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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가케인 Aug 27. 2021

02-1. 적시적소에 너를 찾아올 것이다.

02. 안내자(후기)

이 우주는 우리에게 우연이란 언어로 말을 건다.


우주는 내가 아이처럼 길을 잃었을 때 어김없이 희미한 불빛을 보내주었다. 마치 내가 너를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 불빛을 '우연'이라 부르기로 했다.



과거의 난 '우연' 또는 '운'이라는 단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TV에서 성공한 사업가나 연예인들이 언론 인터뷰에서 성공의 이유를 '단지 운이 좋았다'라고 하면 난 피식하고 웃어버리곤 했다.


'너무 겸손한 척하는 군. 세상에 운이 어디 있어. 다 미친 듯이 노력했겠지....'


하지만 지금의 난 그 '우연'이란 단어를 그 누구보다 믿고 있다. 더 나아가 어쩌면 나의 모든 미래는 우연에 의해 좌우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대학 합격 이후로 난 내가 노력해서 얻으려 했던 거의 모든 것들은 실패하거나 포기고 말았다. 반면 노력하지 않고 우연하게 찾아온 사건들은 나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나의 노력은 어린아이의 모래성과 같았고 우연은 그 모래성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파도와도 같았다.


사람과의 인연도 마찬가지였다.

제대 후 진로 고민으로 방황을 하고 있던 나에게 인턴 자리를 제안한 군대 선임.

대학 졸업 후 같은 회사에서 만난 나의 첫 직장상사.


나는 그들이 나의 인생에서 얼마나 큰 인연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적시적소에 나타나 길을 잃은 나에게 안내자가 되어주었다.


안내자들은 우리삶 속에 항상 숨어있다. 영화 속에 감독이 숨겨놓은 이스터에그 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날 이곳에 보낸 그 '존재'는 안내자들로 하여금 날 어디로 이끌려고 하는 것일까?

물론 지금까지도 난 그 목적지를  알 수 없다.

오직 그 '존재'만이 나의 미래를 알고 있을 뿐이다. 아니 어쩌면 나 또한 그 해답을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 단지,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 결말을 아는 영화는 재미가 없겠지'


하나 확실한 것은 그 목적지가 나에게 그리 나쁘지는만은 않을 것이란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그곳에 반드시 가야만 하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난 그 목적지에 관심이 없었을 뿐이고 그저 피곤할 뿐이었다.


피곤하지만 어김없이 시간이란 착각은 흐르고 있다. 어차피 이 세상이 착각 속의 허상이라면 난 차라리 멀리서 바라보는 관찰자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꼭 참여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누군가는 관찰자가 된다는 것은 경쟁에서의 낙오자가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난 그저 '하지 않음'을 선택했을 뿐이다. 게임에 참여할 권리도 있지만 참여를 하지않을 권리도 있는 것이다.


어차피 모래성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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