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는 두려움

죽음보다 무서울지도 모르는 것

by 부귀영화

알츠하이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상한 감정이 든다. 살아 있다는 감각은 결국 내가 누구였는지, 무얼 해왔는지, 누구와 연결되어 있었는지에서 생겨난다. 그런데 기억이 사라지면 남는 건 도대체 뭘까. 예전에는 알츠하이머가 잔인한 병이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이 사라져 가는 병. 어디서 봤는데, 알츠하이머 상태가 오히려 평온하다고 말했다. 불안도 없고, 고민도 없고, 어린아이처럼 하루를 산다고. 기억을 잃는다는 게 당사자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뒤틀려 보였다. 타인은 아파하고, 본인은 모른다. 남아 있는 사람만 고통을 느끼지 않는가. 결국 잊힘의 진짜 무게는, 잊히는 사람보다 기억하는 사람에게 남는 건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생각하면 삶에 대해서도 아니 생각할 수 없다. 아버지께 삶의 이유를 물었을 때, 아버지의 대답은 단순했다. 가족이 전부라서 산다고. 하루가 버거워도, 그걸 견디게 하는 이유가 가족이라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사람은 발자취를 남기고 가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나이가 들어 떠날 때, 세상에 남은 흔적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그 말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 언젠가 저승길을 혼자 걸어갈 거라면, 살아 있는 동안도 혼자인 게 뭐가 이상한가 싶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에서 묘하게 걸리는 게 있었다.


내가 늙어서 혼자 남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가슴이 시리도록 슬프다. 사무치게 고독하달까. 나를 기억해 줄 사람이 없다면, 그때의 나는 실제로 존재하는 걸까. 가족이 없다면, 남은 건 친구들뿐일 텐데 가족과 친구는 엄연히 관계의 결이 다르다. 친구는 삶의 한 시기를 함께 걷는 동료에 가깝고, 가족은 시간의 흐름 전체를 관통한다. 가족이 없다는 건, 나라는 존재를 처음부터 끝까지 붙잡고 기억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에 날 기억하는 이가 없다는 게 더 슬프게 느껴지는 것 같다.

잊힌다는 공포는 결국 ‘증명할 수 없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오는 게 아닐까. 살아 있음의 근거가 점점 약해지는 느낌.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나를 불러주는 이름이 사라지고, 내가 남긴 흔적이 희미해지는 과정. 죽음은 명확한 끝이지만, 잊힘은 경계가 없다. 이렇게 서서히 사라지는 존재는 어디에 기록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잊힘을 무서워하는 마음은 결국 관계에 대한 갈망과 닿아 있다.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건, 그 사람의 삶에 내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다. 기억은 존재를 붙잡아두는 마지막 장치다. 그 장치가 무너지면, 살아 있는 동안에도 죽은 사람처럼 취급될 수 있다.


나는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상태가 두려운 걸지도 모른다. 잊히는 두려움은 죽음보다 더 깊고 더 오래 남고,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지만, 잊힘은 나를 비워낸 채로 시간을 계속 흘러가게 만든다. 살아 있으면서 사라지는 것. 그게 가장 무서운 것 같다.

우리는 결국, 기억을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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