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일까, 부담일까
노인공경의 시대는 지났다. 정확히 말하면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라는 말은 더 이상 설득력을 잃어버린 시대다. 대중교통에서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젊은 세대가 손가락질받는다. 반대로 젊은 세대는 “배려는 강요할 수 없지 않은가.”라고 말한다. 존중이라는 미덕은 여전히 요구되지만, 그 무게는 고스란히 젊은 세대가 짊어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노인을 대하는 것은 존중일까, 부담일까.
왜 유독 노인 문제에서 젊은 세대의 불편함이 극대화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임산부나 아이를 대하는 경우는 다르다. 임산부는 뱃속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에서 명백히 배려해야 할 대상이고, 어린아이는 작고 약하다는 사실로 배려해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노인은 어떤가. 노인도 마찬가지로 쇠약하니 배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하필 노인에게만 발작 버튼이 눌리는 걸까.
노인이 정말 약자인가 하는 모호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령화 사회가 되며 이제 노인은 노인이 아니다. 지하철에서 등산복을 입고 스틱을 짚은 건강한 노인은 솔직히 말해서 나보다 더 건강해 보인다. 그런데도 사회는 여전히 ‘노인은 약자’라는 말로 젊은 세대에게 기계적으로 노인을 배려하라는 도덕적 압박을 주고 있지 않은가. 약자라고 불리기엔 건강하고 활발한데, 권리를 행사하니 이 모순이 젊은 세대의 반감을 불러온 것이다.
존중을 권리처럼 요구하는 노인들의 태도도 노인에 대한 반감을 불어일으킨다. 존중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한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 노인들의 태도는 “나이 먹었으니 당연히 양보해라.”라는 식이다. 존중이 부탁이 아니라 지시로 바뀌며, 배려는 억압이 된 것이다. “나이를 허투루 먹었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닌데, 나이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모습은 존경을 부르기는커녕 거부감을 키운다, 존중을 원한다면 최소한 존중받을 만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오늘날 노인을 재정의하는 것이다. 노인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보호의 대상이 아니며, 존중받을 자격은 나이에 있지 않고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우리가 노인을 대할 때 느끼는 불편함은 변화한 사회에서 노인을 재정의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다. 어느 방송에서 배우 박중훈이 말한 어머니의 말씀이 있다. “어린아이 너무 나무라지 마라, 네가 걸어온 길이다. 노인 너무 무시하지 마라. 네가 갈 길이다.” 씁쓸하다. 누가 늙고 싶어서 늙는가. 우리도 결국 늙는다. 지금 내가 눈살 찌푸리는 그 모습이 언젠가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젊은 세대의 냉소함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사회가 노인을 존중받을 존재로 남겨두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존중은 점점 부담으로 둔갑하고, 노인은 공경의 대상에서 권리만 주장하는 존재로 격하한다.
노인을 대하는 방식은 존중일까, 부담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애초에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필요 없는 질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냥 서로가 서로에게 불편한 것이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냉소 속에 서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결국 남는 건 허무한 탄식뿐이다.
그냥 서로 돕고 살면 안 돼요? 사람들이 사람 냄새가 안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