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잘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특성화고에 대한 지원을 늘리게 된다.
어릴 때의 나는 조언을 구할 사람도 미래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
하나 있다면 학년이 바뀔 때마다 쓰는 장래희망 칸 뿐이었다.
중학교 3 학년 때, 고등학교 원서를 쓸 때는 특성화고에서 홍보를 나온다.
학비 공짜, 교복 지원, 그리고 특성화고 전형으로는 대학을 더 잘 갈 수 있다고 했다.
16 살은 홍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다.
마케팅이라는 것은 사람을 끌어당겨야 할 때 하는 것이다.
전교 1 등도 아닌데, 집에 보탬이나 되자 싶었다.
예전처럼 전문계가 아닌 특성화고란다.
나중을 위해 실무도 가르치고 공부도 가르친다고 했다.
다들 좋은데 왜 안 가지?
엄마는 반대하고, 이모들이랑 다 나서서 반대했지만 자식 고집 누가 꺾나. 결국 갔다.
커서 보니 왜 다들 강남에서 살고 싶어하는지 안다.
겪어 봤으니 아는 거다. 면학 분위기, 동창들을 무시하지 못한다. (물론 모든 특성화고가 그런 것은 아니다.)
자기주도학습이 잘 되면 최상이지만, 보통의 중고딩들이 뭐 되겠나. 놀고 싶지.
열심히 놀고, 친구들이 갑자기 취직한대서 나도 대기업 원서 써 봤다.
2 차에서 탈락시키더라.
같이 면접 본 애들 엄마가 그 건물 8 층에서 근무한댔다.
다시 취직할까, 하다가 그냥 대학 가기로 했다.
4 년제, 2 년제 골고루 넣었다.
국립대도 붙고, 사립대도 붙고, 전문대도 붙었다.
집 근처 전문대에서 전화가 왔다.
전액 장학생이랜다.
엄마가 눈을 반짝였다.
국립대 가면 어차피 자취나 기숙사 가야 되는데 돈이 없댄다.
그렇게 전문대를 갔다.
줄곧 1 등만 했다. 매년 취업난이란다.
고작 2 년이지만 취업 안 될까 봐, 방학마다 인턴하고 학원 다니고 이력서 20 줄 만들었다.
교수님은 무슨 영업직, 운전직 가리지 말고 가란다. 니가 아무리 일 등이라도 연봉 삼천 주는 곳은 없댄다.
그래서 지도 교수님이랑 싸웠다.
편입할게요.
그러다가 운 좋게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지독한 사내 괴롭힘에 결국 다시 나는 원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