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의 서랍

3부 감정의 전쟁터에서 평정심 찾기

by 달그림자

11장 "아가리에 껌 있어?"


언어의 충격과 감정 방화벽의 시작


부엌에서 엄마의 바쁜 손놀림이 느껴지는 것은 도마 위를 때리는 칼과 부딪치는 그릇 소리였다.


한 상 가득 차려진 밥상앞에 앉으면 할아버지가 항상 무릎 위로 날 앉히셨다.

맛있는 반찬을 밥술 위에 올려 입안 가득 물고는 할아버지 무릎 위에서 흔들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시고 할머니는 '저 주둥이 좀 봐라' '아가리에 하나 가득 뭘 그리 많이 넣었나' 하시며 웃으셨다.


그때만 해도 난 입이 '주둥이'고 '아가리'인 줄 알았다.


어느 날, 우리 가게 앞에 긴 의자 위에 동네분과 삼촌이 마주 앉아 장기를 두고 계셨다.


난 내게 있던 껌을 삼촌께 드리고 싶었다.

삼촌입에 무언가 있는 것처럼 씹고 계시길래

삼촌 얼굴 가까이 들이대며 물었다.

"삼촌 아가리에 껌 있어?" 순간 삼촌과 함께 장기를 두고 계셨던 분이 "이 녀석, 아가리가 뭐야? 어른한테..."라며 큰 소리로 야단을 치셨다.


그러고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난 놀랐다.

내가 잘 못 했다는 느낌은 큰 소리였을 뿐, 왜인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당황한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삼촌이 달래며 안아주셨지만, 소용없었다.


​그때 나는 세상이 무섭지 않았지만, 내'말'에

화를 내는 반응은 처음이었기에 나를 야단쳤던 그 어른을 피했다.


우리 집 앞에 앉아계셔도 껌과 사탕 그 어떤 것도 그분에게는 주지 않았다.


처음으로 '내 의도와 관계없이 타인의 말에 의해 규정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우리는 물리적인 꾸중 대신 SNS의 비난, 직장 동료의 험담, 함께하는 사람들의 무심한 말 등 보이지 않는 '언어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타인의 말과 시선이 우리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이런 소리 들을 바엔 시도하지 않겠다'는 핑계를 만들어 도전하려는 마음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거대 매체를 통해 폭 넓어진 반면 쓸데없는 말이 난무하기도 한다. 이런 세상에 ​타인의 말로 인해 내 영혼에 불이 붙어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내면의 영역을 보호하는 방화벽이 더욱 필요해진 시대이다.


삼촌에게 껌을 주려던 나의 마음에 상처를 입고 껌을 주고 싶었던 마음이 울음 속에 잊혔다.


결국은 야단치는 소리에 나의 하고자 했던바를 잊게 되어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은 지금을 살면서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다.


말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부정적인 비난을 들었을 때, '이 말을 받아들여야 할까?'를 3초간 생각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무시해 버린다.


그리고 나의 뜻한바대로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단되면, 재 검토를 해본다.

그리고 '말의 의도'가 뭘까?를 생각해 보지만, 그 말과 '나의 가치'를 연결 짓지는 말아야 한다.


상대의 말에 나의 가치가 올라갔다 떨어졌다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무릎에 앉혀 "신통, 방통, 오줌통, 똥통..." 하며 나의 존재를 최고로 예뻐해 주셨던 할아버지의 노래를 떠 올려본다.


"난 그렇게 신통 방통한 사람이야."


나비가 되기 위한 날개는 타인의 시선과 말에 의해 꺾여서는 안 된다. '아가리' 사건이 내게 남긴 상처는, 이제 내면의 성곽을 쌓는 기초적 벽돌이 되었다. 외부 요인들에 의해 부서지는 감정들은 나의 방화벽에 의해, 순수한 채로 지켜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