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멸망 다룬 SF 영화 BEST 4
아침 출근길에 문득 라디오에서 들려온 말이 오래 남았다. “세상이 끝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차창 너머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다가, 그 질문이 마치 내 몫의 물음처럼 가슴에 내려앉았다. 거대한 폭발이나 알 수 없는 재앙, 혹은 인간이 스스로 불러온 위기 같은 이야기들은 늘 사람을 끌어당긴다. 수많은 영화가 종말을 다뤘지만, 화면의 불꽃놀이 같은 장면보다 오래 남는 건 결국 사람들의 얼굴, 그들이 내리는 선택이었다.
떠올라서 적어본 네 편의 영화가 있다. 모두 “지구가 끝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물음을 품고 있다.
먼저 생각난 건 ‘아니아라’다. 지구가 더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된 뒤, 사람들은 화성을 향해 우주선을 탄다. 출발은 희망으로 가득했지만, 작은 사고로 항로를 잃은 순간 이야기는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선다. 끝없이 펼쳐진 우주 속에서 구조의 손길은 오지 않는다. 처음엔 금방 돌아올 거라 서로를 달래던 승객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절망에 잠식되어 간다. 배 안은 무너져 가고, 사람들은 인공지능 장치에 기대어 지구의 기억을 꺼내 보지만 그것조차 오래 버티지 못한다. 희망이 사라진 공간에서 인간은 어떻게 변하는지, 이 영화는 차갑고도 집요하게 보여준다.
숨조차 빼앗기는 세상을 그린 ‘브리드’는 또 다른 두려움을 던진다. 공기 속 산소가 줄어들면서, 사람들은 인공 장치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숨 쉬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가 위협이 되자, 서로를 돕던 마음도 빠르게 사라진다. 산소가 부족해지면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적으로 보인다. 폭발이나 전쟁이 아닌, 단순히 숨을 쉴 수 없다는 설정만으로도 몰입은 극대화된다. 그 속에서 인간의 얼굴은 점점 낯설어지고, 삶의 무게는 한순간에 바뀐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종말을 바라본 영화는 ‘돈룩업’이다.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과학자들의 경고는 정치와 언론 속에서 가볍게 소비된다. “하늘을 보라”는 절박한 외침은 “보지 마라”는 구호에 묻힌다. 모두가 파국을 알면서도 눈을 돌린다. 웃음을 섞은 풍자 속에서 진짜 무서운 건 혜성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바로 인간 자신, 눈앞의 위기를 알고도 외면하는 그 모습이다. 영화가 끝나고도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작품은 ‘아이 엠 마더’다. 인류가 사라진 뒤, 지하 보관소에서 로봇이 한 아이를 기르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아이는 자신이 유일한 인간이라고 믿으며 성장하지만, 외부에서 낯선 여인이 나타나자 모든 믿음은 흔들린다. 영화의 중심은 로봇과 인간 사이의 모호한 신뢰다. 사람을 대신해 기계가 인류를 이끌 수 있을까. 효율과 이성이 감정보다 나은 선택일 수 있을까. 아이가 흔들리는 마음으로 고민할 때, 관객 또한 그 물음 앞에 서게 된다.
이 네 편의 영화는 모두 거대한 스펙터클보다 사람의 마음에 집중한다. 세상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이야기는 결국 인간에게 돌아온다. 누구를 믿을 것인지, 무엇을 지킬 것인지, 마지막 순간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그 물음이 화면을 넘어 내 일상에까지 번져 온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질문이 다시 귓가에 맴돈다. “세상이 끝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아마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불확실함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