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잔상 : 사랑은 떠났고, 인연은 남았다

뱅글이 안경 쓴 소녀가 받은 뒤늦은 선물

by 숨나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내 친구도 믿었기에…”


90년대 중반, 거리마다 흘러나오던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에 모두가 열광할 때, 나에게 그 노래는 처참하고도 아련한 현실이었다.


​여학교만 다녔던 나는 대학에 가면 뱅글이 안경을 벗고 근사한 연애를 할 거라고 꿈꿨다.

동아리에서 만난 그는 다소 반항적이었지만, 내 눈엔 그저 위험해서 더 매혹적인 첫사랑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된 연애. 하지만 그 설렘은 딱 한 달 만에 비참한 이별로 끝났다.


​알고 보니 그는 내 친구와 사귀고 있었다.

나만 빼고 모두가 알고 있었던 공공연한 배신.

그는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다고 했다.

늘 데이트 도중 먼저 집에 가버린 게 이유였다.


사실 그때 나는 너무도 가난했다.

일본으로 돈 벌러 간 아빠는 딴살림을 차려 송금을 끊었고, 엄마 홀로 오남매를 키워야 했다.

데이트 비용도, 술 마실 여유도 없던 나는 그저 서둘러 집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 빈틈을 타 술에 취한 내 친구가 그에게 고백했다.


“사실 나도 너 좋아했었어.”


그렇게 나의 첫사랑은 가난이라는 벽 앞에서 사치가 되어 부서졌다.


​분노보다 무서웠던 건 상실감이었다.

나는 바보처럼 그 둘을 함께 만났고, 그녀마저 잃고 싶지 않아 다 같이 친구로 지내자고 했다.

그게 기뻤는지 그들은 나를 노래방으로 데려갔고, 그녀는 엄정화의 ‘하늘만 허락한 사랑’을 열창했다. 여자인 내가 봐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웃으며 박수를 쳤다.


​진짜 비극은 그 다음에 찾아왔다.

배신한 그녀를 향해 친구들의 지독한 왕따가 시작된 것이다. 한 달 동안 우리 셋은 그녀를 유령 취급했다.

처음엔 당연한 업보라 생각했지만, 고립되어가는 그녀가 가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우리 예전처럼 지내자.”


그 한마디로 우리는 다시 친구가 되었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스무 살의 나는 왜 그랬을까.

아마 사랑이, 사람의 온기가 너무나 고팠던 것 같다. 첫사랑은 떠났지만, 그를 빼앗아간 친구마저 잃으면 내 곁엔 아무도 남지 않을 것 같아 그 왜곡된 인연이라도 붙잡고 싶었나 보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그녀는 쉰 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부러울 만큼 사랑스럽고, 가난에 찌들었던 그 시절의 나는 쌍꺼풀 수술을 해서라도 예뻐지고 싶다는 다짐만 되뇌었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 멈춘 정거장에서 얼굴이 일그러진 여자를 보았다. 그녀를 보는 순간, 안쓰러움과 동시에 지독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나는 그래도 남들이 쳐다볼 정도는 아니니...’


타인의 불행을 발판 삼아 나의 비루한 삶을 위로받았다는 죄책감.

그날의 미묘한 감정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나를 숨막히게 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숨 가쁨을 다스리는 법을 안다.

내 곁에는 30년 전 내가 그토록 벗어던지고 싶어 했던 ‘뱅글이 안경’조차 귀엽다고 말해주는 소중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일곱 살이나 어린 내 남편은 아침마다 눈을 뜨면 나를 향해 두 팔로 커다란 하트를 그린다.

“안녕 내 사랑, 잘 잤니? 사랑해.”


​그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깨닫는다.

쌍꺼풀 수술을 고민하며 눈물짓던 소녀의 결핍도,

타인의 불행으로 위로받으려 했던 치졸한 죄책감도,

결국 사랑이 고팠던 어린 날의 그림자였음을.


이제 그 그림자는 매일 아침 남편이 건네는 찬란한 사랑의 인사 속으로 조용히 흩어진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척’하지 않아도 온전한 나로서 충분히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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