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모 – 드라마
1995년의 일. 나는 ‘국민학교’ 6학년이 되기 직전이었고, 그때는 아마도 겨울방학이거나 봄방학이었지 싶다. 서울 성내동에 살던 ‘서울 이모’가 ‘분당’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고 하여 부모님과 놀러 갔었다. 이모의 큰딸은 서울대 경영학과인지 경제학과인지를 들어갔다고 했는데, 과외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도 벌고 하얀색 현대 엘란트라를 살 정도로… 여하튼 대단했다.
누나는 오랜만에 만난, 멀리서 놀러 온 한참 어린 동생이 반가웠는지 “누나랑 드라이브할까?”라며 아직 새 차 냄새가 나는 승용차의 조수석에 나를 태워주었다. 일요일 아침이었다. 안개였는지 비가 막 그친 다음이었는지, 차창 밖이 희뿌연 바람에 대단히 눈에 보이는 것도 없었지만 넓고 쭉 뻗은 대로를 막힘없이 달리는 느낌이 좋았다.
그러다 빨간불에 걸려 신호를 대기하던 바로 그때쯤 김건모의 <드라마>가 흘러나왔다.
이제 와서 가사를 곱씹어보면 그다지 내가 좋아할 만한 구석이 없는 노래. 레게풍 리듬에 살짝 서글픈 듯하나 발랄하게 멜로디를 얹었고 또 뭐랄까… 좀 통속적인 가사라 반짝거리는 건 김건모의 유니크한 목소리가 거의 다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고. 물론 잘 만든 노래는 맞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그날 내가 본 장면 장면들과 ‘엄마아빠가 열심히 뒷바라지 해주시니 너도 꼭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라’는 누나의 다정한 조언과 깨끗한 차 안의 서늘한 공기와, ‘무슨 동네 이름이 오리이지?’했던 내 생각 같은 것들이 뒤섞여서 좋은 느낌으로 남은 듯하다. 그래서 언제 들어도 좋은 기분을 불러다 주는 것 같다. 어쩐지 네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거 같다는 친구의 제보에 당사자에게 직접 진실을 확인하러 나간 남자의 슬픈 이야기이니까, 분명 슬픈 노래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색깔로도 기억한다. 희뿌연 신도시를 하얀색 차를 타고 달리며 들었으니 내게는 ‘하얀색 노래’이기도 하다. 삼십 년이 훌쩍 지나갔지만, 다른 기억들은 가물가물하지만,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그 날의 하얀 장면들이 떠오른다. 또 좀 억지 같지만 <드라마>가 수록된 김건모의 3집 앨범 커버도 하얀색 바탕이다.
엉뚱한 이유지만 어찌 보면 정말 순수하게 좋아하는 노래. 가수의 창법이 어떻다거나 노래 간주 중의 어떤 악기의 연주가 심금을 울린다거나 그런 이야기는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에 없다. 새 차를 타고 새로난 거리를 달리며 좋은 이야기를 나눴던 좋은 기억에 함께 한 노래라 지금도 좋아한다. 다만, 이런 이유로 좋아하는 또 다른 노래도 없는 듯하다.
꼬장꼬장한 아저씨가 된 요즘 들어선 앨범 트랙 리스트 상에서 <잘못된 만남>보다 먼저 이 노래가 위치하는데, 이야기의 맥락을 보면 이 노래 <드라마>가 <잘못된 만남> 다음에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기획자의 의도가 <잘못된 만남>의 예고편으로 <드라마>를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살펴보면 앨범 발표 당시 <드라마>는 3집 발매에 앞선 선공개 곡이었고 <잘못된 만남>은 앨범 발표할 때까지도 크게 메인으로 쓸 생각은 없었다고 하던데 모르지. 앨범 발표 후 입소문을 타고 크게 히트하게 되었다는 말도 잘은 모르겠다. 내겐 크게 상관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