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구의 이름
친구는 세월이 지나도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자라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친구가 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다. 태어나서 이웃에 함께 살다 보니 막역해진 친구가 아니라, 서로를 친구로 선택한 최초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오래전에 이 친구를 잊었었다. 굳이 설명을 해야 한다면 사는 동안 그 친구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녀가 떠오를 것 같으면 딴생각을 하거나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친구에 대한 많은 것들을 잊을 수 있었고. 언젠가부터는 딴생각을 하거나 자리를 피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기억은 통제한다고 해서 통제되거나 제어한다고 해서 제어되지는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어느 날 불현듯 찾아왔고, 묵혀진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듯 순식간에 수십 년의 과거를 거슬러 나를 그녀 옆으로 데려다 놓았다.
내 어린 딸이 친구의 어린 딸과 놀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사랑스러웠고, 귀여웠고, 그들이 나의 다음 세대라는 것이 내심 뿌듯했다. 친구와 나는 그렇게 흐뭇하게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때, 아무 저항 없이 슬그머니 떠오르려는 기억보다 높은 너울처럼 꿀렁대는 심장이 먼저 그녀의 존재를 알렸다.
누구더라... 기억을 더듬었다. 흐린 그림들이 먼지를 털고 선명해질수록 그 이름을 빨리 찾고 싶었다. 하지만 흐린 그림이 선명한 그림으로 맞춰지며 영사기에 편집된 필름처럼 돌아가도 도무지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더 많은 영상이 돌아가기 전에 이름을 찾으면 좋을 것 같았다. 마음이 급해지자 불필요한 집중이 더해졌다. 미간을 찡그리며 엇비슷한 이름들을 수차례 맞춰 부르고 나서야 가장 자연스러운 조합 하나를 찾았다. 평범한 이름 하나가 잘 잠긴 자물쇠에 딱 맞은 걸쇠처럼 내 입술에 철컥 소리를 내며 붙었다. 그러나 봉인이 풀리자 이름 뒤에 조각조각 찢어져 있던 더 많은 기억들이 무너지듯 쏟아졌다. 나를 바라보던 눈빛, 웃음소리, 땀에 젖은 얼굴...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어지러웠다. 뒤엉킨 시간 속에 갇힌 여행자처럼 중심을 잃고 흔들렸다. 준비되지 않은 나의 모든 기억은 되돌려졌지만 설익은 무화가처럼 베어물수록 아리기만 한 그 이름은 세상밖으로 나올 때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것은 농익은 열매가 땅으로 떨어져 씨앗이 땅 속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어엿한 나무가 되어 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처음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내 나이는 쉰을 넘어서고 있었다.
정애.
친구의 이름은 양. 정. 애. 였다.
2. 정애, 장애
양정애는 발을 절었다. 소아마비였다. 오른손으로 오른쪽 다리를 짚어 걸으며 심하게 절뚝거렸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오른쪽 다리가 왼쪽보다 짧았을 것이다.
우리는 꽃샘추위로 눈송이가 뜨문뜨문 날리고 겨울이나 다름없는 찬 바람이 불던 1978년 3월 1일 오전 9시 왼쪽 가슴에 하얀 손수건과 이름표를 달고 콧물을 훌쩍이며 함께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생, 학부모, 그리고 전교생과 학교의 모든 선생들이 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며 운동장에 줄지어 있었다. 정애는 장애 학생이었기 때문에 맨 앞에 섰고, 나는 키가 작아서 정애와 함께 섰다. 장애가 아니라면 정애는 한참 뒤에 있어야 했을 것이다.
나는 단발, 정애는 도레미 머리였다. 그땐 다들 비슷비슷한 머리 모양을 하고 입학을 했다. 여자애들은 대게 단발머리, 남자애들은 빡빡이에 가까운 짧은 스포츠머리였다. 학부모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펼치면 보자기가 되는 알록달록한 싸구려 스카프를 삼각으로 접어 턱아래로 질끈 묶어 짧은 파마머리를 감쌌고, 소수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번들거리는 기름칠을 한 2대 8 가르마를 하고 있었다.
세상은 참 변화가 많다. 그 시절 내가 보던 어른들은 초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문맹이 많았다. 폭력과 차별을 경험하며 기성으로 성장한 그들은 이전 세대보다 조금 덜 차별적인 시각을 가졌을 뿐, 의무만큼 권리도 중요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토를 달지 않는 복종과 순종이 미덕이었다. 그들의 세상은 오각형 바퀴처럼 물리적인 힘으로 굴러갔다. 구르다 보면 언젠간 원형이 될 거라고 믿으며 개천에서 날아오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식들의 교육에 살과 피를 갈아 넣으며 매달렸다. 그러나 학교는 열사에 픽픽 쓰러지는 어린 학생들을 보면서도 훈시를 멈추지 않는 독선적인 교장과 손때 묻은 촌지가 담긴 누런 봉투가 부수입인 선생들의 영토였고, 유약한 아이들은 일진보다 포악한 선생들에게서 더 큰 상처를 입었다. 삶을 지탱하는 장시간 노동의 대가는 보잘것없었고, 학연 지연 사돈에 팔촌까지 연대하는 부조리와 결핍이 일상인 세상은 속이 터지게 느린 속도로 가고 있었다. 삶에서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일보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일이 쉬웠다. 주변에선 셀 수없는 낙하산 이야기가 쏟아졌었다. 낙하산도 그 시간에선 가진 자의 권력이자 없는 자의 부러움이었다. 사소한 시비에 관대했던 만큼 사소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무지로 고통받는 일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순수함과 무수한 별들이 함께 빛나던 열정과 감성의 시절이었다. 그저 확연히 변했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긴 하지만, 불과 50년 전만 해도 지금과는 거울의 반대편 같았다.
지금은 가정이 불안하거나 경제적인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관심을 받지만, 그땐 최소의 생필품조차 제때 사서 쓰지 못하는 형편이 많았으므로 부유한 집 아이들이 눈에 더 잘 들어왔다. 물려받지 않고 줄여 입지 않고 소맷단이나 바짓단을 몇 번씩 걷어 엉성한 바르질로 마무리하지 않은 제 몸에 딱 맞는 옷만 입을 수 있어도 난 부러웠다.
