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Interlude – 3부

겨울의 첫 대화, 여름의 스침, 그리고 종로의 첫 만남

by 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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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겨울 – 반모방에서 시작된 어색한 연결

코로나로 모두가 집 안에 머물던 그 겨울,

우연히 들어간 클럽하우스 ‘반말 주식방’에서

지유와 이선은 처음으로 서로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건…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형ㅋㅋ 여기 반말방이라니까요!”

“아… 네. 예.”


이선은 끝내 말을 놓지 못했고

그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귀여웠다.


대화가 잠잠해질 즈음,

이선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지유님… 뉴욕에 사셨다면서요?”

“네. 유학 때문에요. 컬럼비아에서.”

“아… 허드슨 강 자주 가셨어요?”

“네. 여름엔 자주요.”


서로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짧은 대화가

겨울밤의 어둠 속에서 오래 남았다.



2. 봄 – 말하지 못한 사실

얼마 후,

날씨가 조금 풀리자

클럽하우스 사람들은 작은 소모임을 만들었다.


지유는

‘투자 정보 좀 얻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 물었다.


“지유님 남자친구 있으세요?”


지유는 대답하려 했지만

다른 사람이 다시 말을 가져갔다.


“있을 것 같은데? 분위기에서 느껴지는데~”

“아냐, 이런 분은 의외로 싱글이야!”

“인스타 보면 맛집 좋아하는 느낌이잖아ㅋㅋ”


사람들의 말이 계속 오가며

화제는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넘어갔다.

지유는 조용히 웃으며 넘겼다.


그날,

말하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지유는 기혼자였다.

하지만 그 분위기에서

“결혼했어요”라고 말하는 건

이상하리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는 그저 속으로만 말했다.


‘여긴… 그냥 스쳐 지나가야겠다.’



3. 여름 – 공식 정모 (이선 없음)

7월.

공식 정모가 열렸다.


이선은 뉴욕에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그는 단톡방의 사진과 반응만 지켜보고 있었다.


“지유님 실물 진짜 다르던데.”

“흰 티 + 청바지인데 되게 세련됐어.”

“인스타만 보면 몰랐어… 분위기 진짜 좋더라.”


그 말들을 보는 순간,

이선은 겨울의 짧은 대화를 떠올렸다.


뉴욕,

컬럼비아,

허드슨 강.


그 대화가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다시 또렷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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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초가을 – 허드슨 강변 사고와 고독

8월 말,

허드슨 강변에서 러닝 중

이선은 자전거와 부딪혀 크게 넘어졌다.


눈부시게 하얘지는 시야.

구급차의 조명.

물과 아스팔트 냄새가 뒤섞인 공기.


외국에서 보호자 없이 입원하는 건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그때

국제학교 시절 친구 앤드류가

여러 경로를 추적해 병원으로 달려왔다.


“야, 연락 안 돼서… 병원부터 찾았다.”

앤드류는 보험, 입원 절차, 간단한 간호까지

모두 도맡아 했다.


그날 새벽

이선은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한국 가면… 부모님도 보고,

클럽하우스 사람들도 얼굴 한번 보고…’


그 흐름 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지유가 떠올랐다.


‘그 사람도… 잘 지내고 있으려나.’




5. 11월 – 아주 조용한 DM

한국에 머문 지 꽤 시간이 흐른 뒤,

몸도 마음도 조금 안정된 어느 날,

이선은 지유의 인스타 스토리를 스치듯 보았다.


언제나처럼 맛집 사진,

커피잔,

책 한 장면.


그 순간

겨울의 대화가 떠올랐다.


이선은

한참 고민하다

아주 단순한 문장을 보냈다.


“지유님,

저 요즘 종로 근처 자주 와요.

혹시 점심… 가볍게 괜찮으시면요.”


지유는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학교가 그 근처라서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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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겨울 종로 – 첫 실제 만남

12월의 종로는

유난히 차갑고 투명했다.


지유는

‘그냥 밥 한 끼지’라며

천천히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걸음은 조금 빨라져 있었다.


이선은

먼저 도착해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정리했다.

코트 자락을 고르고

머리를 조금 넘기고

표정을 정리했다.


서로 마주 본 순간

어색함보다

조용한 편안함이 먼저 찾아왔다.


식사 중

지유는 자연스럽게

“손 좀 씻고 올게요.”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그녀는 잠시 멈췄다.


볼이 살짝 붉어 있었고

머리카락은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괜히 머리를 다시 묶어보고

입술 색을 확인했다.


‘왜 이러지…

그냥 점심인데.’


한편

이선도

지유가 자리에서 일어난 사이

식탁 위 컵을 괜히 여러 번 잡았다 놓았다.


둘은

식사 후

차가운 종로 겨울 골목을 함께 걸었다.


말은 길지 않았지만

걸음과 호흡이

서로에게 맞춰지는 감각이 있었다.



7. 아주 작은 복선 – 마음의 흔들림

헤어지기 직전,

둘은 동시에 말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 먼저 말씀하세요.”


잠깐의 어색한 웃음.

겨울의 투명한 공기 속에서

작은 온기가 번졌다.


지유는

겉으로는 미소를 지었지만

속으로는 단단히 말했다.


‘이런 감정…

조절해야 해.

오늘까지만.’


하지만

그 결심이

이미 조금 흔들리고 있다는 것 또한

그녀는 알고 있었다.


반대로

이선은

천천히 마음속으로 말했다.


‘이 만남…

그냥 밥 한 끼 이상일 수도 있겠다.’


그날 종로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둘은 서로의 마음 한 자락을

조용히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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