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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독언 Jan 01. 2023

나의 2022년을 서술한다면

순서대로 더 라스트맨,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난세, 트레드밀 등

뮤지컬 배우 주민진이 배니싱 막공을 맞이하며 관객들에게 '진심으로 예술로서 삶이 부디 위험에 빠지시고 돌아보고 덕분에 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라는 말을 전한 적이 있다. 본 포스팅은 이 말에서부터 비롯된다. 나는 오늘 우리를 객관적인 시선에 두게 하는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출처 = 뮤지컬 배니싱 공식 트위터

내가 관람한 2022년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하고 존중하는 데 있어 힘을 가진다. 예술의 좋은 점은, 우리가 시선을 달리할 때마다 새로운 점이 새롭게 보인다는 점이다. 나는 2022년 한 해 동안 타인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수용하는 것, 또한 나 자신을 더욱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당연시하지 않는 것을 중시 여겨왔기 때문에 내가 뮤지컬을 바라보는 시선에 이런 나의 2022년의 가치관이 담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본 포스팅을 읽으며 이해해주길 바란다.


살면서 시간이 지날 때마다 더욱 가슴 깊게 공감하는 문장이 있다. 그 문장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문장들이 가장 함축적이기 때문에 더욱 단순하고 어렵다는 것이었다. 사랑하라는 말, 감사하라는 말.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듯 쉽게 사용하는 단어들이지만 이런 함축적인 문장들을 이해는 하고 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벅차게 다가올 때가 종종 있다. 이런 함축적인 문장들을 깊이 있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경험했던 바를 이야기하고 그때 겪었던 감정들을 이해시키지 않고서는 풀어말할 수 없는 것들.

출처 = 헤어질 결심 스틸컷
출처 = 헤어질 결심 스틸컷

최근 나는 사랑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문득 영화 헤어질 결심을 떠올렸다. 이 영화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전달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사랑은 생각보다 더 우리 가까이에 있고, 사랑이라는 말 없이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관객들에게 이해시키고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의 한 부면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함축적인 말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타인의 관점을 보여주고, 시선을 더욱 넓혀주며 여러 가지 경험들을 쌓아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제 화가의 창작에 대한 고뇌와 생로병사에 놓인 군인의 경험을 해볼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상황에 놓인 캐릭터들의 감정에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예술은 나를 더욱 객관적으로 만들어주고 나라는 존재를 다시 되돌아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나는 막심 고리키가 말한 '행복은 손에 잡고 있는 동안에는 작게 보이지만, 놓치고 나면 얼마나 크고 귀중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라는 문장을 종종 되새기고 곱씹고는 했다. 본 포스팅은 2022년에 관람했던 연극과 뮤지컬에서 이 점을 중심으로 다시금 내가 깨달았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동안 내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혼란스러웠던, 하지만 그로 인해 조금 더 감사하고 행복해질 수 있었던 경험과 이야기들.




본 포스팅은 이미 업로드된 후기들을 다시 수정하여 적었습니다. 전 포스팅과 동일한 문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더 라스트맨 | 2021.11.30~2022.02.13

출처 = 더 라스트맨 공식 트위터

타인 수용, 필요한 불쾌감, 나는 나의 가장 큰 선물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라스트맨은 이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뮤지컬 더 라스트맨처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불쾌감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해서는 안될 현실이라는 것에서부터 비롯되곤 한다. 실상 우리가 쉽게 일상에서 누리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내가 가진 것들을 당연시 여기지 않고 감사하게 느끼기보다, 나와 다른 타인을 비정상의 범주에 넣곤 했다. 그것과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자신이 가진 것들에 대해 감사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내가 가진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얘기들을 불쾌감 없이 전달하는 것도 예술의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이 특히 나에게는 불쾌감 없이 다가왔던,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뮤지컬들이 더욱 많아진다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넓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존자가 홀로 외로운 생일을 보내고 난 뒤 존버라는 인형을 발견하여 방공호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된다. 생존자는 존버를 발견했을 때에 존버를 바라보며 신이 자신에게 주신 선물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선물이 될 수 있지만 실상 나는 나의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존재는 나에게 온 가장 가치 있는 선물이 아닐까? 더 라스트맨은 우리가 무시하고 외면해서는 안될 현실이 담긴 뮤지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감사하고 나와 다른 타인을 혐오의 범주에 밀어 넣는 것에서 더 나아가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타인을 받아들인다면 조금 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 03.08~05.22

