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길을 벗어난 자전거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다섯살 세발자전거는 골목대장을 하고 싶었던 나에게는 너무 시시한 놀잇감이었다.
아버지께 떼를 써서 자전거포에서 가장 작은 두 발 자전거를 빌려서 배우게 되었다.
뒤에서 잡고 계셨던 아버지는 말없이 손을 놓으셨고 난 중심을 잡으며 잘 탔다.
순간 아버지가 손을 놓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대로 넘어졌다.
그러나 금세 다시 일어났고, 처음 올라탈 때만 아버지의 손을 빌렸을 뿐 다음부터는 혼자 탔다.
자신감을 얻었다. 1시간만 타려 했던 것이 2시간을 타게 되었다. 동네 아이들이 학교 가고 없을 때 땅을 파며 혼자 놀던 내게 자전거는 새로운 놀잇감이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 무렵 차도로 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또 자전거를 탔다.
아직 자전거를 타지 못 하는 아이들에게는 나는 이미 베테랑이 되어 있었다.
우쭐대는 마음에 자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시큰둥했다. 그러한 반응에 실망하자마자, 나는 아버지와의 약속(차도로 가지 않겠다는)이라는 경계마저 쉽게 넘어섰다.
자기들끼리 공주능으로 가서 놀겠다며 뛰어가는 아이들 뒤를 자전거 타고 따라갔다.
그리고 앞질러 달리게 되었다. 그렇게 차도를 건너 공주능까지 시원하게 달렸다.
우쭐대고픈 단순한 마음이 약속이라는 책임감을 잊고 질주하게 된 것이다.
가는 길에는 무사히 건넜는데 돌아오는 길에 차도 건널목을 지나는 택시옆구리를 박았다.
순간 넘어졌고, 놀라서 뛰어나온 택시운전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친 여부를 확인 후 한시름 놓은 듯 알지 못할 말들로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 일로 눈물 콧물 다 빼고 울면서 집으로 왔을 땐 걱정하며 찾던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잘못을 알고 있었다. 야단맞을 각오도 되어 있었다. 그러나 택시와 부딪힌 이야기를 내가 하기도 전에 다른 아이가 먼저 이야기를 했다.
그 때문에 다친 곳은 없는지 놀라서 울고 있다는 것을 아신 부모님은 야단대신 안아 다독여 주셨다.
진정된 후 아버지는 자전거를 나와 함께 자전거포로 가져다주시면서 이야기해 주셨다.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단다. 그것은 힘들다고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과, 지켜야 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란다."
평소 말이 별로 없으셨던 아버지의 그 말씀은 내게 단호한 '삶의 경계선'처럼 다가왔다.
이후 나는 두 번 다시 자전거를 빌려 타는 일이 없었다. 아버지께 떼를 쓰지도 않았다.
자전거를 타며 얻었던 짜릿한 주도권은 곧 약속을 지켜야 할 책임감과 함께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고보다 더 크게 와닿은 것은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무거운 마음이었다.
순간의 자유로움은 좋았으나,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계속 마음에 걸렸다.
이 무거운 마음은 자전거를 통해 배운 짜릿함과 함께, 내 안의 경계를 스스로 통제(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 해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남았다.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이야말로, 내 삶의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방법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