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가사하라 메이

by 까마귀 소년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태엽을 감는 새 연대기에서는 가사하라 메이라는 캐릭터가 제일 정감이 간다. 가사하라 메이는 주인공 옆집에 사는 여고생으로, 이별로 인해 상실을 겪어서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주인공과는 조금 다르게, 상실을 겪지 않았는데 근본적으로 세계에 속해하지 못해 하는 친구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사건을 겪고, 학교에도 적응하지 못하여 집에서 쉬고 있다가 백수인 주인공과 친해지는 그런 인물이다. 가사하라 메이는 힘든 일이 겹치는 주인공에게 묘한 위로를 주는 존재로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상실의 내용이 나랑 비슷해서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많이 되는데, 주인공에게 위로해 주는 말이나 주인공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말들이 왠지 나한테 해주는 말 같아서 그런 것 같다.

“불쌍한 태엽을 감는 아저씨, 아저씨는 너무 많은 것을 떠안고 있어요” 이것도 자주 떠오르고, 최근엔 “태엽을 감는 새 아저씨, 아저씨 주변엔 왜 이렇게 여자가 많아요?” 이런 말도 해주는데 이 말도 자주 생각이 난다.

저 말에 문맥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주인공이 부인이 갑자기 주인공을 떠나간 뒤에, 주인공은 여러 여자들과 얽히는데 이성적 얽힘은 아닌데 또 어느 정도 맞기도 한 묘한 얽힘이다. 주인공 입장에선 (직접적인) 이성적 얽힘은 아니고, 또 주인공은 결국 부인이 돌아오는 게 제일 1순위인 상황이라 그 여자들은 별로 중요한 관계들은 아니라 생각하는데, 옆에서 보는 가사하라 메이는 그런 사정을 모르니 그냥 왜 이렇게 많은 여자들이랑 얽히냐라고 물어봐서 주인공 입장에선 묘하게 억울해하는 장면이다.

나도 요즘 상황이 뭔가 비슷하다 (저번 편 참조).

물론 주인공처럼 여기서 더 진전될 관계는 거의 없다, 하지만 헤어지자마자 급속도로 주변에 여자가 많아지는 나 자신을 보면서 가사하라 메이가 나한테 묻는 것 같다, “태엽을 감는 새 아저씨, 아저씨 주변엔 왜 이렇게 여자가 많아요?”
또 묻는다, “태엽을 감는 새 아저씨는, 구미코 씨가 돌아오면 받아줄 거예요?”. 나도 여전히 전여자 친구가 돌아오는 게, 혼란을 거치고 완전히 변해서 온다 할지라도, 일 순위 인가? 그건 지금은 모르겠다 [이 글 작성했던 11월 초 기준이고, 현재는 아니다 쪽에 가깝다 (12월 말)].

추가로 친한 여사친이 나한테 “넌 새로운 사람 만나면 전여자 친구랑 헤어진 걸 후회 안 할 것 같은데, 전여자 친구는 너랑 헤어진 거 언젠가는 후회할 것 같다. 너 같은 남자 잘 없으니깐”이라고 해주는데 이것도 묘한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될 것 같기도 하다. 만약 내가 전여자 친구를 그리워한다면 그건 전여자 친구랑 나랑은 너무 잘 맞았기 때문 정도일 텐데, 관계의 후반부로 갈수록 사실 관계가 더 유지될 필요는 없는 국면으로 들어섰던 것 같기도 하다.


이에 대해 솔직하게 차근차근 써보면. 첫 번째로 생활루틴의 고착화. 별다른 자극이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서 점심 먹고 카페에서 같이 일하다 저녁에 오버워치하고 집에 와서 각자 핸드폰하다 자는 루틴.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이 루틴을 유지. 일 년에 1~2번 해외여행을 가는 것을 제외하곤 별다른 새로운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시간도 매우 빠르게 갔고, 뭔가 이렇게 인생을 흘려보내면 안 될 것 같으면서도, 둘만의 완벽한 닫힌계가 형성이 되어서 여기서 굳이 바꿀 것이 무엇이 있나 싶어서 변화에 대한 생각 없이 유지를 했다. 또 거기에 더해 나중에 취업할 때까지만 유지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저 생활을 몇 년간 반복하였다.

두 번째론 생각의 고착화. 처음에는 이렇게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많은 생각 공유와 이야기들을 하고, 새로운 경험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하면서 이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너무 재밌었으나, 동기화가 다 진행된 이후엔 서로 별다른 자극이 없었던 것 같다. 개그코드가 잘 맞아서 하루 종일 개그 치면서 보내서 재밌긴 하지만 그래도 되돌아보면 고인 관계였던 것 같다. 기리보이가 저스트 뮤직을 떠나면서 고인 우리들의 관계에 환기가 필요해서라고 말을 했는데 이런 느낌이 아닐까? 나도 이제 스탠다드 뮤직으로 가고 싶다.

물론 이런 것들은 계속 관계가 유지되었으면 사소한 점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여자 친구의 장점들을 너무 사랑하니깐. 하지만 관계가 끝났다고 하고 돌아보니 저 정도 여자는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이런 생각은 관계를 정리하고, 또 새로운 인연을 받아 드리게끔 해주는 원동력이 돼준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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