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숨어있을지 모르는 갑상선 암세포를 깨우는 방법
언제부터인가 TV를 보거나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갑상선에 관한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의학전문가들이 패널로 나오는 토크쇼, 의학 관련 다큐멘터리, 갑상선 관련 질환을 앓고 있는 연예인의 이야기 등등... 갑상선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아지는 까닭은 아마도 우리 주변에 갑상선 호르몬 문제로 크고 작은 고민을 가진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갑상선 호르몬은 체내 대사(영양분을 분해하고 합성하면서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고, 그 외 부산물을 배출하는 과정)와 관련된 작용을 하며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곤 한다. 갑상선 호르몬이 적으면 대사가 잘 되지 않으니 체중이 늘고 붓기가 심해지며, 사람이 반짝이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푸석해지고 늘 지쳐있는 상태가 된다(※극단의 갑상선 호르몬 결핍 상황 : 점액수종). 반면 갑상선 호르몬이 과다해지면 체내 대사가 빨라져서 살이 빠지고 가슴 두근거림, 놀란 토끼눈처럼 안구돌출이 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극단의 갑상선 호르몬 과다 상황 : 그레이브스 병).
예전에 지나가는 이야기로 어떤 갑상선 호르몬 과잉증 환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갑상선 호르몬 과다 상태에 놓이자 별 노력 없이 살이 쭉쭉 빠지는 것을 너무 기뻐한 환자는 굳이 병원에 가지 않고 있다가, 끝내 심장 박동수에 문제가 생겨 합병증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갑상선 호르몬이란 부족해도 안되지만 과다해도 안 되는,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갑상선 전절제술을 받은 환자로서 팔방미인인 갑상선 호르몬을 스스로 만들 수 없게 된 것은 참 아쉬운 일이다.
암세포를 없애는 방법은 물리적으로 절제(수술)를 하거나 화학요법으로 죽이거나(항암) 방사선으로 죽이는(방사선 치료)것이 있다. 방법이 어찌 되었든 갑상선 암 환자가 급성기 암 치료를 끝내면, 없어진 갑상선을 대신하여 외부에서 호르몬제를 보충해 주는 치료법이 평생 이어진다.
이때 씬지로이드라고 불리는 갑상선 호르몬제의 평생 복용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째, 없어진 갑상선을 대신하여 갑상선 호르몬을 공급하는 것. 둘째, 남아있는 갑상선 암세포가 자극을 받아 증식하지 않도록 하는 것. 과거의 나는 첫 번째 이유가 전부인 줄 알고 날뛰는 생활을 하다가 담당 교수님으로 부터 레드카드를 받았던 적이 있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 사건에 대한 것이다.
우리 몸은 무언가 부족해지면 어떻게든 쥐어짜 내서 살아가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갑상선이 없어졌다고 해서 이 호르몬까지 필요 없다고 인식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부족하면, 쥐어 짜내고야 만다. 몸이 호르몬을 갈구하며 허덕이기 전에 규칙적으로 외부에서 호르몬제를 공급해 주면, 그 사람은 여타 다른 일반인과 똑같이 잘 먹고, 잘 싸며, 잘 움직이고, 잘 잘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만약 갑상선 전절제술 이후 호르몬제를 잘 복용하지 않는다면 우리 몸은 갑상선 호르몬 기아상태에 빠져 허덕이게 되고, 남아있는지 없는지 모를 갑상선 잔여 세포에게 왜 일하지 않느냐고 닦달하기 시작한다. (※암치료로 갑상선을 없앴다면서 갑상선 세포가 왜 남아있냐고 묻는다면 곤란하다. 아무리 의학이 발전했어도 아주 작은 갑상선 세포 전부를 모조리 없앴다고 장담할 수 없다.) 뇌에서 TSH(갑상선 자극 호르몬)를 방출하여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는 갑상선 세포를 찾아내는 것이다.
문제는 TSH(갑상선 자극 호르몬)가 간신히 숨만 쉬며 웅크려있는 갑상선 암세포를 자극시켜 이놈이 다시 깨어나게 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갑상선 암세포가 증식한다는 것은 곧 '재발'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갑상선 호르몬제(씬지로이드)를 복용한다는 것은 부족한 호르몬을 공급해 주는 것에 의의가 있지만, 암의 재발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과거의 나는 호르몬제를 '보충'하는 것에만 꽂혀, 두 번째 목적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간호학 전공을 하고도 왜 한 가지만 알고 무지하게 굴었는지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어쨌든 그러한 까닭에 삼 교대 근무를 하면서 나의 생활리듬에 맞춰 오전에 눈을 뜨면 약을 먹고, 오후 밤늦게 취침 전 호르몬제를 먹으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내 생활패턴에 맞게 밥 먹고, 활동하는 것에 필요한 호르몬을 보충하는 것이 호르몬제 복용 목적의 전부인 줄 알았으니까,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데이 근무일 때는 오전 5시, 이브닝 근무일 때는 오전 10시, 나이트 근무일 때는 퇴근 후 7시에 약을 복용했다. 불규칙적인 약물 복용은 체내 약물 농도 유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당연히 나의 몸은 호르몬 기아상태에 빠졌다.
