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가꾸던 베란다의 화분들은 가짓수도 많았고 숲처럼 우거진 모습이었다. 화초 하나하나마다 엄마의 지극한 정성이 묻어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 초록빛 풍경들이 당연한 것인 줄만 알았고,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그 많던 화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시들고 죽어갔다.
나름대로 물을 주고 신경을 쓴다고 썼는데, 나의 서툰 손길을 거부하듯, 혹은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는 듯 모두 초록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무성했던 엄마의 정원에는 쓸쓸한 빈자리만 남게 되었다.
그 후로 수년간 우리 집안 어디에서도 초록이들을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공기 청정을 위해서라도 식물을 좀 키웠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넸다.
아들의 마음에 깃든 작은 아쉬움이 느껴져, 큰맘 먹고 키우기 쉬운 것부터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스킨답서스, 호야, 몬스테라, 스파트필름... 하나둘 들여놓은 초록이들은 어느새 집안을 한결 더 아늑하고 안정감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조금 소홀했더니 녀석들이 금세 어수선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식물은 끊임없는 관심과 눈길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새삼 느끼며, 나의 무심함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의 정원은 단순히 식물을 키우는 곳이 아니라 사랑과 정성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그 지극했던 사랑과 정성으로 엄마는 우리들을 키워내셨겠지...
식물 하나에도 이토록 손이 많이 가는데, 그 힘든 시절 자식을 키워낸 그 시간의 무게는 오죽했을까 싶어 한없는 감사와 그리움이 밀려든다.
오늘은 그렇게, 내 베란다의 작은 정원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리운 엄마를 떠올리고 있다.
오늘의 한 줄 사색
엄마의 정원은 화초를 키우는 곳이 아니라, 자식을 향한 끝없는 사랑과 정성이 표출되었던 가장 따뜻한 마음의 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