풍성한 진홍색 인조 카라털이 붙어있는 분홍색 하프코트에 긴 생머리를 땋고 예쁜 방울이나 리본으로 묶은 여자애들은 무조건 예뻐 보였다. 어쩌다 안경이라도 쓰고 오는 아이는 귀엽기까지 했다. 학기 내내 하얀 와이셔츠에 빨강 나비넥타이, 귀여운 멜빵을 매고 오는 남자애가 하나 있었는데 걘 정말 말도 못 걸 만큼 고급지고 특별해 보였다. 학기가 끝나기 전에 나의 고급진 첫사랑은 인근 유명 사립국민학교로 전학을 가버렸지만 나는 여러 번 그 아이에게 정신을 빼앗겨 한참 동안 빤히 바라만 보기도 했다. 물론 나는 어딘가에서 물려받은 커다란 새빨간 재킷을 줄여서 코트처럼 입고 다니는 평범한 아이였다.
정애는 앞니가 유난히 크고 입이 다소 튀어나와 보였다. 내 기준에서 보면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게다가 팔짱을 낀 채 앉아서 구시렁구시렁 불평도 많았다. 얼굴은 주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심술쟁이처럼 양 볼은 늘 뿌루퉁 부어 있었다. 잘 웃지 않았다기보다는 늘 화가 나 있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목소리가 크고 말투마저 거칠어서 정애가 있는 곳에선 자주 큰소리가 났다. 나는 모든 소란의 원인이 당연히 양정애일 거라고 단정 지어 생각했다. 정애의 장애는 그런 나의 선입견을 다졌고, 볼수록 커지는 편견이 갈수록 객관적으로 느껴지면서 결국엔 의식적으로 기피하거나 때론 근거 없는 증오를 불러오기도 했다.
3. 만남
나는 작았고, 고집스러웠고, 악착스러웠다. 한 반이 70명에 가까웠던 그 험한 세계에서 작은 체구로 살아남으려면 몸을 사리는 조용한 처신과 지고 못 사는 악바리 근성이 반드시 필요했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은 좀 뭐 하지만 사실 난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예쁜 얼굴은 예나 지금이나 좋은 점이 많다. 일단은 무턱대고 우호적인 호감을 산다는 것이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함께 놀자고 먼저 말을 걸어온다. 사내아이들은 부산스럽고 귀찮지만, 잘 먹어 키가 크고 피부가 매끈한 양갈래 머리의 부유한 집 여자 아이들은 가끔 재수 없긴 해도 비위를 맞춰 어울리면 괜찮았다.
담임 선생님은 날씬한 중년의 여성이었다. 1학년 담임이 끝나는 동안 거의 매일 같은 감색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었다. 머리는 굵은 웨이브가 있는 고급진 귀밑 단발이었고, 작고 갸름한 얼굴에 야무진 눈과 작은 코, 하얀 피부를 가졌으며 키가 아주 컸다. 입술은 항상 강렬한 빨간 립스틱을 발랐다. 교탁 옆 선생님의 책상에는 비슷비슷한 색상인 립스틱이 두서너 개가 늘 있었고, 선생님은 쉬는 시간마다 작은 손거울을 들고 립스틱을 고쳐 발랐다. 어쩌면 이토록 세세하게 기억이 나는지 나도 잘 모른다. 단지 나의 기억 방법은 그저 일상의 인상적인 일들을 사진처럼 찍어두는 것인데, 내 기억 속 선생님은 감색정장, 작고 뾰족한 하얀 얼굴, 빨간 립스틱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목소리로 남아 있다.
나는 선생님의 칭찬을 갈망하며 무엇이든 잘하려고 노력했다. 선생님의 입에서 칭찬으로 이름이 자주 불릴수록 학급에서 입지는 탄탄해졌다. 그리고 선생님이 아끼는 학생은 함부로 건드리지도 않았다.
정애는 불만이 많았다. 거의 매일 선생님에게 찾아가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우렁찬 목소리로 자기가 당한 억울함을 강하게 어필했다. 처음엔 선생님도 정애의 편에 서서 괴롭히는 아이들을 혼냈지만, 차츰 정애에게도 좀 참아보라며 나무라는 소리를 하게 되었다. 시간이 가면서 정애가 선생님에게 이르는 일은 점점 줄어갔다. 반면에 선생님이 없는 쉬는 시간에는 더 자주 큰소리를 내게 되었다.
나는 소란에 휘말리기 싫었고, 주변이 항상 시끄러운 정애랑 친해질 일은 절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되도록 멀리서 정애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정애는 칭찬을 듣기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모두의 의무이자 열망인 선생님께 칭찬받는 착한 어린이가 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학급에는 정애의 장애가 전염병처럼 옮긴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학교도 자주 찾고 선생님들과도 친한 자기 엄마가 그랬다면서 확신까지 심어 주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많은 부모들이 장애아를 친구로 두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이기와 무지와 거짓이 정애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을 그땐 나도 몰랐다.
기피의 대상이 된 정애는 만나는 짝꿍마다 문제가 그치지 않았다. 정애 옆에 앉기 싫다며 우는 아이, 크게 다투는 아이, 정애와의 짝꿍자리를 바꿔달라며 교실까지 찾아온 학부모, 정작 정애가 싫다고 바꿔달라는 아이도 있었다. 선생님은 그때마다 정애의 짝꿍을 바꿔 앉혔다. 하루에 두 번이나 바꾼 일도 있었다. 정애를 맨 뒤에 혼자 앉히니 이번엔 정애의 어머니가 교실로 찾아왔다. 문제의 짝꿍 자리가 이리저리 치이다가 마침내 내가 정애의 짝꿍이 되었다. 정애에겐 미안하지만 그 순간 난 인생이 망하는 기분이었다.
4. 난 네가 싫어
키가 작은 나는 맨 앞에, 키가 컸던 정애는 뒤에 앉아야 했으니 처음 한동안은 짝으로 만날 일이 없었던 것인데, 난감한 선생님도 하다 하다 순하고 작은 나를 붙여놓은 것 같았다. 덕분에 나는 선생님과 가장 가까웠던 앞자리에서 교실의 중간 자리보다 더 뒤로 물러앉게 되었다.