출처 = 쇼노트 공식 트위터

먼저 나를 수용하는 것

본 뮤지컬을 관람하면서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루스벤이라는 존재가 관람하는 관객들의 해석에 따라 온전히 존의 허상일 수도 있고, 혹은 판타지적인 존재일 수도 있으며 또 다른 존의 내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뮤지컬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에 대해 소개할 때마다 항상 존이 성장하는 내용이라는 얘기를 한다. 존이 그동안 부정해왔던 감정들을 숨기고 자신의 또 다른 내면인 루스벤을 받아들이면서 결말 부분에서는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결국 에필로그 부분에서 존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되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존이 루스벤의 등장으로 완전히 무너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던 자신의 내면을 부정하다 받아들이고 자기 혐오감에 빠져 삶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더 테일을 감상하면서 나 또한 내가 아무리 만족스럽지 않은 나의 모습이라도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타인조차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일기장에조차 적지 못하고 외면했던 속내가 있었다. 더 단순한 일로는 목소리 콤플렉스로 인해 내 목소리가 녹음된 목소리를 듣지 못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존이라는 캐릭터의 고뇌는 더욱 깊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이라 타인의 더 깊은 고뇌에 매몰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난세 | 05.31~8.21

출처 = 콘텐츠플래닝 공식 트위터

일상적이지만 나에게 너무도 중요하고 고마운 존재들

사실 난세를 관람하면서는 뭔가 깨달은 교훈점이라거나 그런 내용적인 부분은 없었다. 다만 나는 김은영 음악감독의 음악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국악 특유의 조선의 얼이 느껴지는 넘버를 들을 때마다 눈물을 쏟는 인물이기 때문에 모든 넘버들이 가슴을 울렸지만 특히 항상 눈물을 쏟으며 극장을 나왔던 것은 '잠시 잊었다' 넘버였다. 조선 건국이라는 이름으로 점점 지쳐가던 정도전은 지치지 말라는 지음 이성계의 위로를 바탕으로 더욱 굳게 마음을 다짐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에 집중하지 않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묵묵히 나의 길을 걷다 보면, 항상 나의 곁에 존재하지만 당연시 생각해서 고마움을 모르던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게 했다.


트레드밀 | 09.28~11.05

출처 =  트레드밀 공식 트위터

인생의 가치, 삶의 도덕적 규칙, 나만의 속도

사실 아주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트레드밀이라는 뮤지컬을 통해 우리는 모두 우리가 사는 삶의 가치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또한 누군가의 삶을 동정하고 부러워하지만 타인의 삶에 집중하다 보면 우리가 가진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잊을 때가 많다. 타인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는 것과는 자신의 인생만이 가진 진실된 가치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배니싱 때 집중적으로 적었던 규칙에 대해서도 다시금 말하고 싶다. 하면 안 되는 경계의 선이 분명하고 명확하게 정해진 규칙 속에서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평생을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 고민하며 살았을 것이다. 우리는 내면에 아무런 규제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어 하는 욕망이 존재할지 몰라도 평생 무엇이 옳은지 고민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


