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후 폐백 때 시어머님이 대추와 밤을 던져 주시며 "셋 낳으면 창피하다! 딸이든 아들이든 둘만 낳아라!" 하셨습니다.
불과 36년 전인데 셋은 창피하다고 둘만 낳으라는 시어머님 말씀.
그중에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없이 둘만 낳아라 하셔서 우리 어머님은 남아선호가 없으신 멋진 분이구나 생각했습니다.
27개월 터울로 딸 둘을 낳았습니다.
첫째 딸을 낳으니 시어머님은 "첫째 딸은 살림 밑천이다." 라며 좋아하셨습니다.
그런데 둘째 딸을 낳고 병원에 누워있던 나에게 남편의 연락을 받은 시어머님은 오시자마자 "하나 더 낳아라!" 하셨습니다.
둘째가 아들이 아니어서 그러신 거였습니다.
셋은 창피하다고 폐백때 하신 말씀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던 나는 속상한 마음에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도 시어머님의 푸시는 있었지만 다행히도 남편이 모두 차단했습니다.
그렇게 딸딸이 엄마가 되었습니다.
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면 '딸딸이 엄마네요?'라는 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악의적인 뜻은 아니라지만 나는 그 말이 그리 듣기 좋지 않았습니다.
'딸들을 보란 듯이 키우자!'
보통 딸 둘이 있는 집들을 보면 많은 집이 재잘재잘 딸들의 수다로 분위기가 화목합니다.
우리 집도 그렇습니다.
딸들이 어릴 적 아빠가 퇴근하면 집이 떠나가라 소리 지르며 달려가 안기고 그러면 아빠는 둘을 교대로 비행기 태워 몇 바퀴씩 돌리고 나서야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습니다.
아빠와의 유대가 좋은 딸들은 정서적, 인지적, 사회적 발달 형성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학창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된 지금도 아빠와 딸들은 여전히 얘기가 잘 통하고 술 한잔 하며 허심탄회하게 고민도 상담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큰딸과 작은딸은 2학년 터울로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활발한 큰딸은 임원도 많이 하며 적극적인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소극적인 작은딸은 어쩌다 외식하러 식당에 가면 '물 주세요~'를 못하고 엄마 등 뒤에 숨을 정도로 부끄럼 많고 조용조용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던 작은딸이 고등학교 다니며 엉뚱한 행동으로 놀라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전화로 "집에 무슨 일 있으신가요? ㅇㅇㅇ이 자율학습시간에 없어졌습니다!"
"네? 아무 일 없는데요?"라고 대답하고 찾아보겠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작은딸에게 전화하니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되어 회사에 얘기하고 집으로 부리나케 가보니 작은딸이 떠억 소파에 누워 있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냐며 작은딸을 채근하니 학창 시절에 뭔가 추억거리를 만들려고 탈출했다는 어이없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소극적인 성격으로 소심한 반항을 하던 작은딸이 지금은 적극적인 성격과 열정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많은 학생들 앞에 강의를 하고 있으니 그 노력이 대견합니다.
맏이답게 속 썩이는 일 없이 잘 자라서 다정하고 멋진 남편 만나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가고 있는 큰딸.
지금은 누구보다 큰 열정을 품고 적극적으로 자기 삶을 개척해 가고 있는 작은딸.
손자가 많았음에도 또 손자를 원하셨던 시어머님도 나중에는 "너희 집이 제일 재밌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예전에 딸 둘 낳으면 80점, 아들 낳고 딸 낳으면 100점, 딸 낳고 아들 낳으면 200점이라고 놀리셨던 분들 요렇게 잘 큰 딸들을 둔 딸딸이 엄마는 앞으로 점수로 매길 수 없는 재밌고 행복한 삶을 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