앞자리를 놓친다는 것은 선생님의 칭찬을 받을 기회도 놓치는 일이었다. 더 속이 상하는 일은 칠판이 보이지 않아 모범적인 답을 서둘러 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한글 학습보다 신체적 발육이 월등한 아이의 뒤태에 가려 칠판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돌릴 때마다 나는 눈치껏 벌떡 일어서거나 상체를 옆으로 뉘어서 칠판을 봐야만 했다. 판서한 한글을 따라 적는 것도, 더하거나 빼야 할 숫자를 적는 것도 남보다 늦었고 그만큼 답도 늦어졌다. 억울하고 짜증이 났다.
서럽기도 했다. 선생님께 짝꿍을 바꿔달라는 부탁을 하러 와줄 우리 엄마도 아니었고, 거절을 각오하고 당차게 나의 요구사항을 말할 용기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팔짱을 끼고 속으로만 하는 불평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
정애처럼 선생님 앞에서 당당하게 어떤 요구를 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다. 다들 비슷했겠지만 나에게 선생님은 세상에서 가장 말을 걸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나는 선생님의 칭찬을 들을 때조차 조마조마했다. 좋으면서도 가슴이 터질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선생님은 교탁 위에 회초리를 함께 두고 망아지처럼 뛰거나 거위처럼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의 손바닥이나 발바닥을 매섭게 내리쳤다. 따가운 매를 맞은 아이들의 손바닥이나 발바닥에선 벌건 줄이 올라왔다. 그 줄은 죄인의 밧줄처럼 손바닥 위에서 버티며 한동안 없어지지도 않았다. 나는 선생님이 때리는 회초리를 피하고 싶었다. 아픈 것도 두려웠지만 수치심이 더 클 것 같았다. 나는 못하거나 안되거나 모른다는 일로 남들 앞에서 절대로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문제가 된 정애가 미웠다. 칠판이 보이지 않는 지랄 맞을 상황도 다 정애의 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애는 시동이 털리는 오토바이처럼 시도 때도 없이 툴툴거렸다. 나는 며칠째 정애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우린 서로 말을 걸지 않았으며, 특히 나는 온 힘을 다해 무관심하려 했다. 짓궂은 녀석들이 자리까지 쫓아와 ‘다리병신’이라며 정애를 놀리는 걸 보았을 때도 나는 고개를 돌렸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하필 내가 장애가 있는 양정애의 짝꿍이라는 것이 점점 더 싫어져 견딜 수가 없었다. 못된 생각이 바닥을 칠 때쯤 나는 기어이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하기로 마음먹었다. 싫은 티를 내고 되도록 자주 싸우는 것. 그래야 짝이 금방 다시 바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찾은 최선의 방법이었다.
하필 그날 정애는 느닷없이 교과서로 책상을 내리쳤다. 탕탕 소리가 날 정도였는데 그것도 여러 번 책 먼지가 날릴 정도로 세게 쳤다. 나는 선생님처럼 엄중하고 차분하게 정애의 행동을 지적했다. 그러자 정애가 질색을 했다. 잘못은 자기가 했으면서 타이르는 내게 되레 신경질을 부리는 정애가 나는 황당했다. 기가 막혔지만 사실 '지금이구나'싶었다. 나는 함께 쓰던 긴 책상에 누군가 칼로 선명하게 그어놓은 나눔의 경계선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가리키며 경고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아주 딱딱하고 차갑게 말했다.
"이 선 보이지! 딱 반이야 그치? 네가 책을 내리 치든 찢어버리든 그건 네 맘이지만 지금부터는 절대로 이 선을 넘어오지 마. 알겠니? 책으로든 뭐로든 다시는 나를 건드리지 말라고. 나한테 말도 걸지 말고, 아는 체도 하지 마! 난 니가 진짜 싫어! 그리고 나한테 니 물건 닿는 거 더러우니까 이 선 꼭, 꼭, 꼭 지켜! 알았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애가 동공을 있는 대로 확장하더니 잡아먹을 듯이 나를 노려보았다. 이어서 교실 안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 야! 나도 너 싫어! 너 싫다고! 근데 너 진짜 나쁘다. 진짜 나쁜 애다. 나도 너처럼 나쁜 아이랑은 진짜로 말 안 해! 알아? 그리고 선생님한테 이거 다 이를 거야. 너 두고 봐 진짜!"
바락바락 쏘아붙이더니 갑자기 책상에 쿵 엎어져서는 크앙 크앙 소리를 내며 대성통곡을 했다.
주변 몇몇은 난데없는 천둥소리에 갑자기 귀를 막아야 할 만큼 엄청난 울음소리였다. 교실 안의 모두가 일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가 싶었을 거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뭘, 뭘 그렇게 울기까지 할 일인가. 일단 나는 두 귀를 막았다. 당혹스러웠고 황당하기도 했다. 어떻게 아이가, 여자 아이가 저렇게 큰소리로 울 수가 있지? 진심으로 나는 깜짝 놀라고 있었다. 동시에 겁도 났다.
내가 정말 나쁜 애로 보일까 봐 걱정도 됐지만 무엇보다 정애의 겁박처럼 선생님에게 알려져서 호되게 혼이 나게 될까 두려웠다. 선생님은 '뭘 어떻게 하면 저렇게 크게 울릴 수 있니?'라고 나에게 물어볼 것 같았다. 하긴 귀를 막고 내가 한 말을 곱씹어봐도 선생님은 내 편이 되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마음이 혼란스러웠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어쩔 줄을 모르고 책상에 엎드려 우는 정애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애는 그렇게 수업종이 울렸는데도 꺼이꺼이 엄마 찾는 송아지 소리를 내며 두 눈이 새빨개지도록 울었다.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다르게 선생님은 정애가 우는 모습을 흘긋 보고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을 끄는 것처럼 천천히 수업준비를 마쳤고, 교단으로 올라서서 교탁에 양손을 짚은 다음에서야 정애도 나도 아닌 허공에다 질문을 던졌다. 정애가 왜 우냐고.
