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마쿠사-마츠시마 코스는 봉긋 솟아오른 한 개의 봉우리 때문에 스릴과 재미가 있었는데 오늘 코스는 어제와는 어떻게 다를지 기대된다.
평범한 일본 가정식 아침 식사를 했다. 작고 앙증맞은 종지에 먹을 만큼 담긴, 조금 야박하다 싶은 양인데 다 먹고 나면 충분하다는 느낌이 든다. 호텔 지배인이 시작점까지 태워다 준다 해서 채비하고 나서는 데 해가 쨍하고 쾌청하다.
아마쿠사 제도에는 5개의 크고 작은 연륙교들이 놓여 있다. 우리는 그중에서 5호 연륙교를 지나 마츠시마에서 이와지마로 넘어간다. 20분여 걸려 아마쿠사-이와지마 코스(天草・維和島コース)의 시작점을 향해 가는데 맑았던 하늘이 짙은 회색 구름으로 가득한 것이 왠지 비가 내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우리는 지배인에게 우산을 빌려 달라 하니 잠깐 기다리라고 한다. 그런데 자동차를 온통 뒤져 보아도 우산이 보이질 않자 매우 낭패한 표정을 짓는다. 괜히 걱정을 끼친 것 같아 우리는 강하니까 비가 와도 걱정 없다고 안심시켜 돌려보낸다.
바닷가 낙엽 쌓인 조붓한 산길을 가볍게 오르니 아침부터 무덤들이 즐비하다. 20여 기의 센자키(千崎古 墳群) 고분이 줄지어 속살을 보여준다. 더러는 흔적으로 또는 흔적도 없이 표시만으로 짐작할 뿐인 오래된 공동묘지인 셈이다. 약간 미끄러운 데다 어둡고 습하기까지 하다.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더해지니 더욱 스산한 느낌이 든다. 너무 오래된 영혼들이라 기운들도 없겠건만 밤새 비에 젖은 나뭇잎을 조심조심 밟으며 걷는 우리는 이들의 기운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인사를 마음속으로 나누며 긴 과거를 거슬러 오르며 시간 여행을 한다.
곧바로 길은 바다로 향하고 해안가로 내려서는 길은 이끼가 끼고 습해져 있어 매우 미끄럽다. 등산 스틱도 없고, 대나무 지팡이도 없는 곳이어서 살얼음판 걷듯 살살 걸음을 걷는다.
바닷가 마을의 널찍한 고샅길을 한 바퀴 돌아 나가니 바다다. 방파제 옆으로는 잘 포장된 해안 길이라 걷기에 딱 좋다. 바다를 향해 앉아 있는 좌불상이 익살스럽다. 육지 방향으로 피난처라 쓰인 팻말들이 자주 보이는 것으로 보아 잦은 지진이나 해일 등을 대비한 공간이 위쪽에 있는 모양이다. 이곳 열두 번째 규슈 올레는 조금 독특하다. 간세와 리본이나 화살표 외에 굵은 붓글씨체의 안내 글씨와 붉은 화살표가 그려진 간판이 자주 친절하게 보인다.
조조 어항(蔵々漁港)을 지나며 아침 해안 길을 걷는 매력에 빠져 정신없이 걷다 그만 길을 놓쳤다. 그 바람에 시로가 태어났을 때 목욕물로 사용했다는 우물과 시마바라 난을 자세히 기록해 놓은 게시판을 만난다. 오늘 길이 아마쿠사시로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암시라도 하듯이…. 때때로 길을 잃고 헤매다 보면 우연히 얻게 되는 발견도 있다.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바닷가 마을의 골목으로 들어선다. 이끼 낀 담장 너머로 손질해 둔 그물이 걸려 있고, 화덕에서 나무 타는 냄새도 나고, 더러는 폐허가 된 집들도 있는 마을의 고샅길을 걷는데, 눈에 띄는 집이 있다. 담장 위 나무에 온갖 장식물을 걸어 놓았는데, 그중에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인 가리비가 있는 것이다.
문득 그 길에서 만났던 많은 인연과 추억들이 떠올라 그 기억들을 벗 삼아 센자키 산으로 오른다.
산의 초입에 있는 도우쿠 신궁의 문은 닫혀있고 이끼 낀 계단과 오래된 고목 위의 새들만이 우리를 반긴다. 러·일 전쟁 종군 기념비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때 전사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사당인듯싶다.
포장이 잘되어 있는 산길이라 힘들이지 않고 아마쿠사 제도를 사방으로 볼 수 있는 벚꽃 동산 전망대(維和桜・花公園)에 도착한다. 전망대 오르는 길에 시로 탄생 400주년 기념 현수막이 걸려 있다. 전망대에서는 멀리 잔잔한 바다와 아마쿠사의 여러 섬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바로 아래에는 옛 학교 자리임을 안내하는 표지가 있다. 시로가 지적 호기심과 탐구심이 강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재밌는 것은 그 곁에 총리대신 아베의 부인이 2013년 식수한 귤나무가 열무 단에 둘러싸여 초라하게 있는 모습이다. 삶의 덧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리고 오늘 코스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다카야마(高山)이다. 산 위에서는 사방으로 터진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가까이 시마바라반도는 물론 멀리 아소산을 비롯해 규슈의 산줄기들이 명암과 채도를 달리하며 눈앞에 펼쳐진다.
