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 특성화고, 전문대 출신이라 죄송합니다

- 나는 잘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by 흰물빛

이명박 정부 시절 특성화고에 대한 지원을 늘리게 된다.

어릴 때의 나는 조언을 구할 사람도 미래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

하나 있다면 학년이 바뀔 때마다 쓰는 장래희망 칸 뿐이었다.


중학교 3 학년 때, 고등학교 원서를 쓸 때는 특성화고에서 홍보를 나온다.

학비 공짜, 교복 지원, 그리고 특성화고 전형으로는 대학을 더 잘 갈 수 있다고 했다.


16 살은 홍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다.

마케팅이라는 것은 사람을 끌어당겨야 할 때 하는 것이다.


전교 1 등도 아닌데, 집에 보탬이나 되자 싶었다.

예전처럼 전문계가 아닌 특성화고란다.

나중을 위해 실무도 가르치고 공부도 가르친다고 했다.


다들 좋은데 왜 안 가지?

엄마는 반대하고, 이모들이랑 다 나서서 반대했지만 자식 고집 누가 꺾나. 결국 갔다.


커서 보니 왜 다들 강남에서 살고 싶어하는지 안다.

겪어 봤으니 아는 거다. 면학 분위기, 동창들을 무시하지 못한다. (물론 모든 특성화고가 그런 것은 아니다.)


자기주도학습이 잘 되면 최상이지만, 보통의 중고딩들이 뭐 되겠나. 놀고 싶지.


열심히 놀고, 친구들이 갑자기 취직한대서 나도 대기업 원서 써 봤다.


2 차에서 탈락시키더라.

같이 면접 본 애들 엄마가 그 건물 8 층에서 근무한댔다.


다시 취직할까, 하다가 그냥 대학 가기로 했다.


4 년제, 2 년제 골고루 넣었다.


국립대도 붙고, 사립대도 붙고, 전문대도 붙었다.


집 근처 전문대에서 전화가 왔다.

전액 장학생이랜다.

엄마가 눈을 반짝였다.


국립대 가면 어차피 자취나 기숙사 가야 되는데 돈이 없댄다.


그렇게 전문대를 갔다.


줄곧 1 등만 했다. 매년 취업난이란다.

고작 2 년이지만 취업 안 될까 봐, 방학마다 인턴하고 학원 다니고 이력서 20 줄 만들었다.


교수님은 무슨 영업직, 운전직 가리지 말고 가란다. 니가 아무리 일 등이라도 연봉 삼천 주는 곳은 없댄다.


그래서 지도 교수님이랑 싸웠다.

편입할게요.



그러다가 운 좋게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지독한 사내 괴롭힘에 결국 다시 나는 원점이 된다.



작가의 이전글회복은 거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