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가 되고픈 무당벌레

어른 동화

by 레들민

세상에 많고 많은 무당벌레 중 한 마리에 관한 이야기예요. 단지 그 한 마리의 이야기랍니다.

바닷바람을 맞고선 비탈진 산 빗면에는 큰 나무가 자라지 못해요. 그래서 그곳엔 계절마다 다른 풀과 꽃이 번성합니다. 바람이 잦다 보니 작은 벌레가 살기에도 그리 좋은 장소는 아닐 겁니다. 특히 무당벌레가 날아다니며 살기엔 힘에 부쳐요. 햇살이 좋아도 겨울을 나려면 무성한 들풀 무덤 아래나 돌덩이 아래 깊숙한 곳을 찾아야 해요.

나는 거기서 살아요. 머나먼 도심의 불빛이 가끔 나를 유혹해도 향긋한 사람들의 단내가 나를 끌어도 난 그리로 날아가지 않고 여기서만 살지요. 그리고 하루 종일 진딧물을 찾아다녀요.

내가 진딧물을 찾아 날아다니는 건 순전히 잡아먹으려는 거예요. 난 항상 배가 고프거든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진딧물도 잡아먹고 작은 유충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데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건 아마 무당벌레가 원래 그런가 봐요. 살기 위해 끝없이 먹으려는 욕심쟁이로 태어났나 봐요. 사실 난 먹고 살아가는 일 이외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잘 몰라요.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한 걸까요?

얼마 전에 나는 민들레를 보았어요. 난생처음 보는 민들레였어요. 민들레는 노랗고 예쁜 꽃을 피우고 있었죠. 나는 그 통통한 꽃대를 기어 다니는 작은 진딧물들도 보았어요. 그런데 웬일인지 배가 고프다는 생각보다 노란 민들레꽃에 더 관심이 가는 거예요. 그래서 무작정 노란 꽃으로 파고 들어갔어요. 내가 항상 찾아다니는 단내와는 다른 좋은 향기가 났어요. 어쩌면 다른 무당벌레는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속에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어요.

하지만 꽃 속에서 종일 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솔직히 배가 너무 고팠거든요. 나는 내가 꽃 속에 숨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들레 꽃대에 다닥다닥 몰려있는 바보 같은 작은 진딧물을 하나씩 잡아먹기 시작했어요. 배가 부를 때까지요. 결국, 다 잡아먹었죠. 식충이처럼.

그때 민들레가 나를 불렀어요.

"고마워 벌레야, 간지럽고 아파서 죽을뻔했단다."

나는 깜짝 놀랐어요.

“아, 그래? 난 그냥 배가 고파서 진딧물을 잡아먹었어.”

"그래서 고맙다고. 걔들은 날 빨아먹고 있었거든.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그랬겠지."

“그랬구나. 항상 진딧물한테는 좀 미안했는데... 근데 내가 진딧물을 잡아먹은 게 잘한 일이야?”

"최소한 나한테는 큰 은혜지. 네가 와서 참 다행이야. 네가 계속 여기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진딧물들이 다시는 나를 괴롭히지 못할 테니까."

“너의 향기가 너무 좋아서 너만 괜찮다면 나도 여기 있고 싶어. 그런데 난 매일 배가 고파서 항상 먹을 걸 찾아야만 해. 난 진딧물이나 작은 유충 같은 것들을 잡아먹고살아. 이렇게 말하면 넌 내가 더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왜? 다들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 누군가는 살아야 하잖아. 진딧물들이 나를 빨아먹어야 사는 것처럼 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인데 비난할 순 없지. 안 그래?"

“아니 안 그런 거 같아. 난 차라리 너처럼 예쁜 꽃이면 좋겠어. 넌 아무도 해치지 않잖아.”

"자세히 좀 봐. 내가 지금은 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냥 풀이야. 난 매해 꽃을 피우는 그저 한 포기 풀에 불과해. 진딧물이 몰려와서 나를 빨아먹어도 그것들을 쫓아낼 방법이 없어. 어느 날 풀을 먹는 짐승이 와서 나를 다 뜯어먹어도 나는 반항할 수가 없단다. 늘 그런 목적으로 쓰이지만 뿌리가 살아있는 한 해마다 난 다시 나고, 또다시 꽃대를 세우고, 홀씨도 만들어 퍼뜨려야 해. 그런데 나처럼 바보 같고 나약한 풀이되고 싶다고? 너는 어디든 날아서 갈 수도 있는데?"

“하지만 넌 살아있는 걸 잡아먹진 않잖아. 내가 진딧물을 잡아먹을 때 그들의 신음과 고통 소리가 너무 괴로워. 죽이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나는 정말 잔인하고 지저분해. 그래도 찾아 나서게 돼. 배가 고프거든. 그래서 매번 그 고통의 신음을 들으면서도 잡아먹는 행위를 멈출 수가 없는 거야. 아무도 나를 간섭하지 않고, 누구도 나에게 명령하지 않지만 나는 끊임없이 찾아다녀. 내 허기의 희생물을 말이야.”

