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포기
보기와 달리 나는 겁이 많다.
살면서 공포영화를 내 돈 주고 본 적이 없고, 놀이공원에 가면 한 번쯤 경험해 볼 만한 귀신의 집 또한 질색팔색하며 극구 거부하고 만다. 남들은 긴장감이 즐겁다던데, 나는 그냥 내 생명이 깎이는 기분만 든다.
개인적으로 호러물이 괴로운 가장 큰 이유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무언가 튀어나온다는 점이다.
(주인공들은 도대체 왜 굳이 열지 말라는 닫힌 문을 열고, 한눈에 봐도 으스스한 건물은 왜 들어가는 것일까)
예상치 못한 등장과 반전은 괴롭다. 나는 계획과 구조화가 중요한 찐찐찐J인 사람이다.
인생사 예측 못할 일 투성이라지만, 약하디 약한 내 담(?)을 위해서는 계획과 대비가 필요하다.
그런 내게 갑상선암과 뇌종양 수술을 했다는 사실은 종종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내 삶을 훅 치고 지나갈 때가 있다. 솔직히, 아직 삶의 경험이 짧은 내게 종종 닥치는 그런 사고는 무섭다.
나는 4년제 간호학과를 졸업했다. 보통 간호학과를 졸업하면 취업걱정은 없을 것이라고들 한다.
처음엔 나도 그 말을 믿고 학교만 다니면 될 줄 알았으나, 졸업이 다가올수록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간호사는 취업보장과 상관없이 3D직업이기에 나는 어느 병원으로 취업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학점이 높은 편이었고, 외국에서 유학한 경험도 있고, 영어 점수도 평균정도는 되었고, 인턴쉽도 잘 마쳐놓았기에 솔직히 남들보다는 여유롭게 취업을 준비했다. 아마 '이 정도면 적어도 내가 원하는 곳에 문 닫고 들어갈 정도는 되겠지' 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취업 시즌을 코앞에 두고, 오만했던 나는 생각지 못 한 복병을 마주했다.
철의 체력을 요하는 대한민국 임상 간호사에게 갑상선암 환자 이력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남들 체력의 반토막으로 살아가는 간호사라니. 곱게 보일리 없었다.
만약 내가 주인이라면 나 역시 비실비실한 노예보다는 건강하고 탄탄한 노예를 고를 것이었다.
게다가 병원 취업인 만큼 면접관 중에는 분명 의료인이 있을 텐데, 내 목의 흉터를 눈여겨보고 질문하면 나는.... 이것은 어떻게 커버 칠 방법이 없었다.
나는 본격적인 취업준비를 시작한 이후로 면접을 마치는 날까지 단 한순간도 흉터가 신경 쓰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당연하지만 면접관들 눈에 망원렌즈가 달린 것이 아니었기에, 목의 수술 흉터가 갑상선 수술 논란으로 번져 면접을 망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면접을 무사히 마쳤고 결국 내가 원하던 곳에 취업할 수 있었다. 결과를 확인할 때, 참 다행이면서도 서러웠다.
지금 당장의 결과는 좋지만,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내가 이번처럼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까 싶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을 평생 디폴트 값으로 가지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좀 서글펐던 것 같다.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나의 간호사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입사 후 3년이 지난 어느 날, 운 좋게 취업에 성공해서 다행이라 여기며 입사했건만, 나는 예상보다 더 한 사약길을 걷다가 끝내 제 손으로 사직서를 쓰게 되었다.
당연하다. 비실비실한 노예는 튼튼한 노예보다 빨리 나가떨어지기 마련이다.
처음 입사할 때 '수술한 것 따위,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아! 나는 이곳에 뼈를 묻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었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임상 간호사를 하기에는 남들과 비교해서 체력적으로 너무나 뒤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퇴사할 당시에는 일단 살고 보자는 마음으로 무작정 병원을 뛰쳐나왔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말이 되지 않았다. 갑상선 호르몬제를 복용하는 사람이 3교대 근무라니. 아무리 부지런히 시간에 맞춰 약을 복용해도 생활패턴이 들쭉날쭉이라면 한계가 있음이 분명한데, 나는 참 무모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서 '좀 더 버텼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만약 내가 악으로 깡으로 더 버텼다간 더 큰일이 닥칠 뻔했기에(뒤편에 자세히 적을 예정) 이제와서는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는 마음이다.
나는 현재 학교에서 보건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갑상선 암 수술 후 규칙적인 생활이 매우매우매우 중요하기에, 지극히 규칙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교사는 나에게 최적의 직업이다.
다만 임상 간호사 시절보다는 내 직업에 자부심이 생기지는 않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아직 병원에서 일하며 대학원에 가거나 여러 실적을 내고 있는 동기들을 보면 가끔 부럽기도 하다.
비록 보건교사로서의 나는 100% 만족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전문적이며 규칙적이고 소소하나 꾸준한 급여가 나오기에, 여기서 감사하려 노력하고 있다. 지금의 내 모습도 괜찮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어"
지독히 현실적인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의 내가 수술이력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마주할 때마다 떠올리는 문장이다.
한 때는 이것이 '신포도 기제'인가 싶었다.
[※신 포도 기제 :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갈등과 부정적인 현실을 마주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회피하는 방어하는 기제(예를 들면, "어차피 안될 일이었어, 안 해!")]
그러나 병원을 퇴사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지금보다 더 악화된 건강상태로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이라면 내 삶에서 배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포기'는 미덕이 아니라고 배운다.
그러나 갑상선 암 그리고 뇌종양 수술 후 생존자로서 가끔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적당한 선에서 물러날 줄 아는 것 또한 대단한 용기임을 나는 이제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