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지 못한 편지

내 이름의 모양새가 마음에 들어서

by 한독언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아. 아니, 그냥 단순히 힘든 일이 아니라 남겨질 나를 더 지치게 할 것 같아. 매일 6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통화하며 대화를 나누던 나의 친구가 떠오른다. 정말 매일 질리지도 않고 너와 통화할 수 있는 순간을 기다렸어. 늘 같은 대화를 나눠도 웃음이 나고 재밌었지. 매일 네게 해줄 말을 떠올리며 일상을 보내고는 했고. 난 아마 다시는 너 같은 친구를 사귈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해. 내 심장이 뛰면 쿵 한 번에 '넌 이 감정을', 또 쿵 한 번에 '영원히 모르겠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는데 조급한 내 생각이 더 빨랐던 것도 같아. 우리의 이별에 나의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언제 다시 그런 우정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니 한없이 우울해져. 사람의 인생에 친구를 사귈 기회가 한정되어 있다고 믿는데 난 한순간에 그 모든 기회를 잃은 것처럼 가슴이 허전해. 너보다 내가 너를 더 사랑했다고 자신할 수 있어. 그때도, 지금도. 그러니 너는 영원히 알지 못할 거야. 심장은 무너질 듯이 쿵쿵 뛰어. 내가 한 모든 말들이 심장에 못 박히는 것 같다. 난 왜 너를 미워하지 못할까.


심장 소리를 얘기하자니 작년 겨울, 공연, 파도 소리, 서핑 그리고... 제목이 기억이 안 나네. 내가 요즘 그래.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라>! 그래. 공연을 본 뒤 친구와 늦은 저녁을 먹었거든. 날씨는 춥고, 친구의 기분은 안 좋아 보였어. 우정 관계에도 권태기가 있다고 믿어. 나는 그럴때마다 늘 몰래 선을 긋고 뒤로 도망쳐. 우리가 영영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언젠가 때가 되면 너도 나도 다시 보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고도 믿어서. 그래서 그때 '아, 이제 우리에게도 뻔하고 지겨운 순간이 오는 중인가 보다' 마냥 그렇게 생각했거든. 계속 절망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네. 나의 고독과 외로움을 다른 사람에게서 해결하지 말라던 조언들은 다 헛수고였다. 고독과 외로움을 사람에게서 받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것들을 통해 이 감정을 제어할 수 있을까.


나의 고독과 외로움은 대체 언제쯤 해결될 수 있을까. 오랜만에 일기를 적느라 상황을 잘 모를 미래의 내가 있을 것 같아서 설명을 덧붙여. 난 지금 약간 미쳐 있어. 광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야. 뇌가 과부하가 온 것인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어. 정말 곤란하게도...


그제 월요일이었던 것 같다. 화요일은 꼬박 앓았으니, 월요일이 맞나봐. 일기장에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진심이 있는 걸 알아. 아빠는 몸이 너무 안 좋았고, 엄마는 예민했고.

때로는 오히려 너무 가까운 존재일 때 더 오히려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 이 글을 박준 시인의 산문집―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서 읽은 것 같은데 맞는지도 모르겠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내 생각에 약간의 틈이 생기면 나는 무작정 두려워지는 거야. 나는 이제 엄마를 모르겠어. 평생을 함께 살아왔는데도 엄마가, '우리'가 아니라 남이고 타인이라는 것을 실감할 때. 가까운 존재조차도 끝내 타인이라는 것을 인지할 때. 엄마를 마주 보고 있는데도 엄마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엄마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때 순간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모두 박탈당한 기분이 드는 거야. 그래서 울었고, 죽고 싶은데 살고 싶어서 울었고, 내가 나를 상처 주는 것이 싫고 이후에 후회할까 봐. 또 내가 계속 포기해야 할 것들이 싫었고 종교가 미웠고 신은 정말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나를 너무 크게 상처 줘서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봐 두려웠어. 그래서 자정에 소주를 한 병 사서, 그냥 쭉 들이켜고 죽은 듯이 자자고 나를 설득했는데. 몸이 너무 안 좋았어. 너무 무리해서 술을 마셨나 봐. 몇 번을 울면서 기도했는지 모르겠어. 이제는 버티는 것도 힘들다고 생각했고.


자고 일어나서 출근하니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구토감과 두통이 계속 남아 있는 거야. 몸에는 힘이 전혀 없고 손과 팔, 발과 다리에는 계속 쥐가 났어. 해장하려고 라면을 끓였는데 인후염 때문에 한 입도 제대로 못 먹고 버렸어.


그리고 월요일 저녁. 화요일 꼬박, 수요일 저녁. 지금까지도 가슴의 공허는 채워지지 않고 나의 고통을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걱정하고 이해하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음에 개탄해.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어. 그리고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될까 봐 걱정되고. 한편으로는 내가 나의 고통을 타인에게 털어놓지 않는데 그들이 어떻게 나의 힘듦을 알겠나 싶어. 인생은 참 허무해. 산처럼 쌓아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들여다보면 다 부질없는 것들이잖아. 새로워지고 싶을 때가 있어. 나의 모든 껍질을 벗기고 다 버리고 싶을 때가. 헌 것들을 다 허물어야 새로워질 수 있다는데 내가 과연 미련 없이, 또 후회 없이 이 모든 것들을 처분할 수 있을까?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에는 늘 총량이 존재하는 것 같아. 버려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분명 알면서도 나는 내 낡은 과거에 질질 끌려살고 있네. 참으로 우습고도 형편없다.


마지막으로 편지를 적고 싶다. 편지라는 것의 의미가 대체 무언데.

가지고 싶은 것들이 있어. 포기한 것들과 자의든 타의에 의해 좌절된 것들. 다시는 찾지 못할 것들과 찾고 싶지도 않을 것들. 인생은 우습고 할 말이 없다. 여원아, 단순히 모든 것들을 다 버린다고 해서 새로운 시작이 될 수는 없단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후회하는 법을 잊을 필요가 있고, 이에는 용기를 운운하지 않을 만큼의 계기가 필요하다. 오발탄이라는 말에 대해 들었어 오늘. 적고 싶은 마음들이 많아. 나는 그를 포기하고 싶지 않고 이 마음이 이기적인 마음인지도 모르겠어. 속이 문들어지지 않게 잘 해야 한다. 나는 내가 싫어 가끔은. 싫다는 말을 적으며 속에서 솟구치는 말들과 치솟는 여러 '아니!'라는 외침. '싫지 않은 것 같은데?'와 같은 말들이 뒤따르는 것을 보니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닌 것 같다. 00아. 내 이름의 모양새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 하나로 굳은 마음을 가지고 딱 20년만 더 살아주면 안 될까. 지나온 것들에 대해 때때로 후회하기도 하고 과감해지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고 좌절도 하고 포기도 이따금 하면서. 너무 기대하지 않고 그저 살아가는 것.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그렇게... 나의 속도에 맞춰서. 죽지 말자. 우리 그의 시선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는 한 번 도착을 해보자. 그가 바라보는 세상 중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그 시선은 평생 이해할 수 없겠지만 네가 그 나이가 되었을 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혹은 그 전에 모든 것이 끝나서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지도 몰라. 네가 그에게서 이해하고 싶었던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을 테니.


잘 살자. 나랑 오래 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