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빛낸 최고의 드라마들
저녁 뉴스를 틀어놓은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화면에는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한국 드라마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잠시 리모컨을 멈춘 손끝이 얼어붙듯 멈췄다. 2024년이라는 한 해를 통째로 지나왔는데, 그 시간을 함께한 작품들이 다시 불려 나오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드라마 제목이 들리는 순간, 당시의 공기와 내 마음의 무게까지 되살아났다.
먼저 떠오른 건 《내 남편과 결혼해줘》였다. 새해 첫날 시작한 이야기라 그런지, 차가운 겨울바람과 함께 시작한 기억이 강하다. 주인공이 배신을 겪고, 죽음에서 깨어난 뒤 다시 시간을 되돌려 복수를 꿈꾸는 서사는 단순히 극적 재미를 넘어 묘한 울림을 주었다. 한 번쯤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하고 상상해 본 적 있기에, 화면 속 장면들이 낯설지 않았다. 배우들의 날 선 감정 연기 속에서 오래된 상처가 겹쳐 보이기도 했다. 시청률 수치나 해외 성과보다, 나는 그 날카로운 대사들이 내 안의 어두운 방을 흔들어 놓았다는 점이 기억난다.
봄이 되자 또 다른 색깔의 드라마가 찾아왔다. 《선재 업고 튀어》. 제목만큼이나 가볍고 발랄하게 느껴졌지만, 사실 속은 그렇지 않았다. 한 사람을 지키고 싶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소녀의 마음은 절박했고, 그 절박함이 첫사랑의 설렘과 얽히며 기묘하게 빛났다. 그때는 하루가 무겁게 느껴지던 때였는데, 주인공이 2008년으로 돌아가 다시 열아홉 살을 살아가는 장면을 보면서 내 안에서도 작은 문이 열렸다. 과거의 나를 떠올리게 했고, 그때 놓쳤던 말과 선택들이 줄지어 떠오르곤 했다. 티빙 순위, 글로벌 기록 같은 수치도 대단했지만, 나에게는 화면을 보며 눈물이 핑 돌던 순간들이 더 확실한 증거였다.
그리고 결국 모두가 이야기하는 《눈물의 여왕》이 있었다. 화려한 재벌가와 평범한 슈퍼마켓 집안의 결혼 이야기라 했을 때는 흔한 설정이라 여겼다. 그러나 곧 알게 됐다. 이 드라마는 단순히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넘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를 다루고 있었다. 두 사람이 위기를 겪는 과정은 어느 부부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였다.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눈물겹게 이어지는 장면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주말 저녁을 텅 빈 거실에서 붙잡고 있었다. 마지막 회에 시청률이 최고치를 찍었다는 뉴스보다, 화면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던 두 눈빛이 오래 남았다.
돌이켜보면, 세 작품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내 일상을 흔들었다. 한 드라마는 복수의 통쾌함으로, 또 다른 하나는 청춘의 빛으로, 마지막은 관계의 깊이로 스며들었다. 기록으로 남은 수치와 성과도 의미가 있겠지만, 시청자로서 내가 받은 건 조금 달랐다. 화면을 따라 웃고 울던 순간, 그 시간만큼은 세상과 조금 다른 리듬으로 숨을 쉬었다는 것.
이제는 엔딩 크레딧이 모두 흘러갔지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장면이 이어진다. 소설처럼, 노래처럼, 드라마는 그렇게 내 안에 남아 한 해를 기억하게 만든다. 2024년을 떠올릴 때, 나는 아마도 이 세 드라마의 장면들을 함께 떠올릴 것이다. 이야기는 끝났어도, 마음속 재생 버튼은 여전히 눌려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