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다음날 아침은 해가 뜨기도 전에 피사의 사탑을 보러 집을 나왔다. 정말 빽빽한 일정이었다. 피사의 사탑을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더 기울어져 있어 신기했다. 쓰러질 것 같은데 5.5도 기울어진 채 안 쓰러지는 모습이 놀라웠다. 피사의 사탑에서 찍을 수 있는 사진을 모두 찍어봤다. 피사의 사탑 손으로 말기, 팔로 안기, 발로 차기, 아이스크림 콘에 담기 등등 무엇보다 여기서 처음어로 4명이서 단체 사진을 남겼다. 사진을 찍다가 급하게 달려서 역으로 다시 기차를 타러 갔다.
이후 베니스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탑승했다. 버스 자리를 외국인 아저씨 옆에 앉았는데, 자꾸 조는 바람에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몇 번 기울어졌다가 일어나고, 다시 기울어지는 것을 반복하자 아저씨가 나한테 영어로 말을 걸었다.
“내 어깨에 기대서 자도 돼. 괜찮아.”
그 말을 듣고 아저씨께 너무 고마웠지만, 모르는 외국인 아저씨 어깨에 기대서 잘 수는 없었다. 정중하게 사양하고 바른 자세로 잠을 자려고 노력했다. 아저씨의 말을 들으며 생각한 건 한국에서는 이렇게 먼저 어깨를 빌려주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은데 외국은 다르다는 점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졸고 있으니 어깨를 빌려주겠다고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엄청난 호의라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말을 했다간 이상한 눈초리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외국의 이런 자유롭고 적극적인 문화가 마음에 들었다.
다음 날은 온전히 베네치아를 위한 날이었다. 하루 종일 베네치아에 있을 수 있었다.
우리는 ‘Trattoria Bar Pontini’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기서도 강이 보이는 야외석에 자리를 잡았다. 해물파스타와 고기, 뇨끼를 주문했는데, 난생처음으로 여기서 뇨끼(Gnocchi)를 먹었다. 노란색이 돌고 크림소스가 묻혀진 뇨끼는 쫀득쫀득한 떡 같은 느낌이었다. 말랑말랑 너무 맛있었다. 또 이 식당은 고기를 정말 잘한다. 야들야들 부드럽고 쉽게 잘라진다. 다만 해물을 원래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해물파스타의 비린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또 원래 날씨가 정말 흐렸는데, 점심을 먹다 보니 구름이 점점 걷혔다. 그리고 햇살이 들면서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베네치아 시작이 정말 좋았다.
베네치아는 수상버스라는 교통수단이 있는데, 말 그대로 물을 가르는 작은 배 느낌이다. 베니스는 경찰차도 구급차도 택시도 모두 물을 통해 배로 다닌다고 한다. 특히 하늘이 파랄 때 물 가운데로 수상버스를 타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낮도 아름답지만 노을질 때나 밤에 수상버스에서 보는 베네치아의 풍경은 정말 환상적이다. 수상버스를 안 타려고 했지만 안 타면 평생 후회했을 그런 풍경이었다.
베니스는 가면무도회로 유명해 기념품점 곳곳에 가면을 판다. 들어보니 베니스에서 처음 가면무도회를 시작했다고 한다. 예쁜 가면을 많이 팔고 있었다. 또 기억나는 베니스 기념품은 바로 피노키오인데, 정말 피노키오를 활용한 다양한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날이 흐려지기 전에 파란 하늘이 있을 때 곤돌라를 타기로 했다. 곤돌라 아저씨에게 가격을 물어보니 40분에 120유로라 해서, 가격이 비싼 것 같다고 생각해 우리는 안 탄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가격을 120유로에서 100유로로 깎아주었고, 그렇게 100유로를 지불하고 곤돌라에 탑승하게 되었다.
우리는 곤돌라를 타면서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배경이 바뀔 때마다 셔터를 눌렀다. 인생샷을 건지겠다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처음에는 곤돌라 가격이 저렴하지 않아서 탈지 말지 고민이 되었었는데, 곤돌라를 타자마자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물길을 따라 둘러보니 골목골목의 풍경이 모두 환상적이었다!
곤돌라 아저씨는 배 뒤쪽에서 서서 노를 저었다. 중심을 잡고 원하는 방향으로 노를 저어 우리를 안내하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
곤돌라를 타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니 어느새 어두워져서 다시 수상버스를 타고 넘어갔다. 이때 탄 수상버스는 밤에 탄 수상버스라 느낌이 또 달랐다. 어두운데 건물들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수상버스는 천장이 없고 물이 바로 앞에 보이기 때문에 마치 내가 물을 가로지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마치 유람선을 계속 타는 느낌이다.
다음 날은 바로 비행기를 타고 오빠와 스페인 하엔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나머지 친구들은 스위스까지 여행을 하는 일정이었고, 오빠와 나만 조금 일찍 스페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우리는 숙소가 달라서 나 혼자서 공항으로 출발했는데, 중간에 오빠가 지금 일어났다며 빨리 가겠다는 톡이 왔다. 공항에서 수화물 접수 후 오빠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저쪽에서 걸어오는 오빠가 보였다. 공항이 꽤 넓었는데 연락 하나 없이 날 찾은 오빠가 신기해서 오빠에게 질문했다.
“어 오빠! 나 어떻게 찾았어?
“공항에서 제일 예쁜 사람 찾았지”
오빠의 대답을 듣고 속으로 놀라서 대답이 잘 나오지 않았다. ‘예쁜 사람? 이 오빠 뭐지?’하고 생각하다가 함께 비행기 시간이 되어 탑승수속을 하러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비행기 타는 걸 굉장히 무서워했다. 포르투갈 갈 때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려서 비행기 탈 때마다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생겼다.
베니스-마드리드 비행기를 탈 때도 비행기가 떨어지면 어떡하냐고 오빠한테 걱정을 말했는데, 오빠가 갑자기 가방에서 카드 하나를 꺼내서 나에게 주었다. 밀라노 대성당이 보이는 스타벅스 입체 카드였다.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까 오빠가 지난 10월 밀라노 여행을 갔을 때, 내 생일인 게 생각나서 샀던 카드라고 말했다. 이 카드 보면서 가면 덜 무서울 거라고 했다.
오빠 말을 듣고 카드를 나에게 줄려고 가져온 오빠도 그렇고 이 카드 보면 안 무서울 거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오빠에게 너무 고마웠다. 또 나를 생각해서 카드를 몇 달 전에 샀다는 것에 웃음이 나왔다.
처음으로 오빠가 나한테 관심 있나? 하고 생각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