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주제가 뭔데?
브런치 작가가 되고 286일 만에, 어제 처음 글을 올렸다. 종일 소화불량에 시달리다 오늘도 안 올리면 난 사람이 아니다 주문을 외우며 올린 첫 글. 잠시 후, 띠링~ “야초툰님이 라이킷을 했습니다” 이게 뭐지? 오… 내 글을 누군가 읽었다니. 너무 신기했다. 말이 브런치 작가지 난 핸드폰으로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보는 것 자체가 여전히 익숙지 않은 생초보다. 난독증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 건지, 아직도 손 길이 익숙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 나에게 알림이란 게 떴다. 자존감 상승. 그래, 이제부터 나는 글을 쓸 테다. 하루 한 개 글을 올리기로 마음먹었으니 오늘 할 일은 끝난 어젯밤, 늦게 까지 또 글을 썼다. 옆에서 울려 퍼지는 온갖 소음에도 꿋꿋이 거실 자리를 지키며. 아침이 되어 어제가 오늘이 되었다. 쓴 글을 읽어보았다. 어제 쓴 글은 안 올리는 걸로.
시작이 반이라고, 난 반이나 해치운 건데 그다음이 더 문제다. 뭘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또 소화불량이다. 지금 시각 오전 8시 47분. 아직 아이들이 자고 있다. 둘 다 어제 2시 넘어 잤으니까 오늘 아침엔 깨우지 말자. 어제 나의 두 번째 글이 산으로 간 건 아이들과 함께 공존하는 부산스러움 때문이었니까. 오늘은 다시 맘 잡고 두 번째 글을 쓰는 거야. 오키? 마음의 소리에 나는 자동 모드로 대답을 한다. 오케이! 그런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지? 어제는 아무 생각 없이 잘 만 써지던 글이 그놈의 라이킷을 받고 나니 싱숭생숭 글이 안 써지는 기분이다. 에라 모르겠다. 이럴 땐 선조의 말씀을 떠올려보자. 선조들의 말씀엔 글엔 주제가 있었야 한댔다. 그러니까… 내가 앞으로 쓰고자 하는 글의 주제를 한 마디로 요약 하지면, 삽질이다. 삽질이 뭐? 그건 주제가 아니고 소재 아니야? 단어 하나잖아. 다시 주제를 말해봐.
네, 알겠습니다! 정신 똑디 차리고 주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나 사jang은 살면서 많은 삽질을 했고, 삽질에서 인생의 의미들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삽질 예찬론자가 되었고, 삽질의 효능에 대해 전파하고자 합니다. 먼저 저의 삽질의 역사에 대해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말씀드리고 (여기서 항상 걸림. 말이 너무 많아지는데, 그럼 내 글을 아무도 안 읽을 것 같아 걱정이 많아진다. 그럼에도 글이 줄어지지가 않는다는 것이 문제) 삽질의 효능에 대해 심리학적, 뇌과학적, 현실적 측면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의 글이 자주 산으로 간다 하여도 부디 이탈 말아주시고 계속 읽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참고로, 저는 다른 누군가가 내 글을 읽는다는 부담감을 태어나 어제 처음 실감한 초보 작가임을 밝히며 여러분의 너그러움에 호소하는 바입니다.
하나 더, 뜬금없는 사jang 에 대한 부연 설명하고 두 번째 글을 마치겠습니다.
닉네임이라고 하나? 작가명이라 해야 하나? 사람들은 실명 말고 그런 걸 쓰더라고요. 그게 확실히 있어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도 고민을 해봤는데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 그냥 막 정했습니다. 사jang 의 유래는 제가 프랑소와즈 사강을 좋아하는데 성이 장 씨라 사jang 으로 정했어요. 집히는 대로 읽는 스타일인 제게 어느날 눈에 띈 <슬픔이여 안녕>. 저는 그 책을 읽고 사강에게 빠져들었고, 사강 신드롬에 뒷북을 쳤습니다. 그녀의 필체도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저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과감한 설정, 관습법적 사회 규범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껏 내달리는 그녀의 질주. 그녀의 글과 인생이 그러했듯 남 눈치 안 보고 온 몸으로 도전과 스릴을 즐기는 반사회적 사유와 행동 양식을 저는 사랑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녀처럼 막 나가는 사람은 아닙니다. 저는 도박도 할 줄 모르고, 약물에도 손을 댄 적도, 스포츠카를 몰아본 적도 없습니다. 그녀처럼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고 나를 변호하며 쿨하게 사회적 규범을 뛰어넘기는커녕,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사회 시스템에 착실히 순복하고 살아가는 소시민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그녀가 두 번째 남편과 이혼할 때 “결혼이란 아스파라거스에 비니그레트 소스를 곁들이느야 아니면 네덜란드식 소스를 곁들이느냐의 문제, 곧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쿨하게 관습법을 발로 차 버리는 모습은 언제 간 나도 한 번쯤은 해보고픈 소망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욕심이 허락되어 한 가지 소망을 더 말하라고 신령님이 묻는다면 이것 만은 꼭 한번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슬며시 넣어봅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주인공처럼 14살 연하의 구애를 한 몸에 받아보는 것. 그리고 단언컨대, 나라면 폴(여주)처럼 백마 탄 왕자님으로 나타나 그녀를 별 이유 없이 사랑한 연하남 시몽(젊은 남주)을 버리고 바람을 옷 깃에 스치는 바람처럼 여기는 전 남친 로제(늙은 남주)를 선택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아마도 제가 사강을 흠모하는 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졌기 때문에 그 부러움의 발로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자칭 사jang 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