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질서의 그림자
고등학교 2학년 때 선택 과목으로 윤리와 사상을 들었다. 윤리 선생님께서 수업을 너무 못하셔서 EBS 온라인 강의를 찾아보며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 덕에 나는 일명 ‘쌍윤러’(윤리와 사상 + 생활과 윤리)가 되었고, 이를 아신 윤리 선생님은 왜 그런 선택을 했냐며 놀렸지만, 사회탐구영역 중 지루하기 그지없는 윤리와 사상을 수업을 너무 못한 선생님 덕에 좋아하게 되어 선택한 것이기에 후회없이 고3 수능 사회탐구영역도 쌍윤을 선택하여 보았다. 여기까진 TMI였고, 고등학교 윤리 수업 시간에 사회 정의와 사형 제도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데, 그때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법이라면 법은 정말 정의로운 거겠냐는 생각이 들며 이런 심오한 주제들로 가득한 철학을 전공으로 삼은 선생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질 따름이었다.
드라마 에스콰이어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법은 완벽하지 않다. 도덕적 잣대와 법적 잣대가 늘 같을 순 없다.”이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세상엔 늘 기준이 존재하지만, 그 기준이 언제나 옳은 방향을 향하는 건 아니다. 몰상식이 상식이 되고, 통념이라 불리는 것이 잘못된 권력에 기대어 굳어질 때도 많다. 그런 세상에서 법이란 게 얼마나 공정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있으면 죄가 가벼워지고, 권력이 있으면 법이 달라진다.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하지만, 현실에서 법은 늘 누군가의 편이었다. 그래서 든 생각이 법이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장치라면, 도대체 누구의 정의를 실현하고 있는 걸까였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하지만 그 ‘최소한’이라는 말이 늘 마음에 걸린다. 도덕이란 인간의 양심을 기준으로 삼지만, 법은 그보다 훨씬 낮은 기준선에서 멈춰 서 있다. 법의 애매모호함은 결국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쓰이고, 판결이 모호할수록 권력자는 그 틈을 이용하는 것 같다. 그래서 법은 정의롭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의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AI시대가 도래되면서 AI와 법이 미묘하게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마크 그레이엄은 “AI는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이며, 그들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수단이다.”라고 말했는데, 법이 그러하듯 AI 역시 결코 중립적이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기존 사회의 편견과 불평등을 더 정교하게 반복할 뿐, 결국 둘 다 ‘객관성’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닮았다. 법은 조문과 절차로, AI는 알고리즘과 데이터로 객관성을 가장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 기준을 만든 것도 결국 인간이다. 법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만든 규칙이고, AI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학습시킨 결과물이다. 누구를 보호하고 누구를 배제할지 결정하는 기준이 이미 특정한 시선으로 짜여 있기 때문에 법이 마냥 공정하다고 볼 수 없고, AI 또한 오늘날뿐만 아니라 머지않은 미래에서 공정한, 공공의 도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결국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다. 법도, 기술도, 그걸 움직이는 사람이 정의롭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대한민국 사회의 미래에 정말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가끔 생각한다.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부당한 권력 앞에서도 고개 숙이지 않으며, 불합리한 명령에 합리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많아진다면, 그때야 비로소 법이 정의를 닮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