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상상하는 일

두려움과 안도의 양면성

by 부귀영화

죽음을 상상하는 일에는 두려움과 안도가 동시에 있다. 친구를 잃고, 시간이 지나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씩 떠난다는 사실을 직접 겪어보면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고3 봄에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에 놓인 친구 사진은 살아 있을 때보다 이상하게 더 선명했다. 꽃이 피어야 할 나이에 멈춰버린 사람을 보는 감정은 말로 정리하기 어렵다. 내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친구의 시간은 거기서 멈췄다는 사실, 나중에 내가 늙어서 죽으면 나는 늙은 얼굴이고 친구는 여전히 고3 얼굴이라는 점이 복잡했다. 내가 죽을 때 친구가 날 기억할까 하는 생각은 답도 없지만 계속 떠올랐다.


나이 듦에 대한 감각도 달라졌다. 나만 늙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같이 늙는다는 것. 영원할 것 같았던 엄마와 아빠도 나이를 먹고, 그러다 결국 떠날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주변에서도 친구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일이 잦아졌다. 할아버지는 크게 흔들리는 기색이 없다. 덤덤하다고 해야 맞겠다. 오래 살다 보면 익숙해지는 건지, 어차피 자기 차례도 멀지 않다는 걸 아는 건지 알 수 없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씁쓸했다.


사람은 결국 자기 주변의 죽음을 먼저 겪는다. 부모 세대, 그 위 세대, 그리고 언젠가는 친구들까지. 떠나보내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죽음의 두려움보다 ‘떠나보내야 한다’는 감정이 더 크게 다가올 때가 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계속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무겁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무게는 더 크다.


그럼에도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은 한편으로 안정감을 만든다. 내가 겪는 상실이나 불안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점. 누구나 겪는다는 점. 잘나도 못나도, 오래 살아도 짧게 살아도 결국 같은 방향으로 끝난다는 점. 이 단순한 사실이 어떤 순간엔 버틸 힘이 된다.


죽음을 떠올리면 무섭다. 동시에, 피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묘하게 편안하기도 하다. 고3 때 친구를 떠나보냈을 때의 감정, 나이가 들면서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걸 지켜보며 생긴 감정, 할아버지의 담담함에서 느낀 씁쓸함.


죽음을 상상하는 일은 삶을 비극적으로 보는 시선도 아니고, 반대로 가볍게 만드는 시선도 아니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모두 사라진다는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것들의 실제 크기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