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연애의 끝[2]

최엘비-살아가야 해.

by 까마귀 소년



“ 빨리 끝냈어야 하는 관계를 너무 오래 끌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유 (중략)...

사람은 내가 필요한데 나는 아닌 것 같슈 (중략)...

사람만큼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유.“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주슈.


15년도 6월부터 10년 동안 이어졌던 우리의 대화는 저렇게 끝났다.


처음 저 말을 들었을 때는 너무너무 충격적이었다, 10년을 사귀었는데 거짓감정이었던 것 인가?, 그럼 나의 10년은 뭐였던 거지? 하지만 좀 지나고 생각하니 조금 황당했다. 연애 초반에는 내가 사귀자고 했고 초반엔 내가 더 좋아하고 잘해주고 한 것은 맞는데 그것도 무려 9~10년 전 일이고, 내 기억상 사귀고 2~3년 차부터는 내가 훨씬 더 많이 좋아하고 그랬던 기억은 없다. 오히려 연애 중후반부터는 나는 전여친을 위해 딱히 뭔가를 해준 적은 별로 없으며, 전여친은 나를 위해 거의 모든 것을 희생해 줬었다.


워낙 많긴 한데 대충 기억나는 것들만 써보면,


행정적인 것들 처리 못하고 혼자 어디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내가 해외 학회나 국내 출장을 가면 거의 매번 따라와 줬으며, 비행기표, 숙소, 유심 등등 모든 문제를 다 처리해 줬었다. 또 내 옷들을 다 알아서 골라서 사줬고 (사귀고 나서 내가 옷을 사본적이 없다 그래서 요새 좀 곤란하다 어디서 어떤 옷을 사야 할지 모르겠다), 훈련소 갔을 때도 논산까지 바래다주고 퇴소식 때 데리러 왔으며, 매일매일 두~세 통씩 편지를 써줬으며 또 내가 훈련소에 있는 기간 동안 너무 공허해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했다고 했다. 또 잠깐 장거리연애 할 때도 외로움이 많은 나를 위해 매일매일 2~3시간씩 통화해주고, 내가 포항에 처음 와서 연구실도 못 들어가고 친구도 없을 때 나를 위해 서울에서 인턴 하면서도 주말이면 포항까지 와줬었다 (대구에서 보거나). 또 내가 있으면 좋은 것들을 주기적으로 선물해 줬다 (좋은 이어폰, 헤드셋, 아이패드 등등). 그리고 전여친은 외향적인 성격으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 안에서 중심이 되는 것에서 자존감을 채우는 사람인데, 내향적인 나를 위해 그런 모임들 최소화하고 하루 종일 나하고만 놀아 주었었다.

반면 나는 생일 정도만 겨우 챙겨주고 돌이켜보면 딱히 해준 것이 없긴 하다.


그런데 어느 부분에서 내가 좋아해 준 것만큼 나를 안 좋아해 줬다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10년을 사귀었어도 초반 이미지가 중요한 건가?


이에 대해 우리 둘 다 아는 친한 친구가 이런 해석을 해줬다,


”사랑하는 마음 자체는 어떤 기준으로 보냐 따라 다르지만, 너는 모든 것을 전여친이랑 하고 싶어 하는 반면, 전여친은 그 정도는 아니고 (성향성 다른 사람들과 노는 것도 좋아하는데 나를 위해 억눌러줬었음) 그것을 제일 답답해해서 헤어진 거라 저것을 기준으로 “아 나는 항상 같이 있고 싶은 건 아닌 걸 보니 나는 오빠만큼 오빠를 사랑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한 것 같아. “


하루 종일 같이 있고, 모든 것을 같이하고 싶은 마음은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의 크기라기 보단, 나의 잘못된 인간관계에서 나온 (좁은 인간관계 지향, 우울함과 공허함이 큼) 왜곡된 접근인데 이걸로 기준을 삼았다니 아쉽긴 하다 (전여친 입장에선 이게 제일 지쳤던 부분이라 이게 제일 큰 문제로 느껴질 것 같긴 하다).


그럼 내가 저 문제를 해결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인간관계 넓히고 한 사람에게 많은 의존 안 하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면) 또 여기엔 쓸 수 없지만 전여친이 가지고 있는 본인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는 것 인가?

아님 아쉽지만 이 관계는 (너무나 소중한 관계였지만) 여기서 끝내고 나는 더 나아진 사람으로 다음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건가? 후자라면 뭔가 슬프고 아쉽긴 하다 이 사람을 힘들게 하고 이로 인해 내 문제를 파악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데 이 사람한테는 그 더 나아진면을 보여줄 수 없다는 점이...


사진은 헤어진 지 얼마 안돼서, 최엘비- 살아가야 해 노래에 단 댓글이다.


이 글 마지막은 최근에 나온 최엘비 노래의 가사를 (최엘비-위하여) 인용하면서 끝내겠다: “상처 줬던 여자애들아 미안해 아물었긴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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