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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성장하는 관계에 대하여

by 설영

동반성장하는 관계에 대하여

어제 관계와 다정함에 관한 책을 2권 읽고 작가들과 온라인 북토크에 참여했다. 첫 질문이 “10년 동안 관계에 대한 변화가 있다면?”이었다. 정지우 작가는 로빈 던바의 <프렌즈>라는 책을 읽고 함께 하고 싶은 사람에게 ‘시간’을 써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고 했다. 그전에는 친구라던가 관계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오히려 외로움을 선택하는 쪽이었다고 말하면서 10년이 지난 지금은 가족과 친구에게 시간을 쓰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고 했다.

나의 10년은 어떠했는지 되돌아봤다. 10년 동안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좀 바뀐 것도 같다. 그 과정에서 조금 힘든 점도 있었다. 나는 한 때 흔히 말하는 MBTI 중에서도 ‘대문자 EEEE’같이 생활하곤 했다. 일주일 7일 약속도 거뜬했다. 혼자는 거의 외출도 하지 않고 무조건 타인과 함께 했다. 나는 그때 오히려 외로웠던 것 같다. 혼자 있으면 심심하고 좀 답답함을 느꼈는데 한바탕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그런 관계의 허기가 달래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 물론 그때보다 체력이 좀 떨어진 부분도 있겠으나 스스로 외롭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줄어들어서 그런 것 같다. 결국 나는 누구에게 시간을 쓰는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왜 어떤 만남은 지치고 기가 쭉 빠지고, 다른 만남은 내 마음 즐겁고 마음이 쑤욱 커지는 느낌을 받는지 오래 고민했었다. 어제 북토크를 듣다가 다다른 생각은 결국 우리는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관계인가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의 김민섭 작가는 건강하지 못한 관계에 대해 어떻게 하는 것이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에 “손절”이라고 명쾌히 답했다. 나는 여간해서 ‘손절’을 잘 안 하는 타입이었다. 요즘은 ‘손절’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나의 학창 시절에는 ‘절교’라고 했다. 관계를 끊어 내는 것은 나에게 ‘사람을 버리는 일’ 같았다. 그래서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아서 절교라던가 손절같이 사람과의 관계를 홱 끊어 내는 일이 어려웠다.

건강하지 못한 관계도 있다는 것을, 그것에 대해 슬기롭게 대처하려면 끊어 내는 용기도 필요했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닫고 있다. 물론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다. 서로 동반성장의 기회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상황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가 불안정하고 힘드니까 우리가 친구라면 같이 불안정하고 힘들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며 동반 불안을 강요하는 관계에서 나는 조금씩 피로감이 쌓였던 것 같다.

마음을 나누고 위로를 주고받는 관계는 매우 소중하고 필요하다. 그것이 삶의 본질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위로를 주고받는 관계와 본인의 불안을 내뱉는 관계는 어쩌면 한 끗차이다. 그 핵심은 서로의 상황에 대한 이해와 상대방이 성장하기를 바라는 응원에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은 성장을 자극한다. 팔자가 좋아서, 시간과 돈이 남아돌아서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님을 알아주는 관계, 나는 이것이 동반성장 관계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성장시키는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나도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인지도 생각해 본다. 서로 만나 울고 웃으며 같이 커나갈 수 있는 사람에게 시간을 쓰며 우리가 함께 무럭무럭 자라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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