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의 서랍

by 달그림자

4장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던 용기: 함정을 만들다

장난과 위험의 경계, 함정 파기


언니들과 오빠가 학교에 가고 나면 혼자 남아 놀아야 했다.


때로는 방걸레질 하는 엄마 등위에 말을 타듯 놀았고 그도 싫증 나면 밖으로 나갔다.

소꿉놀이 장난감을 챙겨나가 땅을 팠고, 땅강아지가 나오면 함께 놀았다.


그러나 땅강아지도 없으면 계속 땅을 팠고 비닐을 주워다 그 위를 덮고는 흙으로 덮었다. 그런 함정을 이곳저곳에 만들었다.


내가 만들고 내가 빠진 때도 있었지만 주로 동네 어른들이 빠졌다.


빠질 때 놀라 소리를 지르면 난 그것을 보며 즐거워했다. 그런 장난이 반복되면서 우리 집에 달려오는 어른들을 보면 숨게 되었다. 또 혼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악의가 아닌 순수한 호기심과 재미로 경계를 넘었다. 하지만 경계 너머에는 늘 야단맞을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성인이 된 후, 나는 물리적인 함정을 파지 않지만, 심리적인 '경계'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다.


실패할까 봐 두려워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못했다.

어렵사리 글을 써서 한 권의 책을 만들고자 준비하면서도 나의 글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이 두려워 참 많이도 망설였었다.


결국 책을 펴냈고 적어도 내가 아는 분들의 따뜻한 관심에 안도의 숨을 쉬었었다.


​어릴 때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해 무모했고, 지금은 너무 많은 위험(실패, 비난)을 감지하여 시도조차 하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음이 너무 대조적이다.

'경계 너머의 용기'를 꺼내 쓰는 훈련


​ 어린 시절 함정을 팔 때는 처음부터 함정을 만들 생각이 아니었다. 그저 땅강아지를 찾으려 팠던 땅이 깊고 넓게 파였고, 그곳에 땅강아지의 집을 만들고자 했을 뿐이다.


그래서 지붕처럼 비닐을 덮고, 사람들이 밟을까 흙으로 그 위로 덮어 주었던 것이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만든 것에 빠지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날마다 만들다 보니 여러 개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장맛비에 웅덩이처럼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새로 산 빨간 운동화 한 짝을 잃어버리게 되면서 두 번 다시 만들지 않았다.


야단을 맞고도 멈추지 않았던 장난 때문에 내가 위험에 처하고 소중한 것을 잃으면서 깊이 자각하게 된 경험이었다.


그것은 다쳐서 병원을 갔던 것과는 달랐다.


지금에 와서 그때 만들었던 함정을 나의 내딛는 발걸음에 징검다리로 바꾸어 보려 한다.


크고 작은 목표와 실천이라는 걸음에 닿을 수 있는 징검다리...

성공적으로 경계를 넘나들 수 있도록 말이다.


함정을 팔 때의 짜릿함에 집중했듯, 도전의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과 배움에 집중하여 두려움의 경계를 깰 수 있는 징검다리로 만들고자 한다.

지금 내가 멈춰 있는 이유는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생겼기 때문이 아니다. 야단맞을 용기를 잃었기 때문이다. 미운 5세처럼 다시 경계를 넘나들 용기를 꺼내어, 오늘 내 삶에 새로운 도전을 위한 작은 함정(기회)을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