범인인 나는 우물쭈물 얼굴만 붉히며 대답하지 못했고, 촐싹대는 누군가 대신 나서서 앞뒤 다 자르고 우리가 서로 싸웠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이미 다 아는 일인 것처럼 정애에게 그만 울라고 말했고, 내게는 건성으로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만 했다. 그리고 아무 일 아닌 듯 수업이 시작됐다.
정애는 땀인가 눈물인가 분간이 어려울 만큼 젖은 얼굴로 여전히 훌쩍거리고 있었다. 벌게진 눈과 순식간에 부은 얼굴을 옷소매로 벅벅 문질러 닦고 있는 정애에게서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정말이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회초리까지 각오하고 있었는데.
그전까지만 해도 선생님 앞에 나서서 자신의 억울함을 당당하게 어필하던 정애는 말없이 눈물을 정리하며 조용히 책을 펼쳤다. 슬퍼 보였다. 다친 것 같았다. 차가운 몇 마디 말만으로도 누군가를 그토록 서럽게 울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미안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날 선생님은 정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그마저도 안쓰러웠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미안하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그리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정애의 무표정한 얼굴을 살피며 선생님의 눈치를 봐야 했다.
5. 친구가 되어
다음 날 정애의 어머님이 학교로 찾아와 나를 부르셨다. 어제 선생님은 피했지만 딸을 울린 어머니는 나를 혼내실 것이 분명했다. 잔뜩 겁을 먹고 나간 교실 밖 복도에서 어머님은 다정한 미소와 함께 부드럽게 말을 걸어주셨다. 그리고 정애가 나를 아주 좋아한다고 하셨다. 집에 오면 정애는 늘 내 얘기만 한다고도 하셨다. 앞으로도 친하게 잘 지내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따듯하게 말씀하셨다.
정애의 어머님은 통통한 체구에 짧게 자란 파마머리를 뒤로 동여매었고, 펑퍼짐한 바지에 헐렁한 꽃무늬 블라우스를 차려입으셨는데, 아마도 정애도 나처럼 막내였는지 정애의 어머님도 우리 엄마처럼 흰머리가 듬성듬성 보였다. 어쩌면 소리 내어 울 때까지 혼이 날거라 짐작했던 나는 숨 막히던 공포에서는 벗어났지만 정애가 나를 좋아한다는 말에는 가슴 한쪽이 불에 덴 듯 뜨거웠다.
그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사라지기 전에 정애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님을 만나고 교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정애에게 어제 일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자 신경질쟁이였던 정애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껄껄 웃으며 쿨하게 내 사과를 받았다. 손가락을 걸며 서로 친구가 되기로 했던 그날 이후, 우리는 더없이 친한 짝꿍이 되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때부터 더 많이 생겼다.
쉬는 시간이고 공부 시간이고 시끄럽게 수다를 떨었고, 쪽지에 그림을 그리며 장난을 쳤다. 수업 중 우리가 내는 소곤거림을 선생님은 귀신같이 잡아냈다. 등을 보이며 칠판에 필사를 하다가도 벼락처럼 우리의 이름을 불렀다. 가끔 정애가 내는 신경질은 종잡을 수 없었지만 둘이서 선생님을 짜증 나게 하는 것은 스릴이 있었다. 우리는 선생님을 괴롭히고 있었다. 교탁에 나란히 앉아 누런 회초리로 발바닥을 함께 맞을 때도 울긴커녕 우린 서로의 얼굴을 훔쳐보며 키득거렸다. 손바닥에 난 벌건 줄을 비교해 보며 누가 더 굵은지 더 긴지 더 오래가는지 말이 많았다. 회초리가 주는 아픔은 불시에 지나는 통증에 불과했고, 고통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정애와 함께 맞는 매도, 함께 서는 벌도 나는 부끄럽지 않았고 심지어 재미있었다.
둘이서 복도에 나가 손이라도 들고 앉아 있으면 얼굴만 마주해도 나오는 웃음을 참아내느라 킥킥거리며 얼굴이 빨개지곤 했다. 그러면 수업하던 선생님이 어느새 그림자처럼 다가와 회초리 끄트머리로 우리의 조그만 머리를 콕콕 쪼았다. 그리고 그때부턴 서로 등을 맞대고 두 손을 더 번쩍 들어 귀에 딱 붙이라고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떠들면 둘을 아주 멀리 갈라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선생님은 학기가 다 끝날 때까지 정애와 나만 짝꿍을 바꿔주지 않았다.
6. 정애의 뒷모습
하루는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 나가 놀자고 조르는 나에게 정애는 도끼눈을 치켜뜨며 이렇게 말했다.
“ 야! 나는 다리를 절잖아! 내가 어떻게 운동장에 나가 노냐! 그렇게 쟤네들이랑 나가 놀고프면 너나 나가! 너만 가라고!!”
기분이 상한 내가 흥! 콧방귀를 뀌며 혼자 운동장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고무줄놀이를 신나게 했다. 아쉬운 수업 종소리를 듣고 교실로 들어가려는데 현관 입구에 정애가 슬픈 눈을 하고 우두커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색한 내가 정애를 부르며 뛰어갔지만 정애는 모른 척 휑하니 등을 보이며 절뚝절뚝 교실 쪽으로 가버렸다. 그래 봤자 박자에 맞춰 고무줄놀이를 할 수 있는 내가 튼튼한 두 다리로 얄밉게 먼저 뛰어 들어갔지만 말이다.
정애는 내가 가끔 다른 친구와 어울려 노는 날이면 입을 열지 않고 답답하게 굴거나, 책걸상을 우당탕 소리를 내며 시끄럽게 끌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먼저 말을 걸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유쾌하고 재미나는 말로 주변을 웃게 만들었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 정애는 특유의 쾌활하고 호탕한 목소리로 크게 웃었고 모든 일에 허세가 가득했다. 정애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한시도 쉬지 않는 장난꾸러기였다. 장애가 없었다면 정애는 아마도 체육 활동을 가장 잘했을 것이다.
