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나

‘나’라는 존재는 정의할 수 있을까

by 부귀영화

영화 다크나이트를 보면 늘 이상한 기분이 든다. 사람들은 영웅인 배트맨을 응원했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조커에게 마음이 갔다. 조커를 미쳤다고들 하지만, “미친 세상에선 미친 게 정상이지.”라는 말이 묘하게 설득력 있게 들렸다. 조커는 세상을 조롱하며 냉소했지만, 그 웃음이 꽤나 현실적이었고, 악역인 그가 오히려 현실 속 인간의 모습과 닮았다고 느꼈다. 적어도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듯했달까. 그에 비해 배트맨은 정의를 외치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인물처럼 보였다. 조커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미쳤다고 단정 짓기도 어려웠다. 그래서일까. 두 인물을 보고 있으면 선과 악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 실감할 수 있다. 조커에게 마음이 간다는 사실만으로, 괜히 나쁜 짓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 자신이 낯설기도 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은가. 평소엔 온화한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사소한 말 한마디에 폭발하거나 분명 이해하려던 사람에게 냉정한 말을 내뱉을 때. 그럴 때마다 “이게 진짜 나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착한 의도로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되고, 배려라 여겼던 침묵이 누군가에게는 무관심이 될 때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모르겠다.


다크나이트 속 조커를 보며 느낀 혼란도 그런 종류였던 것 같다. 선과 악, 옳고 그름, 정의와 위선은 언제나 뒤섞여 있었고, 누군가를 돕는 행동이 또 다른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정의로운 결단이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세상 속에서 착하고 싶어 하는 나와, 이해받고 싶은 이기적인 나라는 두 개의 자아가 끊임없이 충돌하지 않았나 싶다. 때로는 양심이 이기심을 이기지만, 또 어떤 날은 욕망이 양심을 삼키기도 할 때, 나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고민하는 것 같다.


어릴 땐 자아 정체성이고 나발이고 착한 일은 좋은 일이고, 나쁜 일은 나쁜 일이라며 단순하고, 마냥 해맑게 살았다. 어른이 되고서는 착하다는 말 뒤엔 언제나 누군가의 희생이 있고, 정의로운 결정은 종종 누군가의 상처를 전제로 한다는 걸 깨달았다. 세상은 흑백처럼 단순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은 애매모호함을 품고 살아가는구나. 그런데도 아직도 착한 척하면서 냉소적인 게 싫고, 타인을 이해한다면서 결국은 자기만 생각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어쩌면 착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그저 모순된 채로 살아가는 게 인간다움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굳이 나를 정의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하기 귀찮다. 매번 같은 얼굴로 살아가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것이고, 정의롭지 않아도 그게 인간이고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구나 싶다. 그래서 요즘에는 굳이 자아 정체성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마주하기 싫은 현실이 있다면, 잠시 제쳐둬도 괜찮지 않을까. 도망간 곳엔 낙원은 없다곤 하지만, 그래도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치자는 마인드로! 고마 이래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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