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연애의 끝 [1]

10년 연애의 끝과 그것의 의미

by 까마귀 소년

25년도 7월 저는, 10년의 연애끝에 이별하였습니다. 이것이 저한테 무슨 의미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누구 말대로 삶의 모든 것은 의미란 없는 그저 우연한 사건들의 연속 일 뿐일수도 있고, 혹은 내가 인위적으로 그럴듯한 나를 지켜주는 의미들을 부여 할 수 도 있고, 혹은 진짜 그 안에 의미가 꽁꽁 감쳐져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근데 저는 물리학자인데, 물리학자란 자연이 꽁꽁 숨겨놓은 의미를 찾는 직업입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저의 안좋은 기억력 때문에 많은 것들을 까먹고, 또 기억이 늘 그러하듯 미화작용이 되버린다 해도, 언젠간 이 모든것의 의미를 찾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헤어진 직후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들을 닥치는대로 읽었습니다. 상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상실을 겪은 등장인물들 여러명을 자살시키고, 상실을 겪은 주인공이 결말에서 이렇다할 회복을 하지 않고 끝나는 소설들을 읽으면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뭐지? 상실을 겪으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니 더 살아갈 의미가 없다는건가? 또 운이 너무너무 좋아서, 잘 맞는 사람을 만나서 상실을 안 겪으면 평생 행복하게 살수 있는거 아닌가? 하는 의문도 생겼습니다.

장편소설 7개를 읽을 때 쯤에 어느정도 답을 찾고 더 이상 하루키를 읽을 필요가 없겠다 느꼈습니다. 상실을 안 겪을 수는 있다, 그 세계는 닫힌 완전한 세계이다. 닫힌 세계란, 그 자체로 완전해서 틀린것도 없어지고 맞는 것도 없어지는 정반합을 통한 발전이 없는 세계 정도 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과 관계는 근본적으로 불안정하고 (현실 세계를 구성하는 질서랑 달라서), 세계의 깊이를 체험할수 없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세계에서 상실이란 perturbation(섭동) 인것 같습니다. 섭동 이란, 평형 상태의 시스템을 살짝 비평형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것 인데요, 예를들어,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다거나, 금속에 전류를 살짝 흘려준다던가 등등, 그러면 평형상태에선 존재 하지않는 반응이 나오게 되고, 이를통해 우리는 세계의 구조를 더 잘 이해할수 있게 됩니다. 상실을 통해 내 세계에 섭동을 취해주면 이로부터 나를 이루고 있는, 세상을 이루고있는 특성들을 이해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치유 받거나, 혹은 새로운 더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끝나는 다른 소설들 보다, 몇몇 주변인들이 자살하고, 어쩡쩡하게 끝나는 하루키 소설이 묘하게 더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연애의 구조에, 삶의 형식에 상실이라는 형식이 애초에 들어 있기 때문에, 안 겪을순 없고 이를 통해 세상을 더 느낄수 있어 지는거니깐, 내가 좀 더 성숙해진 상태로 과거로 돌아가도 결국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 글엔 결론이 없습니다 왜냐면 초반에도 말했듯이 저는 아직 답을 완전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루키가 말하고자 하는 바처럼 일단 상실을 가지고 살아가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