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과 성숙도의 문제
어릴 적부터 ‘책임감이 강한 아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어른들뿐 아니라 또래 친구들도 “너는 리더 하면 참 잘할 것 같아.”라며 조별 과제의 조장이며, 학급의 반장이며 추천하곤 했다. 어른이 되어 보니 그 말이 결국 일 던져놓으면 알아서 처리할 일꾼을 낚기 위한 떡밥이었구나 싶어 썩 달갑게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를 장의 자리에 추천하면 “내가 권력을 쥐면 화를 입을 거야.”라며 거절했고, 지금도 거절하고 있고, 앞으로도 거절할 거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다. 고학년이 되면 모둠활동을 하며 ppt도 만들어보고, 발표도 준비해본다. 그때 함께한 친한 친구가 비협조적인 모습으로 퉁퉁거리길래 참지 못하고 “이럴 거면 나가.”라며 공격적으로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나라고 친한 친구한테 입바른 소리 하는 게 쉬웠겠는가. 그때 알았다. ‘아, 난 독재자다.’ 꽤 어린 나이 때부터 주제를 알고 나서지 않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지라퍼 근성은 버리지 못했는지 종종 자격이 있는 것처럼 비칠 때가 있다. 그런 김에, 리더랍시고 활보하지만 사실 리더 급도 안 되는 사람들을 신랄하게 까볼까 한다. 끽해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21살 대학생이 조직문화에 논한다니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선까진 말해보겠다.
우선, 내가 어떤 기준으로 리더를 바라보는지 짚어보자. 나의 첫 번째 기준, ‘나이를 똥구멍을 처먹었냐 ’이다. 성숙도를 말하는 것이다. 대부분 리더는 그만한 자질이 있으니 그 자리에 오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에 반하는 태도를 보이면 리더로서의 신뢰감은 급격히 떨어진다.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상속자들’에서도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고 하지 않는가. 리더라는 자리가 아무렇지 않은 자리였다면 이렇게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의로 리더가 됐든, 타의로 리더가 됐든 알 바 아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당신이 리더가 된 이유는 궁금하지도 않다. 밤낮 리더와 보스의 차이점에 대해 보고, 듣고, 영감받으면 뭐 하나. 행해야지. 그러니 리더라면 자릿값 좀 제대로 하길 바란다.
두 번째 기준은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지 아나’ 판단력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한다. 알면서도 같은 길을 가고, 손해를 보면서도 멈추지 못할 때도 있다. 누가 말해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결국은 직접 부딪혀 보기도 한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는 사람처럼 사는 게 마냥 어리석다고만 할 순 없다. 실패하고 부딪히는 과정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데, 리더는 그러지 말자. 리더의 불분명한 판단력은 팀 전체를 흔든다. 대개 그로 인한 뒷수습은 팀원의 몫이다. 리더가 싸지른 똥을 치우느라 팀원들은 골머리를 썩이는데, 정작 리더 본인은 똥이 치워진 걸 보고 문제가 없다고 착각한다. 그때부터 그 조직은 서서히 썩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불만이 있으면 팀원이 리더에게 말하면 되지 않느냐고. 부당하다고 소리치고 일을 그만둬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모두가 당신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있지는 않다. 조직을 떠날 때 소리 없이 나간 이는 남겨진 이를 위해, 소리 없이 남은 이는 현장에 있는 나를 위해 입을 닫게 된다. 두 입장 다 이해된다. 더구나 돈이 걸린 문제라면 쉽지 않다. (나는 그리 온순하지 못한 탓에 둘 입장은 신경 쓰지도 않고 나와버렸지만 말이다.) 그래서 부당함에 저항하지 않는 이들을 나무랄 수도, 저항해서 나간 이들에게 분위기를 흐려놨다고 탓할 수도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원인 제공자가 버젓이 있는데 저항하지 않은 팀원 탓을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니 리더, 당신이 싼 똥은 당신이 치울 수 있게 판단하고, 지시하라.
세 번째 기준은 인정이다. 완벽한 이가 어디 있겠는가.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이들이 팀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상하게도 리더라는 이름을 달고 보스 행세를 하는 이들이 있는데, 리더라고 해서 팀원에게 이래라저래라할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팀원의 능력을 파악했다면, 그에 맞는 역할과 지시를 내리는 것이 리더의 기본이다. 유치원 교사에게 입시 강사의 일을 맡긴다면 잘하겠는가? 리더라면 떵떵거리며 지휘질만 하지 말고, 나를 이끌어줄 사람과 밀어줄 사람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부족하니 도와줘.” 한 마디면 된다. 이렇게 시작했다면 리더가 실수했을 때도 사람들은 “그럴 수 있지.”라며 넘어갔을 것이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그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몰랐다고 해서 그들이 과연 결백한가에 있다. 권좌에 앉은 바보가, 단지 그가 바보라는 사실 하나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몰랐다고 말해도, 핑계와 변명일 뿐이다. 핑계로만 듣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과연 핑계라고 들은 사람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핑계를 진심이라고 우기는 이를 탓해야 할까. 이 구분이 명확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정신이 바로 박힌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