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ydia young
Jul 22. 2024
어느 날 세수하고 고개를 들어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나는 흠칫 놀랐다.
어느새 나이가 든 내 얼굴엔 낡은 앨범 속에 있던 엄마의 오래된 사진 속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랑 얼굴이 많이 닮았다.
나의 부모님은 부지런하셨다.
4남매를 먹이고 키우려니 당연히 일찍 일어나셔야 했겠지만 새벽부터 일어나 움직이시는 부모님 덕분에 학창 시절에도 아침마다 두 분의 부산한 움직임에 일찍 일어나게 되어 아침밥은 제대로 꼭 먹고 다녔었다.
그 이른 아침에 4남매 도시락에 아침상까지 차리려면 도대체 엄마는 몇 시에 일어나셔서 준비를 하셨을까 싶다.
우리 4남매는 아침마다 일찍 깨우시는 아버지를 너무 미워했다.
사실 아버지는 초저녁 잠이 많으셔서 저녁 9시 뉴스만 끝나면 TV를 끄고 주무시러 들어가셨다.(9시 이후에 주말의 명화 등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시작되는데 말이다!)
요즘처럼 방마다 TV를 놓고 사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아버지가 주무시러 들어가시면 아버지 깨실까 우리도 강제 취침을 하러 방으로 밀려들어가게 되기 일상이었다.(그런 숨 막히는 분위기 덕에 난 결혼을 빨리 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지금 TV를 맘대로 보게 해 주는 남편을 만나 내 방, 딸 방, 거실에 각각 TV를 놓고 자유롭게 보고 싶은 채널을 맘대로 보며 자유롭게 살고 있다!) 가끔은 아버지가 깊은 잠이 드시길 기다렸다가 살금살금 거실로 나와 저녁에 하는 재밌는 프로그램이나 주말의 명화 등을 볼륨을 최대한 낮추고 숨죽이며 보기도 했었다. 혹여 아버지의 인기척이라도 있으면 TV를 끄고 방으로 쫓겨 들어가기도 일쑤였다.
그렇게 일찍 잠자리에 드신 아버지는 새벽 2시면 일어나셔서 머리맡에 있는 라디오를 항상 트셨다. 엄마는 우리 4남매의 귀가 등 나머지 살림을 마무리하시고 아버지보다 늦게 주무시기에 새벽 2시에 라디오를 켜는 아버지 때문에 늘 잠이 부족하셨다.
그래도 아버지에게 헌신적인 엄마셨다.
새벽에 일어나 독재자처럼 늦게 잠든 엄마는 배려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루틴에 맞춰 라디오를 틀으시고 화초관리를 하시는 아버지의 부스럭 거림에도 엄마는 아버지에게 심하지 않은 투정으로 응수할 뿐 아버지의 일상에 맞춰드리는 삶을 사셨다.
4남매가 모두 결혼하고 두 분만 사실 때도 부모님 집에 가면 여전히 아버지는 새벽 라디오를 켜시고 나름 오랜만에 온 자식들의 아침잠을 배려해 이불에서 일어나 나오진 않으시지만 두 분의 도란도란 나누시는 이야기 소리에 잠이 깨곤 했다. 어려서는 무서운 아버지께 말붙이는게 두려워 아버지를 피해 다녔지만 아버지도 나이가 드시고 귀여운 할아버지, 수다쟁이 할아버지가 되셨다. 새벽에 일찍 잠에서 깨신 아버지는 이불속에서 엄마는 잠결에 듣는 둥 마는 둥 하시는데도 계속 이런저런 얘기들을 계속 엄마께 하셨다. 나는 부모님 댁에서 잘 때면 부모님의 새벽 만담에 잠이 깨서 아버지께 새벽부터 뭔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하시냐며 부드럽게 투정 섞인 말을 했지만 두 분의 정감 있는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지금은 그립다 왜냐하면 작년에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깔끔한 얼굴에 귀여웠던 노년의 모습과 말투까지 지금은 너무 그리운 아버지 생각에 웃음을 짓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금슬 좋으셨던 두 분이었기에 홀로 지내시는 엄마가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도 잘 적응하고 계신다.
백발의 고운 할머니가 되신 우리 엄마, 아버지가 안 계셔도 지금처럼 곱고 예쁘고 건강하게 우리가 닮아갈 모습으로 잘 지내시길 빌어본다.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된 나와 내 남편도 잠이 줄어든 탓에 아침 기상시간이 빨라졌다.
그런데 우리 부부도 아침에 일어나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딸아이가 아빠랑 엄마가 일찍 일어나서 얘기하는 소리에 잠이 깬다는 투정에 내 얼굴에 부모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며 웃음이 나왔다.
남에게 싫은 소리 안 하시고 없는 살림에 바르고 곱게 키워주신 부모님 얼굴에 누가 되지 않게, 두 분의 부지런한 삶과 우리를 사랑하시던 모습을 닮아 나이가 들수록 엄마를 닮아가는 내 얼굴에 두 분의 좋은 인성까지 잘 스며들어 부모님의 모습을 더 닮은 내 얼굴을 그려나가고 싶다.
내 아이들도 내가 그려낸 나의 자화상에 웃음 지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