등교하는 정애의 얼굴은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고 땀범벅이었다. 이마의 땀을 소매로 북북 쓸어 닦으며 등교를 하다 보면 정애의 앞머리는 늘 뒤엉켜 삐죽하게 올라가 있었다. 그래도 매번 교실 문 앞에 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거창하게 닭살 멘트를 날렸다.
"내 친구 성희야~ 어디 있느냐~ 내가 왔다! 으하하하"
소리를 들은 나는 킥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들어 휘저으며 환영했다.
"나 여기 있다~ 일루 와라~ 양정애 내 친구야~"
그러면 정애는 커다란 앞니로 교실을 다 밝힐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 와 앉았다. 우리의 시작은 늘 그렇게 파이팅이 넘쳤다. 그러나 일어나 다시 걸어야 할 다른 시간이 되면, 예를 들어 체육 시간이나 하교 시간에 정애는 티가 나게 시무룩했고 거의 말도 하지 않았다.
정애네 집은 학교에서 아주 멀었다. 정애가 사는 동네의 이름은 '거로'였다. 정애는 내가 학교까지 걸어야 하는 거리보다 훨씬 멀리서 걸어와야 했고, 불행하게도 우리의 집은 서로 정반대의 방향에 있었다. 단짝이 되었지만 아쉽게도 등하교를 같이할 순 없었다.
한 번은 의자를 놓고 올라서서 교실 창문에 팔을 걸고 정애가 걷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른손으로 오른발 무릎을 짚어가며 심하게 절뚝이는 정애는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한 걸음씩 차곡차곡 걸어서 앞으로 나아갔다. 대부분 정애와 같은 마을 방향으로 가는 아이들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누런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잽싸게 뛰어갔지만, 정애는 그들이 벌써 교문을 벗어나 찻길 어디론가 보이지도 않을 만큼 사라졌을 때에도 그들이 놓고 간 먼지 구름 속에서 여전히 느릿느릿 운동장 한가운데를 걸어야 했다. 아, 정말 그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시간마저 얼마나 더디던지. 정애가 자주 입고 왔던 짙은 고동색 투피스는 먼지가 날리는 마른 운동장에 누군가 엎지른 물주전자의 얼룩처럼 번져있다가 무정한 햇살아래서 천천히 희미해지며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조그만 얼굴에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앞니가 다 드러나게 입을 벌리고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을 것이다. 한걸음 한걸음 정애가 운동장을 지나 학교의 정문을 나서서 큰 차도로 사라지기까지 지켜보았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7. A
장애는 놀림감이었다. 그것은 정애가 앉은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어하는 여러 이유 중 가장 큰 하나였다. 교실 밖 외부 화장실엘 다녀오는 정애를 에워싸고 ‘다리병신’이라며 놀리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때마다 정애는 놈들을 노려보며 용감하게 소리를 질러댔지만, 그것들은 항상 질기고 잔인했다. 정애가 어렵사리 교실 안 제자리까지 찾아가 앉을 때까지 모기같이 쫓아와선 실룩거리는 정애가 펑펑 울길 바라며 악착같이 공격했다. 그러나 정애는 울지 않았다. 다만 언제부턴가 정애는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
그런 정애를 보는 마음이 불편해지고 있었다. 단짝이 되기 전엔 그저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만 생각했다. 단짝이 되고 난 후엔 정애를 안고 소극적인 위로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악귀 같은 그것들을 막아서기에 난 여전히 작았고, 선생님의 회초리보다 그들에게 얻어맞는 일이 더 아프고 수치스러울 것 같았다.
어느 날 아침 교실 복도였다. 어쩐 일인지 그날따라 정애가 나보다 일찍 등교를 했다. 상황은 비슷했다. 등교를 하고 신발장에다 실내화가방을 정리한 다음 교실 문 앞으로 가려던 지친 정애를 붙잡아 놓고 A와 패거리들이 괴롭히고 있었다. 정애의 얼굴은 이미 터질 듯이 붉어져 있었고 땀에 절어 있었다. 그것들에게 붙들리지만 않았어도 정애는 곧 쩌렁쩌렁 내 이름을 부르며 환하게 웃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정애는 신발장 벽에 등을 기대고 비스듬히 얼굴을 돌린 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간신히 버티고 서 있었다.
구경꾼들이 그들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었다. 한 녀석이 “다리 벼 엉신~”하고 운을 떼면 나머지 녀석들이 돌림 노래처럼 춤을 추듯 몸을 비틀며 따라 했다. 뒤에 선 다른 아이들마저 흥이 돋는 듯 연신 키득거리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정애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
지친 정애는 사색이 되어갔다. 걸어오느라 거의 모든 에너지를 소비했을 정애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허리를 구부리며 주저앉기 직전이었고, 금방이라도 엄마를 찾으며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나는 가방을 메고 실내화주머니를 손에 쥔 채 거칠게 구경꾼을 밀치고 들어갔다. 정애를 등지고 팔을 벌려 A 앞을 막았다.
“그만해!”
나도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야, 네가 뭔데 껴들어?"
A는 우리 반에서 싸움을 제일 잘하는 남자아이였다.
"나 양정애 짝이야. 정애 친구."
나는 A의 맑고 커다란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비켜! 한 대 맞기 전에!"
A는 진짜로 나를 칠 기세였다. 하지만 나 역시 맞는 것도 불사할 참이었다.
"선생님은 정애를 도와주라고 했지 놀리라고 하지 않았어! 너는 공부도 잘하고 싸움도 다 잘하니까 선생님 말씀을 더 잘 들어야지! 이건 나쁜 짓이야! 놀리지 마!"
나는 또박또박 쏘아붙였다. 녀석은 나를 가소롭게 쳐다보았고 커다란 눈을 가늘게 뜨며 겁을 주었다.
다른 반아이들까지 몰려드는 바람에 구경꾼들은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거기서 물러선다면 A도 체면을 구기는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야, 안 비키면 진짜 때린다!"
A가 고압적으로 내려 보며 말했다.
"봐라, 양정애는 병신이야. 못 걷잖아. 다리병신이니까 병신이라고 하지. 그게 왜 나쁜 짓인데 어?"
