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호흡으로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커다란 상실(비극)을 겪을 때 보편적으로 다음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부정 - 분노 - 협상 - 우울 - 수용"
대학생으로 한껏 자유를 누리던 내게 뇌종양 수술은 억울함과 분노 그 자체였다. 그러나 속수무책으로 생명이 아스라 져가는 중환자실의 광경은 꽤나 충격적이었고, 이내 나의 '화'는 깊은 내면에 가라앉아버렸다.
그저, 묵혀져 버렸다. 해소되지 않은 채.
정말 다행히도 나의 뇌종양은 등급이 가장 양호한 종양(별아교 세포종, Pilocytic astrocytoma)이었기에 절제술 이후 추가적인 치료는 필요하지 않았다. 머리통을 열기만 하면 되는 깔끔한(?) 수술이었고, 나는 어떤 후유증도 없이 빠르게 회복했다.
첫 증상이 시작된 것은 종강을 앞둔 즈음이었고 최대한 빠른 일정으로 수술했기에, 회복과정 마지막 단계로 실밥을 제거하고 나니 어느덧 2학기 개강을 앞둔 여름방학 끝자락이었다.
내가 일부러 뒤통수 흉터를 드러내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내가 8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했다고 알기 어려웠다. 머리카락으로 요렇게, 저렇게(?) 잘 가리면 감쪽같았다.
외관상 티 나는 게 별로 없다 보니, 수술 후 나의 일상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평범했다.
아무런 불만도, 충격도, 우울도 없는 평온한 학교생활이었다.
(※담당 주치의와 교수님은 내게 1년 정도 요양을 권했었다. 그러나 예전에 나는 목을 여닫고도(갑상선 수술) 곧장 학교에 다녔었기에 머리 한 번 여닫은 것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어 그냥 2학기 등록을 했다. 나중에 교수님이 이 얘기를 듣고 웃으시더니 나더러 미쳤다고 하셨다. 후후)
2학기 개강일
"너 괜찮아? 크게 수술했다던데"
"아, 괜찮아. 머리만 좀 휑한데, 별로 티 안 나지?"
친한 친구들이 걱정했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한창 꾸미기 좋아할 스무 살의 나이에 목에는 긴 흉터, 거기에 이젠 머리통에 나사 3개까지 추가한 채 학교를 다니게 되었지만 내 마음은 매우 고요했다.
평범한 일상으로 잘 돌아왔고, 불편함도 없었다. 그것으로 나는 몸과 마음이 모두 회복한 것인 줄로만 알았다.
내 마음의 분노가 잘 해소되어 이제는 정말 건강해졌다고 믿기를 2년, 여름이 되어가던 어느 날.
나는 강의를 듣던 도중에 뜬금없이 울컥 목이 매였다.
강의 주제는 '만성질환자 간호'였다. 아무리 의학이 발전했어도 만성질환자로서 평생 가지고 가야 할 불안, 일상의 번거로움, 포기해야 하는 것들 등에 대한 내용이었다.
놀랍게도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내가 정말 아팠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아... 맞네, 나 약 평생 먹어야 했지 참"
어찌나 당황스러웠던지 그날의 날씨, 강의실 위치, 내가 앉았던 자리, PPT 슬라이드까지 모두 기억이 난다.
그날은 내가 인생 처음으로 갑상선 암 환자, 뇌종양 수술 환자라는 타이틀을 직면한 날이었다.
나는 이때까지 평생 약물을 복용하는 번거로움, 재발에 대한 불안, 암(cancer) 가족력이 주는 공포감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그러니까 내가 병원에서 겪었던 일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본 적이 없었다는 의미이다.
강의 내용은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일순간 내 현실로 파고들었다.
그날, 나는 학교 일정을 마치고 집에 가던 길에 힘이 빠져 주저앉아 혼자 펑펑 울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혼자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참 이상한 여자로 보였을 것 같은데. 뭐...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진정이 안 됐으니까.
건강이란 정신, 사회, 신체적으로 안녕상태에 도달한 것을 뜻하므로 단순히 병에 걸렸다고 해서 '불건강'으로 보기 어렵다. 수술을 했든 말든, 약을 먹든 말든, 나의 하루가 안녕했다면 불건강한 것이 아니다.
이론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잔뜩 불안에 잠식된 사람에게 이론적 근거를 가져다 대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는 앞날이 창창한 20대인데 이런 나를 누가 사랑해 줄까, 이런 내가 남들 도움 없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내가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이런 내가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혹시 내가 또 다른 암에 걸리면 어떡하지, 그래서 내가 가족들보다 먼저 죽으면 어떡하지, 혹시 내가 아팠던 사실 때문에 취업을 못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 '
물음표 살인마, '혹시'의 연속.
정확히 그날 이후로 나는 한동안 무언가 열심히 할 수가 없었다. 집중도 되지 않았다. 허탈한 감정뿐이었기에 무얼 해도 힘이 나지 않았다. 반짝 재미있는 순간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우울한 사람에게 '힘내'라고 이야기해 봐야 소용없고, '자꾸 부정적이게 생각하지 말고 좋은 면을 찾아봐'라고 조언해 봐야 쓸모없다는 것을 나는 몸소 체험하며 깨달았다.
우울한 감정이 해소되려면 내 감정을 잘 수용하거나 원인을 없애면 된다. 그러나 나는 하루아침에 뚝딱 현실을 받아들일 만큼 대단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우울의 원인인 '수술한 내 몸'은 말 그대로 내 몸이니 없애버릴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몸만 커다란 스무 살 애기(?)였기에, 해결방법을 찾기보다는 그 감정을 온몸으로 맞으며 버텼던 것 같다.
마음의 회복은 아주 느리게, 스스로 의식하지 못할 만큼 천천히 이루어졌다.
집중이 잘 되지 않고 멍하게 가라앉아 있기를 1년, 원래의 심리선으로 돌아오기를 1년이 걸렸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벼락같이 '아, 이제는 스스로를 받아들여야지!'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그냥 하루하루 살다 보니, 이런 몸이더라도 남들과 다르지 않게 잘 살아졌다.
시간 맞춰 약을 챙겨 먹는 것이 귀찮아도, 남들 체력의 반토막으로 살아도, 베개가 없으면 나사 때문에 뒤통수가 배겨 잠을 못 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대단히 힘든 일상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서서히 인정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신경 쓰고 조심하는 것이 더 이상 번거롭지 않은 일상이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을 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정상, 비정상의 구분 없이 그저 나라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
현실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속도와 비례해서, 나의 마음은 아주 천천히 정상궤도로 돌아왔다.
상실(애도 과정)의 끝은 수용에 도달하여 해소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에 의하면, 마지막 단계 '수용'이란 부정적 감정이 없어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이 현실을 직시하고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ex_그는 죽었고,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이제 나도 내 삶을 살아야지.)
마음에 크고 작은 물결이 잠잠해지고 고요해지는 순간 말이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서서히 '수용'에 도착한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도착지가 정해지지 않은, 끝없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도착한 것인지, 아직도 받아들이기 위한 여정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이제 나의 건강상태에 오로지 감정만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이제는 잔잔해진 내 마음에 비친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른 아침 한 손에 커피를, 목에는 흉터를, 뒤통수에는 나사 3개를 달고 출근하는 30대 직장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