A라는 캐릭터의 방향성이 상당히 인상 깊었는데 사실 항상 A라는 캐릭터를 소개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들었다. A를 남들의 시선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자신의 인생을 B라는 캐릭터의 만남을 계기로, 결국 사랑하게 되고 자신만의 속도로 다시 살아가게 된다는 캐릭터로 소개해야 할지. 혹은 자신의 상황에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기 않고 현실에 안주하며 일상을 영위해 나가며 살아가는 캐릭터로 소개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A라는 캐릭터가 우연히 B의 핸드폰을 발견하고 자신과는 다른 세상을 사는 B를 부럽지 않다고 말하는 장면을 통해서, 사실 뮤지컬 후반부에는 자신의 인생을 마침내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핸드폰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내심 속으로 살고 싶던 현실을 투영시켜 본 것은 아닐까? 받아들이고 싶지 않던 B. 또 다른 자신의 내면마저도 받아들인 채 자신만의 속도로 인생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나 또한 나의 인생을 소중히 생각하며 남들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나의 속도로 올바르게 인생을 살아가야겠다.


배니싱 | 08.30~11.13

출처 = 배니싱 공식 트위터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 삶의 도덕적 규칙

나는 뮤지컬 배니싱의 후기를 '존재해선 안될 존재가 있을까?'라는 타이틀로 발행한 적이 있다. 배니싱은 핵심이 되는 굵직한 사건들 속에서 캐릭터들의 관점에 따라 서사와 감정선에 몰입하여 관람할 때 더 쉽게 극을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뮤지컬이다. 실상 케이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극 내내 품고 있었으나 케이의 죽음으로 인해 '케이의 존재가 세상에 있어 계속 살아가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의 가치는 소중한 것이 당연하지만 케이를 보면 자꾸 생태 피라미드를 교란시키는 생태계교란생물이 생각나곤 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스럽게 평생을 살고 싶다는 이상적이기만 한 김의신이 생각났다. 나는 김의신이 가지는 영원한 삶에 대한 열망을 통해, 우리가 자연적으로 태어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의 순리에 맞게 늙어가며 죽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가지기보다 죽음이 있기에 탄생이 있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했던 것 같다. 떠나보내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았던 결과였던 것 같다.


극을 관람하면서 '밤의 한켠에서'라는 넘버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사람을 죽이고 잡아먹는 행위가 범죄라고 말하는 의신의 말 바로 직후 케이는 그것은 누가 정하는 것이냐 묻는다. 언뜻 보면 케이의 행위들이 아무런 규칙의 제한도 없이 자유로워 보일 수 있지만,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윤리조차 잃어버린 케이가 과연 그 자유 속에서 자유로웠을까? 나는 배니싱을 관람하면서 무엇이 옳은 것이고 옳지 않은 것인지의 구분 없이 규칙 없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제한적인 삶이고 우리가 규칙 속에서 살아가기 대문에 더욱이 자유롭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성을 잃음으로 인해 케이가 인간이 되고 싶다고 해서 케이가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또한 들었던 것 같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검은 귀신이 된 직후 규칙조차 없이 살아가던 케이의 혼란스러움과 외로움이 느껴졌던 극인 것 같다.


내게 빛나는 모든 것 | 12.15~12.18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의 모든 것

사실 나는 집단 상담의 경험은 없다. 시간이 흐르고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까지도 주변에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에게 냉정한 시선을 보인다. 하지만 이 연극은 우리 주변에서 겪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불러일으키며 따뜻한 시선으로 주인공을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또한 그것뿐만이 아니라 이 연극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연극에서 가장 크게 위로가 되었던 말은 항상 내면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던 말들과 타인에게 너무도 듣고 싶지만 듣고 싶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 주인공이 나에게 전해준다는 것이다. 이 연극은 특히 죽음을 생각하고 무력감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한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연극이다. 우울증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며 무례하게 주인공을 표현하는 것과는 달랐다.


주인공이 자신에게 빛나는 리스트들을 작성할대에, 개수를 늘리기 위해서 적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자신에게 빛나는 것, 자신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적는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 리스트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것들 또한 존재하기 때문에다. 우리도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서 나에게 행복을 주고 나의 일상에서 행복을 마주할 수 있는 것들을 살펴본다면 우리 또한 더욱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포스팅을 마치며 2023년 또한 항상 변함없이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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