A는 한 손으로 내 어깨를 잡고 억세게 끌었다. 손에서 신발주머니가 떨어지고 책가방의 어깨끈이 당겨졌지만 나는 기를 쓰고 버텼다. 그리고 소리쳤다.
"선생님한테 너희들 다 이를 거야! 그리고 지금 나 때리면 난 널 개처럼 물어뜯을 거야. 그리고 2층에 있는 5학년 교실로 가서 우리 오빠도 불러올 거야! 넌 우리 오빠한테 나보다 더 쳐 맞겠지!"
나는 바락바락 대들었다. 흥분한 심장이 미친 듯 날뛰고 있었다.
놀림의 주동자인 A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세서 무서운 게 없는 아이였다. 2학년 싸움짱도 다 눌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게다가 놀라울 만큼 비상한 머리와 잘생긴 외모까지 가졌지만, 마치 원래 폭력적인 리더로 태어난 것처럼 녀석은 늘 온몸에 힘을 주고 다녔다. 제멋대로 약한 아이들을 부리거나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친구들을 기분대로 괴롭혔다. 그리고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항상 반장이던 A의 폭주를 아무도 막지 못했다. 그는 그대로 자라서 잘생긴 외모와 주먹질로 중, 고교 시절 내 귀에까지 들릴만큼 유명했지만 결국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다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했다. 뒤 봐줄 사람이 없어 A 혼자 덤탱이를 썼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사건의 진위는 모르겠다.
어른이 되고 난 후에 들은 바로는 A의 부모에게 폭력성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국민학교에 다니던 언젠가는 몇 달 동안이나 이웃들에게 밥을 얻어먹으며 7살인 어린 동생과 단 둘이서만 살았는데, 부모가 다 교도소에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영민했던 A의 삶이 꼬인 이유는 그런 가정환경 탓이 크겠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대로 피우지 못한 A의 재능과 인물은 참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우리 교실 바로 위 2층, 5학년에 다니고 있는 순둥이 오빠까지 끌어들이며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다 썼다. 그런데 그때 어깨를 잡아끌던 손목에서 힘을 빼며 A가 물었다.
"너네 오빠가 5학년이야? 저기 이층 교실에 있는?"
"야, 걔네 오빠 5학년 맞아!" 구경꾼들 사이에서 나를 아는 누군가 소리쳤다.
A는 나를 내려보며 뭔가 빠르게 계산을 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구경꾼들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난 5학년도 6학년도 하나도 안 무섭거든."
"너네 다 알지? 저번에 내가 4학년 하고 싸운 거! 난 아무한테도 안 진다, 얘들한테 물어봐 다 진짜니깐!"
다시 나를 향해 돌아선 A는 무섭게 노려보며 분한 목소리로 꺼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패거리들과 빠르게 사라졌다.
온몸의 피가 심장으로 몰려 곧 터질 것 같았지만, 나는 정애의 손을 꼭 잡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일 이후 정애가 놀림받는 일이 많이 줄었다. 화장실도 함께 다녔다. 다만 내가 잠시 A의 괴롭힘을 견뎌야 했다. 징징거리는 나를 보고 어머니가 5학년인 오빠를 시켜 A를 타이르게 했다. 기대가 컸던 순둥이 오빠는 A를 불러내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늘 난 너를 안 때릴 거야. 하지만 나랑 남자답게 약속하자. 다시는 내 동생 괴롭히지 않기로 말이야. 혹시 내 동생이 또다시 너 때문에 학교에 안 온다고 하면 그땐 내가 와서 너를 때려야 할지도 몰라. 근데 있잖아, 난 너 안 때리고 싶다."라고.
코피가 나도록 때려줘야지 뭐 그딴 말로 혼을 내냐며 나는 오빠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A는 오빠와의 만남 이후로 다시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나는 아무래도 오빠가 평소 같지 않게 아주 무섭게 말을 했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5학년 때였나 6학년 때였나 방과 후 학급 꾸미기 활동을 하다가 A와 단 둘이 교실에 있게 되었을 때 A가 지나는 말처럼 그날 일을 언급하며 내 오빠에 대해 말했다. ‘나한테도 너네 오빠 같은 형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그 말을 할 때의 A는 뭐랄까 좀 외로워 보였다.
처음에 난 오빠도 A도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A의 말을 듣고 나니 알 것 같았다. 그날 5학년 오빠의 어른스러움 덕분에 A가 달리던 폭주의 범주에서 나는 늘 예외가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7. 정애의 마음
우리는 매일 더 가까워졌다. 정애는 공책이 찢기지 않게 잘 지워지는 고무지우개를 내가 빌려달라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먼저 건넸고, 가끔 맛있는 과자를 챙겨 와 나에게만 절반이나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몽당연필만 가득했던 내 초라한 필통을 보고는 자신의 필통에서 제 옷 색깔처럼 짙은 고동색 더존 연필을 꺼내어 특별한 선물이라며 넣어 주었다. 꼬리엔 내 거친 지우개보다 훨씬 잘 지워지는 연분홍 지우개가 달린 새 연필이었다.
그 연필의 필기감이 얼마나 좋은지 나는 가끔 정애의 연필을 빌려 써봐서 잘 알고 있었다. 엄마가 사준 싸구려 연필은 꽉 눌러쓰지 않으면 너무 희미해서 계속해서 눌러쓰다 보면 손아귀가 아팠다. 그렇게 쓰다 보니 연필심이 유난히 자주 부러졌고 내 연필은 금세 몽당연필이 되었다. 싸구려 지우개는 어쩌다 한 번씩 쓰려면 어김없이 노트에 구멍을 내거나 찢어놓기 일쑤였는데, 정애가 선물이라며 준 더존 새 연필은 그 모든 고민을 한꺼번에 날려주는 만능 필기구 같았다. 너무 아까워서 나는 새 연필을 쓰지 않고 필통 안에 고이 모셔두기만 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정애가 자기가 준 새 연필을 왜 쓰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혹시 정애 어머니가 연필을 찾아오라고 하실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돌려주려 한다고 대답을 했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내겐 너무 좋은 물건이라서 혹시라도 돌려달라고 하면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내게는 그 연필이 정말 귀했다. 정애는 환하게 웃으면서 그와 같은 연필은 집에 얼마든지 있으니 염려 말고 쓰라고 했다. 정애의 말이라면 뭐든 다 들어주신다면서 필요하면 엄마한테 말해서 더 가져다줄 수 있다고도 했다. 나는 그건 싫다고 대답했다. 고급 학용품을 많이 가진 정애가 부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지만 그렇게 좋은 물건을 여러 번 그냥 받아서 쓴다는 것이 내 생각엔 옳지 않은 것 같았다. 어찌 되었든 정애가 그렇게 말해주고 나서야 나는 안심하고 정애가 준 연필을 정성스럽게 깎아서 썼다.
