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없는 푸름

by aa

연아, 계절마다 다른 향을 이름처럼 불러주고 봄의 얼굴을 다정히 외워주는, 너에게 꽃내음을 알려주는 사람도 좋겠지만 여름의 결을 알려주는 사람을 만나. 색이 아니라 온도로, 말이 아니라 파도로 다가오는 그런 사람.


햇살에 씻긴 바다의 심해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바라보다 같은 침묵으로 젖어드는 사람. 나를 장식하지 않고, 나를 피우지도 않으며 그저 한 계절의 중심에 가만히 데려다 놓는 사람.


꽃은 기억 속에서도 향을 남기지만 여름의 결은 몸에 남아 오래도록 빠져나가지 않으니까 너에게는 아름다움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니라 깊이를 건네는 사람이 오기를.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물러난 뒤에도 여전히 푸른 잔상을 남기는 그런 사람 말이야


사랑이 이름으로 남지 않아도 너의 몸 어딘가에 파도처럼 접혀 있다가 가장 무방비한 순간에 다시 숨을 흔들어 놓는다면 그 여름을 정말 무사히 지나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계절은 끝났다고 믿는 순간에도 가장 깊은 곳에서 아직 숨을 쉬고 있는데.


연아, 너를 규정하지 않는 사람 곁에서 너의 가장 푸른 계절이 조용히 머물 수 있기를. 너의 모든 순간이 설명 없이도 푸름으로 남기를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