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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혜 Nov 21. 2024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글씨체를 보면 사람의 성격을 수 있을까?

나는 자필로 된 편지나 글을 보면, 그 사람에게서 느끼는 생각과 모습 등과 비교하는 습관이 있다. 오래전부터 특별한 이유 없이 호기심을 갖고 재미 삼아 해오던 습관이었다. 요즘은 SNS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직접 쓴 글씨를 볼 기회가 거의 없다. 그래서 가까운 지인이라면 평소의 성품과 글씨체는 어떨까 하고 아주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간혹 메모라도 보게 되면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된다.


차분한 외모와 달리 정리되지 않고 날카로운 듯한 글씨체라면 호감도가 달라진다. 반면에 부드럽고, 단정하면서 정성이 담긴 글씨는 다정하고 긍정적인 성품이 묻어나서 그 매력에 끌리기도 한다. 이것은 예술적으로 글씨를 잘 쓰고 그렇지 않은 것과는 무관하게 지극히 내 주관적인 생각이다.


글씨에 비교적 관심이 많은 나는 어려서부터 글씨 쓰는 것을 좋아했다. 학창 시절에 선생님께서 칠판에 가득 채운 그날의 학습 내용을 필기하는 것도 공들여 썼다. 그런데 가끔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데, 필기까지 깔끔하게 하는 반장 아이가 있었다. 관심 있었던 것이라 그 친구의 공책을 책상 넘어 힐끔 넘겨다보곤 했다. 태연한 척했지만, 어린 마음에 내심 부럽고 따라 해 보기도 했다. 


특히 아버지가 글씨를 잘 쓰셨다. 내가 출가하고도 몇 해 동안 편지로 안부 보내오셨는데 그 속에는 늘 딸자식 걱정과 사위를 향한 마음을 자주 표현하셨다. 아마도 직접 말로 할 수 없었던 것을 편지로는 덜 어색하셨던 것 같다. 말로는 쑥스러울 테지만 편지로는 살가움과 다정함을 표현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아버지의 편지 속에는 평소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툭툭 던져진 듯하지만 둥글게 혹은 꺾은 획들이 부드러우면서 힘이 넘쳐 있어서 꼭 닮고 싶은 글씨체였다. 가끔 아버지가 어떤 일을 못 이기는 척 져주실 때 짓는 웃음 같은 글씨를 느낄 때가 있었다. 


앞뒤 문맥상 이해할 수 있게 어렵지 않은 한자가 섞이고, 간혹 유머가 담기고 적당히 흘린 글씨체가 멋있게 보였다. 열심히 따라 쓰면서 집중했었다. 매일 쓰고 또 틈만 나면 흉내를 냈다. 


군 위문편지와 남편에게 연애편지 쓰기를 좋아했던 것도 그 영향이 있었다. 가끔 펼쳐보는 그때의 손 편지는 추억이자 낭만이다. 지금도 장롱 서랍 속에 자리 잡은 연애편지가 지금 보면 쑥스러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때의 추억은 무엇으로도 다시 만들어 내지 못하는 아름다움이다.




요즘은 글씨를 손으로 쓰는 것보다 대부분 휴대전화나 컴퓨터 사용에 익숙해져 글씨를 제대로 쓸 기회가 적어졌다. 급속도로 빨라진 시대에 손으로 쓰는 글로 소식을 전하는 것이 그 속도에 맞추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가끔 심호흡하듯 손 편지의 느린 소통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특히 우리 손자들도 마찬가지지만 말을 배우기 시작하고 전자기기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컴퓨터 문화에 깊게 스며들 수밖에 없다. 손 글씨 쓰는 것보다 SNS로 소통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손대신 컴퓨터 자판으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으니 글씨 쓰는 기회도 줄고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사실 예쁘고 잘 쓰는 글씨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다 그렇지 않음을 오해 없길 바라며, 요즘 컴퓨터를 필수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글씨를 보면 간혹 예전에 아버지에게서 볼 수 있었던 그러한 정서를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문화 속에 그래도 손으로 쓰는 글씨 문화는 크게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때로는 느린 걸음으로 만나는 흐드러진 망초꽃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싶었다.


아들과 딸들에게, 손자 손녀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다 예쁘게 쓴 손자의 글씨에 너무 놀라 저장해 두었던 공책 사진을 끄집어냈다.


작년 초등학교 1학년일 때 쓴 글씨로 제 엄마가 기회 있을 때마다 자랑하곤 했다. 꼭꼭 눌러쓴 글씨가 개구쟁이 아이의 글씨인가 싶을 정도였다. 글씨 솜씨는 천상 외할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는 말로 억지로 연결하며 잠깐 아버지의 추억을 되새겨 보았다.


나도 언젠가 아이들이 엄마를 그리워하고 울 수 있는 편지를 쓰고 싶었다. 금은 부끄럽고 쑥스러운 글이지만 먼 훗날 엄마가 보낸 편지의 진솔한 삶을 들여다보고 추억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여전히 글을 쓰고, 또 손 글씨를 즐겨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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