나는 제법 연필을 잘 깎았다. 우리 집엔 연필을 깎는 기계가 없었다. 처음엔 아빠가 곱디곱게 연필을 깎아 주셨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연필을 깎아 달라는 막내딸이 영 귀찮았는지 어느 날 도루코 연필 칼을 내 손에 쥐여주면서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나에게 꼭 필요하다면 스스로 알아서 구해야 하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손이 베이거나 깎여진 연필이 비뚤어져도 감수하고 항상 내 손으로 고집스럽게 깎아서 썼다. 하도 자주 깎아대서 연필이 금세 쪼그라들었다. 연필 깎는 실력이 늘자 내 필통엔 예쁘게 깎인 키 작은 연필들이 늘 가지런하게 놓여있게 되었다. 나는 정애의 필통에 든 연필도 볼 때마다 뾰족하게 깎아주었다. 정애는 집에 연필 깎기가 있어서 반듯하게 깎인 연필을 가지고 다닐 수 있었지만 내가 깎아준 연필이 더 좋다며 뭉툭해진 연필을 내밀곤 했다.
싸구려 연필은 심도 무른 데다 나뭇결도 나빠서 자칫 잘못 칼을 대면 연필의 나무 부분이 숭덩 잘려나가 기다란 연필심이 한쪽으로 흉하게 드러났다. 때문에 나는 연필을 깎을 때마다 초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손가락의 힘을 섬세하게 분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의 집중력은 글자 하나하나를 힘주어 쓰되 지우개를 써서 싸구려 노트가 찢기지 않도록 반드시 틀리지 않아야 하며, 비뚤어져서도 안 된다는 강박으로 이어졌었다. 필기를 할 때마다 지우개를 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정애가 준 연필은 그런 부담을 없애주었다. 그러므로 쓸 때마다 매번 그 연필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한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정애는 지긋하게 나를 보며 ‘그게 그렇게 좋아?’라며 흐뭇하게 웃었다.
학기가 끝나갈 무렵 정애의 어머님이 학교를 한 번 더 찾아오셨다. 어머님은 나를 불러 다시 한번 정애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따뜻한 미소가 어머님 얼굴 위에 있었고 그 미소가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마음속에 있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 나도 정애가 너무 좋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8. 선생님의 거짓말
멀리 떨어져 있는 서로의 집을 원망하며 정애와 나는 생애 첫여름 방학을 맞이했다. 보고 싶어 어떡하냐면서 몇 번이나 서로를 껴안고 비비며 우는 시늉을 했지만 우린 웃으며 씩씩하게 헤어졌다.
하루도 쉬지 않고 몸을 담가 놀던 바닷가에서 새카맣게 그을리다 못해 피부가 몇 겹으로 벗겨지는 수난을 다 이기고, 드디어 개학을 했다. 나는 정애에게 주려고 방학 때 다녀간 일본 친척 언니가 사다 준 글리코 캐러멜을 아껴뒀다가 챙겨 갔다.
개학 첫날인데 정애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둘째 날에도 셋째 날에도 정애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정애가 언제 학교에 오냐고, 왜 학교에 오지 않냐고 매일같이 선생님께 물으면 선생님은 글쎄... 하고 애매한 대답만 내놨다. 나는 선생님을 쫓아다녔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선생님에게 정애의 소식을 물었고, 정애네 집으로 전화라도 해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그렇게 정애가 없는 빈자리와 함께 두 주쯤 지났을 때였나, 아침 조회 시간이었다. 내 옆자리는 여전히 비어있었고 나는 심란했다. 정애가 아픈 건 아닌지, 전에 말한 것처럼 병을 고치러 미국엘 간 건 아닌지 너무 궁금했다. 그날따라 선생님은 목에 흰색 머플러를 감았고 감색 정장을 단정하게 고쳐 입으며 교단에 섰다. 교탁을 짚고 헛기침을 했다. 잠시 그렇게 말없이 서 있었다. 지난 학기에 정애와 내가 나란히 앉아 한 번에 발바닥을 맞았던 그 교탁을 짚고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았다. 읽을 수도 없었지만 잊을 수도 없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눈앞의 허공을 바라보는 것 같더니 갑자기 바싹 마른 어조로 빠르게 말을 이었다. 마치 모든 필기를 한 획에 끝내려는 사람 같았다.
“여러분, 잘 들어요. 두 번 말하지 않습니다. 양정애 학생은 이제 학교에 오지 않습니다. 정애는 여러분이 개학하기 이틀 전 밤에 열이 많이 나서 병원에 갔지만, 치료가 되지 않아 뇌염이라는 병으로 그다음 날 죽었습니다. 여러분도 건강을 조심하고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자, 그럼 이제 수업 시작합니다.”
그것은 가정 통신문에 나온 오늘의 전달사항 같았다.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는 방금 고장 난 녹음기 여러 대가 한꺼번에 틀어진 것 같았다.
죽었습니다...
여름 방학… 고열… 뇌염모기…
양정애는 오지 않습니다...
죽었습니다...
죽었습니다...
죽었습니다... 왜...
아무도 울지 않았다. 나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왜. 죽음이란 다시는 정애를 볼 수 없다는 뜻인 걸 알았지만 그 순간 나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고, 텅 빈 머릿속에서는 선생님의 그 '죽었습니다'란 목소리만 주구장창 울려댔다. 왜 눈물이 나지 않았을까. 왜 정애처럼 우렁차게 울지 않았을까? 나도 정애처럼 크게 울 수 있었을 텐데. 나도 그런 능력이 있었을 텐데. 슬프지 않았나? 서럽지 않았어? 화나지 않았니?
