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속에 살아 있음을 느낄 때가 언제일까?
그냥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나른한 시간,
그러다 급체를 하거나, 감기로 통증을 느끼고 괴로울 때, 깊숙이에서 올라오는 것은 산다는 것은 이런 고통과도 동반을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응"하고 대답을 하게 된다.
유독 힘든 나날이 지속될 때는 노력 없이 쉬웠던 모든 일이 어려워짐을 느꼈다.
웃는 일은 일상이었는데, 웃음을 잃게 되니 얼굴 근육이 굳어서 웃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다.
웃음을 잃고 나니 밥 먹는 것이 힘겹게 느껴지게 되었다. 먹으면 소회가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신경을 많이 쓰니 잇몸도 더 근 더 근 아파왔다.
이런저런 걱정 근심에 잠을 잘 수 없게 되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게 되니 두통이 따라왔다. 점점 더 예민해지고 어느 날 눈도 흐려져 안경을 써야만 했다.
툭하면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고 생각했던 그 노는 것이 어려워졌다. 천근만근 무거운 마음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노는 것조차 힘들었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는 차를 끌고 나가 차 안에서 목청 놓아 울었다. 그렇게 울고 나면 속이 좀 후련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는 일도 하지 않았다. 우는 것도 마음에 어느 정도 의욕이 남아 있을 때 할 수 있음을 알았다.
좌절과 절망이 앞을 가리니 그렇게 쉬웠던 걸음이 무겁고 아파서 걷는 것이 어려워졌다.
소리도 잘 들리고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었는데, 어떤 것에도 집중이 되질 않아 듣는 것조차 어려워 무슨 말인지 다시 묻게 되었다.
그렇게 쉬웠던 일들
웃는 것, 먹는 것, 잠자는 것, 보는 것, 노는 것, 우는 것, 듣는 것 등... 이 어렵게 느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러다가 숨 쉬는 것조차 어려워지면 이제는 죽는 것이겠구나"
"이것이 바닥까지 떨어졌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제는 바닥을 쳤으니 올라가는 일만 남았구나. 바닥을 세차게 차 보자.
그리고 올라가자"
그렇게 치고 올라오는데, 그동안 쉬웠던 모든 것이 노력 없이는 되지 않았다.
다시 걷고 뛰기까지 다리의 통증을 이기고 다시 걷기를 반복하는 노력을 요했다.
먹고 나서 소화를 시키기 위해 움직이며 운동이라는 노력을 필요로 했다.
굳어진 얼굴을 펴기 위해 연필을 입에 물고 억지웃음을 만들며 웃어보려 노력을 했다.
숙면을 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기를 지치도록 했다.
울고 싶다는 감정으로 눈물을 흘리기까지 유연한 마음을 갖도록 생각을 바꾸는 노력을 책을 통해 했다.
마음에 조금의 여유가 생기니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일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조금씩 어울려 놀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흐렸던 눈도 조금은 밝아져 안경을 쓰지않게 되었다.
"그래 산다는 것은 대단한 게 아니야. 내게 쉽게 느껴졌던 일들이 그대로 쉽게 느껴질 수 있다면 그것이 사는 거야.
그리고 감사하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니야. 바로 이런 게 감사한 거야. 행복한 것도 멀리 있는 게 아니야. 이런 일상 자체가 행복인거지"
가장 쉬웠던 것이 그대로 쉽다 느껴질 때, 그 순간을 감사하고 사랑하며, '행복하구나'를 알아차리는 것이 우리가 받은 최고의 '복'이라는 것을...
모두 큰 복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