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일일

시작하는데 286일, 이거 실화냐?

by 사jang

어쩌다 눈에 띈 9회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 당시 우연히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게 됐고 종이책을 내준다는 출판 프로젝트를 보고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2021년 10월 24일 마감.


나 작가 해야 하는 건가? 오늘부터 내 꿈은 작가가 되는 건가?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에 지원하려면 먼저 브런치 작가가 돼야 한단다. 그래야 글을 올릴 수 있단다. 남은 시간은 한 달 남짓. 뭐 까짓 껏 해보는 거지. 맨땅에 헤딩하기가 내 주특기 아니던가. 나는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냥 시작은 아니 될 말씀. 장비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다음날 나는 애플 스토어를 찾아갔다. 태어나 처음 가본 신사동 애플 스토어. 줄을 서서 기다렸다 들어가는 포스 하며 세련됨에 위축됐지만 난 내 인생에 중대한 일을 만들어낼 장비를 사러 온 것이 아니더냐. 지금 두드리고 있는 하얀 자판의 미끈한 아이패드를 구매하고.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쿠팡이 10프로 싸다길래 미끈한 아이패드를 보며 침을 흘리며 대신 하얀색 최첨단 자판을 하나 구매하고 살짝 비굴하게 쿠팡에 아이패드 구매 버튼을 눌렀다. 간지 나게 아이패드를 딱 들고 나오고 싶었지만 10프로 디씨가 어딘가. 내일 아침 문 앞에서 받을 수 있다는데 묵직한 애플 쇼핑백을 들고 나오는 당당한 퇴장각을 어렵사리 떨쳐버리고 가벼운 쇼핑백 하나를 들고 애플 매장을 나왔다. 그다음 날 대망의 장비가 문 앞으로 배달되었고. 나의 비장한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글을 쓰며 과거에 젖어든 나는 밤마다 울컥하는 마음의 파도에 휩쓸려 나의 핏빛으로 얼룩진 과거를 글로 쏟아냈다. 이 정도면 책 반권 분량은 되겠는걸? 이 정도면 충분해라는 생각으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안타깝다는 메일을 받았다. 뭐지?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자존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전혀 안타까워하지 않는 포스였다. 현타.


다음날 도서관에 갔다. 작문법에 관한 책을 열 권 정도 빌린 것 같다. 뉴욕 타임스 편집장이 쓴 <글을 잘 쓰는 법> 이란 신간은 바로 구매했다. 뉴우욕 타임스 편집장 이라자나. 도서관에 들어오길 기다릴 만큼 난 여유롭지 못했다. 며칠간 책을 독파했다. 나쁜 글이 되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써 있는 공통된 덕목은 내가 죄다 지키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역시 선조 (나 보다 앞서간 사람들의 통칭) 들의 지혜를 무시하면 안 되는 거였구나 생각하며 다시 글을 썼다. 이번엔 양으로 승부하겠다는 헛된 과욕을 과감히 물리치고 짧고 간결한 글을 써서 다시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두 번째 메일엔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 뿐이어도 너무 기쁜 문장이 쓰여있었다. 게다가 소중한 글을 기대한다는 기대감 충만한 립서비스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2021년 10월 22일. 이틀 만에 브런치 프로젝트에 제출할 글을 쓴다는 건 현실감 떨어지는 도전의식으로 가득 찬 나로서도 벅찬 일이었다. 이번 기회는 놓쳤지만 앞으로 실력을 갈고닦아 다음 프로젝트에 지원하리라 굳게 다짐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오늘은 2022년 8월 4일. 회심의 미소 이후로 286일이 지났다. 시간은 살같이 빠르더라. 어느 날 브런치에 10회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가 눈에 띄었다. 똑같은 문구에 숫자가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내 심장은 전 보다 펌프질을 더 세게 해댔다. 이번엔 심장이 나를 질타하는 펌프질이었다. 이 못난 놈아. 날짜를 계산해보니 니가 봐도 한심하지? 이제껏 글 하나도 안 올린 거 실화냐? 나는 심장에게 말한다. 아니 내가 안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진짜 바빴다니까. 그동안 유튜브도 개설하고 매주 업로드 마감을 지키느라 나름 고행길을 걸었다고. 요즘 피아노를 치느라 손톱이 벌어져서 오늘도 밴드로 꽁꽁 싸고 연습을 했다고. 말이 쉽지 일주일 동안 새 곡을 연습해서 영상을 찍는다는 게 에너지 소진이 엄청나다니까. 그리고 지금은 애들 방학이고. 애들도 챙겨야지. 하루 24시간은 시작과 동시에 공중분해된다고. 내가 차분히 요동치는 심장에게 열심히 excuse(핑계)를 대도 한번 성난 심장은 쉽게 화를 거두지 않는다. 그런 건 다 루저 들이나 하는 소린 거 몰라? 세상에 이유 없는 무덤 없다고! 심장이 나에게 일침을 날린다.

난 반드시 오늘은 글을 써서 올리겠노라고 심장에게 단단히 약속하고. 지금 이 시각 8월 4일 10시 8분까지 종일 소화불량에 시달리다 드디어 글 하나를 썼다.

오늘이 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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