눈물은 고사하고 ‘왜’라는 소리조차 무거워 목구멍 밖으로 꺼내 놓을 수 없었다. 내 몸은 잘 마른 스펀지처럼 갑작스러운 '죽었습니다'를 흡수하며 소리 내어 말할 기운을 잃었다. 나는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내가 완전히 그 '죽었습니다'에 항복하려 했을 때였다. 내 작은 뇌가 선생님이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강한 의심을 제기했다. 곧바로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선생님이 왜 내게 거짓말을 하는지 정확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거짓말이 중요했을 뿐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정애가 살아있을 수밖에 없는 근거들을 쫓았다.
정애는 안 죽었어.
정애는 입버릇처럼 말하던 다리를 고치러 미국으로 갔을 거야. 아무튼 그런 걸 거야. 선생님은 왜 무섭게 정애가 죽었다고 하는 거야? 혹시 정애의 아픈 다리가 더 나빠져서 영영 못 걷게 됐나? 걷지 못해서 학교에 올 수 없는 건데 선생님은 죽었다고 말을 하는 거야? 내가 기다릴까 봐? 내가 찾아갈까 봐? 전화라도 해달라고 또다시 조를까 봐? 그래, 선생님은 내가 귀찮아서 그냥 정애가 죽어버렸다고 했던 거야. 하긴 우리가 다시 만나면 얼마나 시끄럽겠어? 선생님은 우릴 싫어해. 난 알아. 그래서 내가 정애를 만나지 못하게 하려는 거야.
생각해 봐. 정말 정애가 죽었다면 선생님도 슬퍼해야 하잖아. 선생님인데 왜 안 울어? 울면서 말해야지! 선생님은 당연히 울어야지! 아무도 울지 않았어. 같은 거로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정애가 죽었다는 것도 몰랐다잖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같은 마을, 한 동네에 사는데.
우리 엄마 아빠한테 몇 번을 물어봐도 모른다고 했어. 거로 마을에서 뇌염에 걸려서 죽은 아이 소식을 모르다니. 부모님이 모르는 소식이 어딨어? 어른들은 다 알잖아, 안 그래? 부모님은 버스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시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알아. 거로는 다들 걸어서 다니는 거리에 있는 마을이잖아. 우리 엄마가 모를 리가 없다고. 어른들은 뭐든 다 아는데. 정애가 죽었다는데 어떻게, 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거야. 선생님만 정애가 죽었다고 말하는 거잖아.
나는 집요하게 달겨들었다. 학교 정문 앞에 서서 거로 방향으로 가는 거의 모든 동급생, 언니, 오빠들을 붙잡아 물었다. 거로에 사는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저는 1학년 양정애를 아는지. 그 애가 뇌염으로 죽은 것을 들은 적이 있느냐고 말이다. 정말 기가 막히는 건 정애가 얼마나 눈에 잘 띄는 장애를 가졌는데, 우리 반 아이들을 제외하면 거의 아무도 정애의 존재조차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 이건 다 거짓말이야, 나쁜 거짓말! 진짜 나쁜 거짓말, 나쁜 선생님! 정애는 안 죽었어!'
나는 ‘죽었습니다’를 거부했다. 그 말에 순응하지 않았다. 내 친구가 그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는 것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애의 죽음이라기보단 선생님의 거짓말에 더 큰 분노와 물음표를 붙여 두고, 짝꿍에게 작별의 인사도 없이 가버린 괘씸한 정애가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살아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위로 삼아 정애, 그 자체를 잊었다. 면도칼로 연필을 깎았듯이 그녀에 대한 기억을 낱낱이 베어내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 기억의 서랍 어딘가에 아무렇게나 털어내었다. 그래서 나는 슬퍼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누군가 와서 조용히 심장을 꺼내간 것 같기도 했다. 세상이 비어 보였고, 여러 소음 속에서도 내가 있는 자리만 고요하게 느껴졌다. 가끔은 내 몸의 감각이 나에게서 한 두 걸음쯤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웃으면 한걸음 거리에서 그 웃음소리가 돌아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내 귀로 들어갔다. 몽당이가 되어버린 정애의 연필을 잡으면 내가 글자를 쓰는 것이 아니라, 글자들이 세상이란 도화지에 나를 그려 넣으려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정애를 모른 척했다. 그리고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열심히 외면하며 살았다.
9. 아픈 기억도 괜찮다
누구나 가보지 않은 곳을 아쉬워하는 갈망이 있다. 나도 생각한다. 정애가 살아있다면 우린 어떻게 변해왔을까. 상상이 될 만큼 많이 다투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절친이었을 것이다. 사춘기를 지나고 아프다는 청춘을 겪어내면서 아마도 정애는 내 어깨에 기대어 많이 울었을 것 같다. 매일 일어나는 혹은 해야 하는 일에 높고 낮은 벽이 항상 놓여있다면, 그리고 그 벽을 매번 넘어야 무언가를 가질 수 있다면, 물 한 컵도 그 벽 너머에서만 마실 수 있다면 누구나 더 빨리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고 주변이 나에게 맞추어 주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정애가 항상 당당하고 용감하게 살았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하지만 정애는 틀림없이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살면서 정애가 넘어야 할 담장들은 나로 인해 낮아지거나 높아지거나 두꺼워지거나 얇아질 수도 있었을 테지만, 지금쯤이면 우리가 서로의 인생에서 무엇이 되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겠지.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아프다는 것은 그리움이 주는 선물이다. 그건 내가 변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좋은 사람을 기억으로만 둘 수 있다면 그것은 불행일까.
아픈 부분을 도려낼 수 없는 기억은 불행하기만 할까.
아프지 않은 삶이 세상에 있긴 할까.
나는 아직 '죽었습니다'에 베인 상처가 낫지 않았다. 아마도 영원히 낫지 않겠지만 그래도 정애를 생각하면 괜찮은 것 같다. 상처가 기억하는 이야기는 더 오래가는 법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