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제작비 100억 원이 투입된 2016년 SBS 대작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는 첫 방송 시청률 약 3%로 출발했다. 같은 시간대 20%를 넘긴 경쟁작에 밀려 시청률 순위는 3위에 머물렀지만 방송 직후 포털 검색어 상위권을 장악하며 다른 지표에서는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본방 성적과 달리 화제성 순위 상위권을 유지한 이 작품은 이후 감독판 재편집과 무료 VOD 공개를 거쳐 2020년대 OTT 플랫폼에서 다시 주목받는 역주행 드라마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작품은 개기일식이 벌어진 날을 기점으로 이야기를 연다. 달그림자가 태양을 덮은 순간 21세기를 살던 고하진의 영혼은 고려 시대로 흘러 들어가 소녀 해수의 몸에 깃든다. 그날 해수는 얼굴에 깊은 상처를 지닌 4황자 왕소와 마주하며 천 년의 시간을 가로지르는 인연의 출발선에 선다.
배경은 고려 건국 초기다. 태조의 잦은 혼인이 남긴 수많은 황자들은 아직은 젊음과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곧 황위를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다툼이 예고돼 있다. 현대의 감각을 지닌 해수는 이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존재가 된다. 거침없는 말투와 행동 익숙하지 않은 궁중 예법은 때로는 문제를 낳지만 동시에 황자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해수는 역사에 기록된 비극적 운명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갈등한다. 이미 정해진 흐름에 개입해야 하는지 아니면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이준기가 연기한 4황자 왕소가 있다. 왕소는 어린 시절부터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온 인물이다. 어머니를 위해 도적 떼를 몰살하고 그 공을 알리러 갔지만 돌아온 것은 냉혹한 거절이었다.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짐승 취급을 받으며 쫓겨난 기억은 왕소의 내면을 뒤틀어 놓는다. 그럼에도 어머니 앞에서 웃음을 잃지 않으려 했던 모습은 인물의 결핍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해수를 만난 이후 왕소의 감정선은 크게 흔들린다. 8황자 왕욱과 해수를 사이에 둔 미묘한 긴장 결국 선택에서 밀려난 왕욱의 후퇴 이후 왕소의 감정은 해수를 향해 더욱 깊어진다. 오 상궁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해수가 빗속에서 석고대죄를 할 때 아무도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왕소는 함께 비를 맞으며 곁을 지킨다. 궁녀로 신분이 떨어진 이후에도 마음이 변하지 않았음을 계속 드러내며 말보다 행동으로 감정을 전한다.
아이유가 연기한 해수는 교과서 수준의 지식만을 가진 채 고려에 떨어진 고하진이다. 그는 매 순간 선택 앞에서 흔들린다. 감정에 솔직한 태도는 궁중의 반감을 사지만 그만큼 인간적인 온기를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궁녀가 된 이후 억울한 누명과 고문 오 상궁의 죽음을 겪으며 해수는 급격히 달라진다. 말 한마디 선택 하나가 생사를 가르는 세계를 체득하면서 표정과 태도에도 무게가 더해진다. 광종 즉위 이후에도 권력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놓이며 사랑과 생존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림길에 선다.
작품에는 이준기와 아이유를 비롯해 홍종현 강하늘 백현 남주혁 김성균 성동일 등 다수의 배우가 출연해 각자의 역할을 채운다.
방영 당시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의 첫 회 시청률은 전국 기준 약 3%대에 머물렀다. 같은 시간대 방영된 KBS2 ‘구르미 그린 달빛’이 20%를 넘기며 독주 체제를 굳힌 상황에서 SBS 월화드라마로서는 순위 3위에 그쳤다. 총 제작비 약 100억 원이 투입된 대작이라는 점 사전 제작과 해외 로케이션 톱배우 캐스팅으로 방송 전부터 높은 기대를 모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성적은 더욱 대비됐다. 시청률과 달리 온라인 지표는 전혀 다른 흐름을 보였다. 첫 방송 직후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는 드라마 제목과 출연 배우 이름 고려 광종 관련 키워드가 동시에 오르며 화제성을 입증했다.
화제성은 높았지만 여전히 경쟁작에 밀려 시청률은 결국 10%를 넘기지 못한 채 종영했다. 이후 2020년대 들어 넷플릭스 웨이브 쿠팡플레이 등 OTT 플랫폼을 통해 작품을 접한 시청자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정주행 환경에서 다시 본 시청자들 사이에서 재평가가 이어졌고 유튜브에 올라온 몰아보기 영상은 조회 수 1000만 회를 넘기며 새로운 유입 통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