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의 서랍

by 달그림자

8장 구슬과 딱지 : 넘치는 소유욕이 '나'를 위한 자원으로 변할 때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동네 아이들이다.


과자상자 안에 구슬과 동그란 딱지를 가득 담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 구슬과 딱지를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함께 놀았다.


난 노는 데는 정말 타고난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 나를 이기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에는 그 구슬과 딱지는 모두 내 손으로 돌아왔다.


이런 결과는 단순한 '소유욕'이 아니었다.

그것은 놀이의 판을 짜고, 아이들을 이끌며,

내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해 결과를 이끌어 내는 '주도권 획득 욕구'였다


어차피 내가 잃어도 우린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게는 또 다시 가득 생긴다.

그러나, 아이들은 좀처럼 구슬과 딱지를 내게서 따가지 못했다.


그 덕에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대장노릇을 할 수 있었다. 비록 조그맣고 나이는 어렸지만 말이다. 내 또래 아이들과는 놀지 않았다. 시시했기 때문이다.


목이 쉬도록 소리 지르며 뛰어놀았던 나는 항상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소꿉놀이에 필요한 것, 줄넘기, 고무줄, 공기, 딱지와 구슬 같은...


빈손으로 나갈 때는 말타기 놀이를 하거나 숨바꼭질, 술래잡기등을 할 때이다.

그럴 때는 아이들이 내 말을 잘 듣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먼지터는 총채를 들고나간다.


그 총채는 때리기 위함이 아니다. 지휘봉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함이었다. 총채를 들면 내가 커진 느낌이었다. 바닥에 표시를 그릴 때도 요긴했고, 이쪽저쪽 가리킬 때도 한눈에 보여 내 뜻을 전달하기에 정말 좋았다.


내게 있던 놀잇감으로 아이들은 내 말을 들어주었고, 난 그것이 늘 좋았다. 한 가지 단점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기에 모두 학교 가고 없으면 늘 혼자였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한동안은 주변에 늘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렸을 때처럼 그런 놀잇감은 없다. 대신 나에게는 입담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이 귀찮고 싫증이 났다. 점차 혼자 있는 시간들이 늘었다.


내가 떠드는 말이 싫었고 새로운 뭔가를 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 내게 있는 것으로는 그 새로움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나의 시간, 나의 열정이라는 에너지, 그것을 이끌어 줄 새로운 지식이 필요로 했다.


어느 날 아들이 건네준 책을 읽다가 다른 책들을 또 읽으며 난 조금씩 끌어 오름을 느꼈다.


그 가운데 '글을 써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적이었던 내가 점차 정적으로 변했다.

나를 들여다보며 모든 원인은 세상에 있지 않고 내게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시간들이 가장 즐겁다.


지금은 퇴근 후 밤에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어린 시절 총채를 들고 구슬과 딱지를 놀잇감 삼아 동네의 놀이판을 주도했던 것처럼,

이제 나의 놀잇감은 '내 시간'이고 목표는 '내면의 성장'이다. 나는 주어진 자원(시간, 에너지)으로 내 삶의 판을 스스로를 리드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려 한다.


잘못 분배되어 구슬을 받고 화가 났던 그 아이가 밀어서 '못'에 박히는 상처를 입었던 것처럼, 나의 자원(시간, 에너지)을 과도하게 몰아 쓰거나(번아웃), 혹은 핑계로 부족하게 분배하면(심리적 숙취), 결국 나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구슬을 아끼지 않고 풀기도, 때로는 소유하기도 했던 것처럼, 현재의 자원(시간, 에너지)을 어디에, 얼마나 배분할지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능력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성공적인 삶은 '운'이 아니라, '자원 활용 능력'에 달려 있다. 다섯 살 내가 구슬과 딱지를 주도적으로 활용해 놀이의 판을 짰던 것처럼, 지금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주도적으로 잘 활용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내 삶의 판을 짜는 리더십은, 내가 모은 구슬과 딱지의 양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