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의 서랍

by 달그림자

7장 삶의 짐을 내려놓는 미니멀리즘

장작더미의 트라우마를 비우다

아버지와 나는 양평에 있는 큰집에 갔다.

밤하늘의 달은 크고 환했다. 달무리도 넓게 잡혀 달을 더 크게 보이게 했다.

별들은 촘촘히 박혀 금세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그렇게 달 밝은 밤하늘을 보며 놀다가 마루에서 잠이 들었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깼다.


마당구석 장작더미 위에 덮인 비닐은, 달그림자 속에서 바람에 마치 사람이 손짓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공포에 압도된 나는 화장실을 못 가고, 참다가 바지에 실례를 하게 되었다. 이후 큰집 오빠들에게 놀림거리가 되었고, 그 일로 집으로 오는 날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괜찮다는 아버지의 말씀에도 난 울었고, "두 번 다시 시골엔 안 갈 거야"하며 괜한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지금은 그 일을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가끔씩 떠오르는 그다지 즐겁지 않은 기억이다.


장작더미가 그렇게 높게 느껴졌던 것은, 내게 트라우마 같은 기억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큰 집에 가면 난 장작더미 근처에도 안 갔다.


놀림 속에 수치심을 느꼈던 첫 경험이었고, 그것으로 내 마음에도 감추려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이후 마냥 천방지축이었던 나를 조금은 잠재우는 사건이었고 조금씩 소심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마음의 짐처럼 남아있던 그 사건 당시, 내가 아끼던 작은 인형이 있었다. 그 인형은 반짇고리에 들어가 바늘꽂이가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오랜 시간 우리 집에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도 얼마후까지도 그대로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반짇고리에서 그 사건의 기억이 담긴 인형을 발견했다.

작은 인형은 당시의 수치심과 위축된 감정을 한순간에 되살려 냈다.


그 일로 인형을 버리면서 반짇고리도 정리했다. 그 참에 장롱도 정리했다.

그 속에서도 역시 많은 기억들과 함께 많은 감정들이 묻어 나왔다.


책꽂이에 있는 책과 노트를 정리하면서 기록해 두었던 내용들 속에 또 다른 기억과 감정들이 올라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적어두었던 가계부도 있었다. 힘든 생활의 흔적 속에 장난감을 사주지 못해 마음 아팠던 내용도, 술 마시고 큰돈을 쓰고 들어 온 남편과의 다툼도,

이런저런 사연들이 있었다. 즐거움 속에 행복도 다툼 속에 속상함도 모두 새록새록..


어른이 되어 내 머릿속을 채운 '과거에 대한 후회, 타인에 대한 미움, 미래에 대한 불안'은 털어내도 끝없이 나오며 정신적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물건들을 버리면서 위축되었던 마음도, 후회와 미움등 남겨졌던 감정들마저 버려진 듯 홀가분함을 느꼈다.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물건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비어진 공간을 통해 복잡했던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움'과 '희망'을 발견하게 하는 힘이 있다.


어쨌든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미라클 나이트'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결국 비움은 또 다른 채움이다. 불필요한 짐을 비워 내면서 내 영혼 '성장을 위한 미라클 나이트'를 누릴 공간이 생긴 것이다.


과거의 짐을 내려놓고 확보한 이 공간이야말로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창조의 시간을 확보하는 강력한 에너지를 얻는 공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