< 다카야마에서 본 아마쿠사제도 >
내려가는 숲길에는 멧돼지 포획용 함정 틀이 보이는 거로 보아, 이곳에도 멧돼지가 자주 출몰하는가 보다. 길을 다니다 보면 그놈들의 발자국과 이빨 자국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혹시나 마주칠까 노심초사하며 이 길이 끝날 때까지 대면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본다.
호카우라 해안(外浦自然海岸) 길로 가기 위해서는 가파르고 미끄러운 산길을 내려가야 하는데 그나마 짧은 구간이라 다행이다 쉽다. 탁 트인 바다와 6,500만 년 전의 지층이 드러나는 판상절리가 길게 이어진다. 날카로운 돌길에 파도가 언제 밀려올지 모르고 안전장치나 피할 곳이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는다. 물때를 미리 알아 두지 않고 이 긴 길을 걷는 모험을 하는 우리가 무모해 보이는 순간이다. 정신 차리고 자세히 살펴보니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지형이 아니고 바닷물이 마른 것으로 보아 썰물 때인가 보다.
< 호카우라 해안 >
그런데 갑자기 너울성 파도가 발 뒤꿈치까지 올라온다. 나도 몰래 모골이 송연해져 혼자 뛰다시피 걸으니 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비로소 한숨 돌리며 뒤에 오는 남편을 기다려 만난다.
계면쩍어하는 나에게 ‘그래, 둘 중 하나라도 살아야 상황을 수습할 테니까….’ 라고 하며 ‘허허’ 웃는다.
한바탕 흘린 식은땀을 식힐 겸 앉아 쉬는데 발밑에 검은 빛, 흰빛, 분홍빛 등 형형색색의 편편한 돌들이 눈에 들어온다. 파도에 깎이고 떨어져 나온 것들이 다시 부서지고 마모된 기나긴 세월의 흔적을 본다. 인간의 시간으로 감히 헤아리기 힘든 까마득한 시간의 흐름 속에 남겨진 증거물이다. 이 또한 산산이 부서져 좁쌀 같은 모래가 되어 이 해변을 백사장으로 변신시킬 것이다. 그 세월을 우리 인간들이 가늠할 수는 없겠단 생각을 하며 고개 들어 멀리 수평선을 본다.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더 걸으니 마을로 접어든다. 가두리 양식과 약간의 농사를 주업으로 살아가는 갯마을 풍경이 이어진다. 낚시를 할 수 있는 민박집도 있다. 일반 가정집 같은데 무슨 수산이라 팻말을 단 유한회사도 있다. 노인들이 밭에 나와 일을 하고 어구를 손질하는 모습, 폐허가 된 빈집, 정원까지 잘 가꾸어진 부잣집도 있다. 조경원(釣耕苑)이라 쓰인 집 앞에 올레 스탬프와 안내 팸플릿이 놓여 있다.
아마쿠사-이와지마의 종착지는 작은 항구 앞에 센조쿠 천만궁(千束天満宮:학문의 신을 모시는 신사)이다.
아마쿠사시로가 태어난 마을을 걸었던 우리는 아쉬움이 남아 발걸음을 박물관으로 옮긴다.
< 아마쿠사시로의 박물관 >
이곳에서 17세 어린 소년의 불꽃같은 삶과 죽음을 보았다.
삶의 혹독한 진실 앞에 선 민중 지도자로서의 시로, 그의 선택은 순교였다. 투항은 선과 악의 구도에서 악에 대한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었기에 뼈아픈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숭고한 종교적 전투 혹은 전쟁에서 전술과 전략은 단순히 현실의 승리가 아니라 역사의 승리 혹은 영원의 승리가 되어야 했기 때문일까? 시로는 농성과 항전 끝에 3만 7천의 동지들과 결사의 길을 갔다.
< 시로 박물관에 보관중인 편지 >
이들의 행적을 찾아보며 시마바라반도에서 400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 일본 역사와 일본의 기독교사에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스토리텔링은 아마쿠사 제도와 시마바라반도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일본 열도 전체에 울림을 주는 역사 드라마일 것이라는 생각이 내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오늘의 여정 12km는 역시 예상외의 반전이 있어 어제의 마츠시마와는 다른 감동을 주었다. 늘 길은 예상을 빗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길의 매력이다. 똑같은 장기판이 없듯이 똑같은 길도 없는 것이다.
오늘도 길이 주는 깨달음을 또 얻는다. 이 길은 원래 있던 길 위에 의미를 담아 새로 길을 내며 이름도 붙이고 애정으로 다진 길임을 마음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