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합기도 합숙캠프에 보내고,
“잘 다녀와, 내일 만나”
가벼운 인사를 건네고는 그대로 집에 들어왔다.
식탁은 이미 초토화.
나는 앞치마만 겨우 벗은 채 침대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대로, 까무룩 잠에 들었다.
신랑은 일로 나갔고,
나는 열 시가 다 되어 깼다.
집은 캄캄했고, 주방은 난장판이었다.
휘청 거리며 겨우 몸을 일으켜
정리를 시작했다.
그런 적이 있었다.
무기력에 잠식되어
그 무기력에 잡아먹힌 시절.
깨어 있어도 깨어 있는 게 아니었고,
눈만 감고 싶었고,
현실이 달갑지 않았다.
틈만 나면 눕고 싶었다.
눈을 감아, 현실을 잠시라도 외면하고 싶었다.
신경안정제의 부작용이
그 마음을 더 깊게 만들었다.
아침엔 졸음이 쏟아지고,
출근해서도 자고 싶었다.
집에 돌아오면
밥만 차리고 그대로 잠들었다.
밤 10시쯤 일어나
숙제, 목욕, 재우기
그게 나의 하루였다.
주방은 며칠째 방치.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에야
스멀스멀 움직였다.
빨래는 개지도 못했다.
그냥 뒤적거리며 입었다.
그렇게 지내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들었다.
지난 시간을 후회했고,
아이들을 제대로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계기는 없었다.
그냥, 정신이 든 거였다.
그런 생각에 잠겨
주방 정리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나도 씻고,
빨래를 개려던 참에 문득 깨달았다.
오늘이 불금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없는 이 시간이
내게는 황금 같은 시간이라는 사실을.
그냥 잠들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들었다.
안주를 찾아보았지만
도무지 마땅한 게 없었다.
때마침 신랑의 메시지,
“통닭이랑 닭똥집 주문했어, 간단하게 한잔 하자!”
“오예!”
이런 게 찰떡궁합이라고 하나 보다.
신랑과 나는 5년을 연애했고,
결혼하고 나서 더 좋아졌다.
삶의 결이 비슷하고
대화가 잘 통한다.
신랑과 대화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말을 고를 필요도,
조심할 필요도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로
마음껏 떠들 수 있는 사람.
그게 신랑이다.
말의 끝이 서로를 향해 닿을 때마다,
나는 깨닫는다.
무너졌던 나의 시간들도 결국, 이렇게 다시 살아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