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마을에 늑대가 나타나면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면 아이들이 보는 만화를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오늘의 주제는 타요라는 버스가 주인공인 만화에서 타요와 친구 버스들이 장기자랑으로 '양치기 소년' 연극을 하는 에피소드였다.
세상의 물정을 반영하지 않는 만화의 세계에서는 모든 게 가능하다. 자동차가 사람이 된다.(감정도 있고, 말도 하고, 소통도 하고, 사회생활은 한다. 거의 사람이지). 그럼 모든 게 가능한 만화에서는 동물들이 사람처럼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것도 가능하다. 뽀로로도 그렇고, 주토피아가 그랬듯이.
자 그럼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동물 마을에는 소, 돼지, 닭, 토끼, 늑대, 사자, 등등 모든 동물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생각을 해봤다.
동물 유치원에서 장기자랑으로 '양치기 소년'을 하게 되었다. 물론 양치기소년에 나오는 모든 등장'동물'이 이 반에 있다고 하자.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Episode 1.
양이 말했다. "늑대, 너는 늑대니까 늑대 해".
일단 어색해질 수 있다. 저 말을 들은 유치원생 늑대는 어떤 느낌일까? 과연 양치기 소년에 나오는 공포의 대상인 늑대와 동물 유치원의 늑대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을까? 동물 마을에서도 실제로 늑대가 양을 잡아먹는다면 그건 유치원생 양은 늑대에게 싸우자는 얘기는 허무맹랑한 도발로 밖에 들릴 수밖에 없다. (이기기는 하나 모르겠다. 진짜 그런 상황이라면 무슨 깡으로 이런 얘기를 했을까?)
그런데 사회를 만들어서 생활을 함께 영위하는, 적어도 동물의 왕국처럼 약육강식이 표면적으로(뒤로는 가능하겠지만) 통용되는 사회의 정의가 아니라면, 상황에서라면 그냥 나쁘지만은 않은 평범한 선택으로 보일 수 있다. 네가 늑대니까 늑대 하라고. 그 외에 경멸과 분노의 표현이 추가되지 않는다면 그냥 이 만화는 늑대의 수긍으로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동화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약간의 교훈을 남긴 채 끝날 수 있다.
그럼 이 야이기를 조금 꼬아볼까?
Episode 2.
양이 말했다. "늑대, 너는 늑대니까 늑대 해".
늑대가 대답했다. "맨날 나만 늑대 하냐, 딴 애가 해"
자, 한번 꼬였다. 이제는 같은 반 늑대가 더 이상 '무서운' 존재는 아니라는 건 문맥적으로 해석이 된다. 그럼 양치기 소년에 나오는 늑대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같은 반 늑대는 같은 동물, 양치기 소년에 나왔던 늑대는 뭘까? 예컨대, 흑인이 노예가 되던 시대의 백인과 흑인의 관계일지, 식민지 시대의 속국의 관계일지 무언가 껄끄러운 관계로 나타날 수 있다. 가상으로 만들어낸 과거는 무시한다고 한다면 그냥 더 이상의 현실성을 반영하지 않은 동화 같은 이야기로 끝날 수 있다.
조금 더 현실적인 상황으로 꼬아 볼 수도 있다.
Episode 3.
양 팀장이 말했다. "늑대과장, 지난번에 늑대업무 해봤지? 이번에는 문제없이 잘 해결해".
늑대가 대답했다. "팀장님, 매번 하던 거 다른 친구한테 넘기면 안 될까요?"
타요와 뽀로로가 뛰놀던 만화 장르가 갑자기 드라마 미생으로 바뀌었다.
자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드라마에서 익숙한 클리셰로 나오는 일을 좀 한다는 과장과 팀장간의 대화로 느껴진다. 그럼 뭘 더 기대할 수 있을까? "제가 하겠습니다." 하면서 나타나는 토끼 대리(주로 먹이사슬 아래에 위치하는 동물일 것이다). 그리고는 토끼 대리가 숱한 괄시와 무시와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역량에 기연과 우연을 더해 성공하는 스토리가 그려질 것이다.
그럼 이런건 어떨까? 소위 MZ 막장드라마는 이렇게 흘러가겠지.
Episode 4.
양 과장이 말했다. "늑대씨, 지난번에 늑대업무 해봤지? 이번에는 문제없이 잘 해결해".
늑대가 대답했다. "제 업무에는 늑대 업무는 포함되지 않는데요? 퇴사할게요"
요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오래된) 유튜브 쇼츠에서 찾을 수 있는 흔한 'MZ 회사원'의 소재에서 볼 수 있는 에피소드다. 이제는 양과 늑대의 관계는 모르겠고, 왜 나한테 귀찮은 일을 시키냐는 식의 풍자극으로 변경되었다. 여기서 양과 늑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맑은 눈의 광인이 어떻게 팀장을 멕이고 어떻게 막장으로 표현되는지 그게 궁금해질 따름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늑대는 포식동물, 귀찮은 역할, 귀찮은 업무, 사전에 동의가 없었던 업무 등으로 바뀐다.
그럼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의 늑대는 누구인가 궁금하기도 하다
평소 생각을 워낙 안 하고 살다 보니, 이런 허무맹랑하고 쓸데없는 시간을 보낼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사색을 경험하는 것도 싱글일 때를 제외하고는 별로 없었으니까. 애 둘 딸린 유부남의 입장에서는 그런 여유가 가끔 필요하다.
조금 급하게 끝내는 것 같지만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늑대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