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눈이 부시게'
2019년 JTBC에서 방송된 월화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첫 회부터 신선한 서사와 탄탄한 연출로 시청자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4회차에서 시청률 5%대를 돌파하며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고 8회에서는 8.447%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지상파 드라마를 뛰어넘는 돌풍을 일으켰다. 마지막 회 시청률은 9.731%로 JTBC 월화 드라마 중 최고 기록을, 방송 기간 내내 지상파와 비지상파의 경계를 허물며 월화극의 새로운 강자로 자리 잡았다.
작품은 "내 이름은 김혜자, 지극히 평범한 스물다섯 여자입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남들보다 빠르게 늙어버린 스물다섯 살 김혜자와, 찬란했던 시간을 등지고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는 남자 이준하가 같은 시간을 살아가지만 서로 전혀 다른 속도로 인생을 경험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들이 마주하는 시간 이탈의 판타지 설정과 그 안에서 펼쳐지는 현실적인 청춘의 고민은 작품의 몰입도를 높였다.
김혜자와 한지민이 연기한 김혜자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25세 취업준비생으로 아버지의 택시를 타고 가족과 바닷가에 나섰던 어느 날 신비한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를 줍게 된다. 어린 시절의 호기심으로 시계를 돌릴 때마다 5분 더 자거나, 쪽지시험을 다시 보려고 시간을 조작했지만 그만큼 본인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버렸다. 이런 특별함이 있음에도 현실은 예쁘기만 한 목소리로는 경쟁이 치열한 아나운서의 꿈에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면접은커녕 서류부터 떨어지기 일쑤였고 대학 방송국에서는 선배라는 타이틀만 남았다.
반면 남주혁이 연기한 이준하는 교내 방송국에서 신입생 최초로 메인 앵커에 오른 반듯하고 강직한 기자 지망생이다. 졸업과 동시에 3사 언론사 최종 면접을 앞둔 인물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힘겨운 환경을 견뎌왔다. 화려한 스펙과 외모로 주목받지만 가족의 상처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는 모습이 드러난다.
혜자와 준하는 대학교 연합 MT에서 처음 마주친 이후 일상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엇갈린다. 준하는 완벽해 보이지만 스스로를 타인과 철저히 분리하는 인물이고 혜자는 그런 벽을 가볍게 허무는 당당함을 지녔다. 포장마차에서 마주친 우동 한 그릇, 버스정류장에서의 우연한 재회는 둘의 관계에 작은 파동을 만든다. 둘의 인연을 지켜보는 할아버지의 말처럼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듯 마음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할 때 인생의 큰 폭풍이 찾아온다.
어느 날 혜자의 인생에 강력한 시련이 닥친다. 동시에 준하 역시 가족 문제와 혜자의 부재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누구보다 뜨거웠던 청춘은 점점 무기력함에 잠식되고 세월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지는 순간, 준하 앞에 혜자와 닮은 노년의 한 인물이 등장한다. 젊은이의 삶을 그따위로 살면 안 된다며 참견하는 이 할머니, 그에게서 자꾸만 혜자의 모습이 비쳐진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는 시간 이동이라는 판타지적 장치를 현실적인 감정선 위에 세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후회와 성장, 사랑과 상실을 담아내며 인생의 소중함을 되짚는다. 10회 이후에는 밝았던 초반 분위기에서 벗어나 예상치 못한 대반전과 함께 서늘할 정도의 현실적인 전개로 시청자를 몰입시킨다. 초반의 판타지적 요소와 유머, 따스함이 사실은 이후 등장하는 감동과 반전의 밑바탕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눈이 부시게’는 하나의 시간 로맨스가 아니라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드라마로 재탄생했다.
작품의 진가는 출연진의 연기에서 한층 빛을 발했다. 한지민과 남주혁은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성숙하고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였고 김혜자는 노년 혜자 역할을 통해 인생의 무게와 슬픔, 따뜻함까지 완벽하게 담아냈다. 김혜자는 캐릭터 내면의 복잡한 감정 변화까지 디테일하게 표현하며 명배우로서의 위엄을 입증했다.
드라마를 감상한 누리꾼들은 "25년도에도 오열한다", "드라마에서 한지민씨가 택시기사인 아빠의 사고를 막으려고 애썼을 때… 그게 엄마가 아들의 사고를 막고 싶어 했던 간절한 마음이었음을… 얼마나 그 장면이 애절했던지.. 그 시계를 돌리는 장면이.. 사고를 막고 싶던 그 절박함이..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되어 제발.. 제발.. 조금 더 빨리.. 그래서 아빠 사고를 막았으면.. 하며 봤던 기억이", "정말 내 눈물 버튼 드라마다", "너무 슬프다", "오열했다" 등과 같은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다.
‘눈이 부시게’는 경쟁이 치열한 월화 드라마 시장에서 시청률 1위, JTBC 월화극 역대 최고 기록, 방송 이후에도 긴 여운을 남기는 명작으로 남았다.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에 현실의 무게와 청춘의 고민, 가족과 사랑을 더해 가벼운 판타지를 넘어선 인생 드라마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