내 몸은 호르몬 기아상태에 빠졌음을 알리는 경고장으로 '탈모 증상'을 선보였다(?). 나는 총 3번의 탈모증상을 경험했는데 첫 번째는 수술 후 1년이 되지 않아서, 두 번째는 삼 교대 일을 하다가, 마지막으로는 임용고시 시험 직후였다. 나의 경우 갑상선 호르몬의 평균 농도가 심하게 흔들릴 때마다 머리가 빠지는 것이 시그널이 되어주곤 했다. 어느 날 휑해진 머리를 발견하자마자 놀라서 혈액검사를 해보니 약물 조정이 필요할 만큼의 변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TSH 급상승, 평균적인 갑상선 호르몬 농도 매우 결핍 상태). 병원에 입사한 지 3년 차, 앞머리가 듬성듬성 빠지는 것을 본 나는 내 몸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길로 병원 탈출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해, 임용고시 2차 면접을 앞두고 병원에 방문했던 나는 교수님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지금 이 정도면, 재발에 준해서 신경 써서 관리해야 해요. 다행히 CT나 초음파에서 뭐가 보이지는 않아서 재발이라고 판단하긴 어려운데, 이상하게 어디선가 호르몬이 자체적으로 나오네요. 약 잘 먹고 있는 거 맞죠?"
그전까지는 '뭔가 몸이 안 좋구나'정도만 생각했던 내게 많이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갑상선 암도, 재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왜 나는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어쩌면 나는 자만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간호사이고, 내 몸에 관한 증상과 치료법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잘 알고 있으니까 무엇이 걱정이냐- 하는 태도였던 것 같다. 게다가 내가 만났던 환자들은 갑상선암 이상으로 훨씬 힘들고 아픈 질환을 이겨내고 있었고, 그들을 보다 보면 나에게 주어진 상황은 별것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자만했고, 비겁하게 그들과 비교하면서 위안을 얻었다. 그래서 잘 알지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만하게 일상을 살았다. 애매하게 아는 사람이 일을 크게 그르친다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말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2019년 1월의 어느 날, 나는 내 무지함의 댓가를 정통으로 맞았다.
큰 충격에 빠진 나는 그날부터 약 먹는 시간 알람을 설정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숨어있는 갑상선 세포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면 호르몬 농도의 유지가 중요했다. '대충 몇 시 즈음 먹어야지'가 아니라 '몇 시 몇 분에 먹어야지'가 되면 호르몬 농도가 일정해질 수 있다. (나는 휴일에도 알람 시간에 맞춰 약을 먹고, 다시 잔다.) 매일 일정 시간에 맞춰 약을 복용한다는 것은 의외로 매우, 굉장히, 대단히 귀찮고 번거롭지만 갑상선 암 수술 후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에게는 선택지가 없다.
나는 복용 시간 관리에 그치지 않고 나의 체중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평생 몸무게로 스트레스받아본 적이 없는 나는 처음으로 체중 관리라는 것을 시작했다. 갑상선 호르몬이 체내 대사를 관장하고 있는 만큼 급격한 체중변화가 생기면 약물 적정 용량 수준이 변할 수 있다. 특히, 엄중한 경고를 받은 나로서는 약물 요구량이 바뀌는 것은 좋지 않기에, 늘 일정 수준의 몸무게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혹시 몸무게가 급격히 빠지거나 늘어났다면 약물 용량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려는 목적도 있다.)
마지막으로 갑상선 호르몬제는 흡수율이 좋지 않은 편이기에 공복에 먹도록 식사 시간을 조절했다. 아침 알람에 맞춰 일어나자마자 약을 먹고, 가급적이면 30분간 공복상태를 더 유지해서 내 몸이 잘 흡수할 수 있도록 식사 시간에 여유를 주었다. 바쁜 출근시간, 약을 먹은 뒤 밥 먹을 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으면 간단하게 아침밥을 싸서 출근한다. (※덧붙이자면, 나는 아침 식사 후 먹는 영양제 중에서는 유산균을 제외하고 있다. 유산균 복용이 갑상선 호르몬 흡수율에 영향을 주니 같이 복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오늘날의 나는 감사하게도 규칙적인 삶을 살 수 있는 학교로 이직하여 내 건강관리에 온 마음을 쏟고 있다. 알람을 맞춰 약을 먹고, 가능하면 기상-취침시간에 변화가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 매주 수영을 다니면서 적당히 체력 단련도 하고 몸무게도 조절 중이다. 그 덕분에 처음 교수님으로부터 경고를 받을 때 보다 혈액 수치가 훨씬 안정되었다. 요즘 나는 해가 뜰 때 일어나고 해가 질 때 잠을 잘 수 있는 단조로운 생활이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큰 치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상황에 익숙해지다 보면 사람은 쉽게 긴장을 풀어버리는 것 같다. 그리고 익숙하다고 생각하며 잠시 눈을 돌리는 순간, 어김없이 사고는 발생한다. 내 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성질환 관리가 어려운 이유는 일상의 사소한 건강관리 습관이 무뎌지지 않게 꾸준히 의식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 과정은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일상으로 비치곤 한다. 그러나 한 번 대위기 직전까지 갔던 나는 이 사소한 생활습관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안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고층빌딩을 유지할 수 없듯이, 가장 사소한 일상 습관을 바지런히 유지할 때 건강한 나를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을 나는 꾸준히 되뇌며 살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