"아, 그래 너 많이 괴롭구나. 착하기도 해라. 하지만 아무도 너처럼 생각하지 않을 거야. 다들 그냥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지. 어쩔 수 없다고 말이야. 너도 그렇게 생각해보지 않을래? 바보 같은 기생충이라 잡아먹혀도 된다고, 힘없는 식물들을 끝없이 괴롭히는 나쁜 것들이라 잡아먹어도 된다고, 그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넌 말이야, 나 같은 식물에겐 오히려 영웅이야."

“영웅? 내가?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나에게 묻는다면 당연히 너는 영웅이야. 물론 너의 먹이가 되는 유충이나 그의 성충들의 생각은 좀 다르겠지. 그들에겐 천적이니까. 그러니까 내 말은 그냥 우리가 서로 편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생각하자는 거야. 넌 나에게 무척 이로운 벌레이고 너에게 난, 음... 뭐랄가 편하게 먹잇감을 구할 수 있는 사냥 쉼터?"

“편하게 먹잇감을 구할 수 있는 사냥 쉼터라고?”

"그렇지. 넌 나에게서 배고픔을 잊을 희생물을 얻었고, 나의 향기로운 꽃 속에서 잠시 쉬기도 했잖아. 앞으로는 너의 집처럼 여기고 함께 살아도 좋아"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햇볕이 따가우면 햇살도 마주하는 너랑 산다고.? 글쎄... 내가 할 수 있을까? 배가 고프면 어쩌지? 내가 너랑 함께 있는 걸 안다면 너한테 다시 진딧물들이 오진 않을 텐데, 안 그래?”

"오 이런... 설마 그새 마음이 변한 거야? 나처럼 살고 싶은 거 아니었니? 지저분한 너를 나의 향긋한 꽃 속에서 살게 해 준다는 데 뭐가 문제지? 너는 날개가 있으니 어디든 언제든 갈 수 있어. 선택은 항상 자유야."

“난 그저 먹이를 찾고 잡아먹고사는 일 밖에는 할 줄 몰라. 너처럼 사는 법은 몰라. 그리고 시작하기가 두려워.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이잖아. 난 이 비탈진 들판이 좋아서 늘 이곳만 날아다녔어. 먹이가 충분치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일 거야. 내가 매일 잡아먹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너처럼 햇살과 비만 있어도 사는 존재가 부러운 거야. 배고플 일이 없고, 게다가 예쁘니까.”

"하지만 영원히 함께하긴 싫다고?"

“아니 어쨌든 말이 좀 안 되지. 나도 살아야 하잖아, 안 그래?”

"너는 사는 일만 관심 있니?"

“뭐라고?”

"오로지 살려고만 하니까 그 많은 희생물을 요구하지. 네가 할 줄 아는 게 고작 그것들을 잡아 빨아먹거나 뜯어먹는 일이라면, 이제는 그 지겹게 사는 것을 좀 잊어보렴."


“지금 나더러 여기서 굶어 죽으라는 소리야?”

"그게 아니라, 융통성을 가지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란 말이지. 너에게 남은 시간 동안 온전히 너의 먹이로서 희생될지 모르는 수많은 진딧물과 작은 유충들을 생각해 봐. 네가 죽는다면 다른 것들이 더 오래 살 수도 있는 거야. 그렇지 않니? 하나 더 예를 들어볼까? 네가 내 꽃 속에 파묻혀 행복하게 죽어주면 내 꽃이 시들어 주저앉았을 때 나는 시들어 썩어가는 꽃과 함께 너의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흡수할 거야. 그러면 내년에는 지금보다 훨씬 크고 예쁜 꽃을 피우게 되겠지, 안 그래?"

“말도 안 돼. 그건 그럴 수 없어. 난 죽고 싶지 않아.”

"너무 단정하지 말고 차근차근 잘 좀 생각해 봐. 네가 나처럼 꽃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설명하고 있잖아. 네 상상보다 훨씬 더 큰 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 길이지. 괴로움도 배고픔도 함께 없어질 거야. 진딧물의 신음도 사라지지. 아까 말했듯이 우리 서로 편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는 거야. 너도 이해는 하지?"

나는 최대한 민들레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글쎄 그건 그런데 말이지. 그게 말이야, 난, 난 그냥 무당벌레로 조금 더 살아볼게. 아직은 그러고 싶어.”

그러자 민들레는 차갑게 말했어요.

"그래? 그럼, 그러든지 말든지"

민들레의 말이 다 끝나지 않은 것 같았지만 나는 허겁지겁 날아서 민들레로부터 될 수 있는 한 아주 멀리 떨어졌어요. 저렇게 예쁜 꽃이 그토록 잔인한 생각을 하다니. 끔찍하기도 하지.

하지만 또다시 배고픔이 시작돼서 민들레는 잊고 다시 진딧물을 찾아 날아다녔어요. 그런데 날다가 보면 어딘가에서 꼭 쉬고 싶어지거든요. 그곳이 좋은 향기가 있는 예쁜 꽃이면 정말 좋겠어요. 그 꽃대 아래로 진딧물이 잘 익은 과일처럼 주렁주렁 달려서, 길게 쳐놓은 거미줄처럼 걷어 올리며 차례로 거미 독으로 마비를 시킨 다음 하나씩 잡아먹으면 좋으련만. 아, 그러고 보니 거미가 되어도 좋을 것 같아요. 마비를 시킨 진딧물은 절대로 신음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에요. 뭐지? 그럼 거미에게 잡아먹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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