할로, 혹은 짓궂은 습관으로 이름 붙이지 않으려 한다.
고민 끝에 결심했다.
만두에게는 ‘스토커’ 대신 ‘보디가드’. 나를 늘 따라다니는 이유는 집착이 아니라 사랑이 담긴 경호이니까.
그러고 보니 나는 이미 그 연습을 아들들에게 하고 있었다. 나는 아들들을 부를 때 언제나 사랑을 듬뿍 담아 ‘이쁜이들’이라고 부른다.
말을 잘 들어서도 아니고, 무언가를 잘해서도 아니다. 그저 존재 자체가 예쁘기 때문이다.
오늘도 문 앞을 지키며 꼬리를 살랑이는 만두에게 살짝 웃으며 말해본다.
“보디가드야, 이제 그만 쉬자.”
꼬리를 한 번 더 흔들고, 세상에서 제일 든든한 내 보디가드는 내 발끝에 코를 묻고 잠이 든다.
부르는 이름 하나 바꿨을 뿐인데 마음이 먼저 다정해진다.
아마 사랑이란 건, 상대에게 줄 가장 예쁜 이름을 고심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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