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원장이 된 지 넉 달, 새롭게 배운 것들

by 양소영

요즘 저는 아침 일찍 학원 문을 열고, 밤 10시에 마지막 학생을 배웅하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정치하던 시절과는 정말 다른 일상이에요.



그때는 모든 스케줄이 여의도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아이들의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며 살아갑니다.

솔직히 말하면, 작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한참 동안 방향을 잃었습니다.


‘정치인 양소영’이라는 이름 없이 나는 누구인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막막했거든요.


그동안 무인 편의점 청소부터 웨딩홀 촬영 아르바이트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자존심이 상할 때도 많았지만, 그 시간을 지나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아마 없었을 거예요.

학원을 열게 된 건 어느 날 문득 찾아온 작은 계기 때문이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고등학생 몇 명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던 중, 한 학생이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선생님, 고3까지 계속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그 한마디가 제 마음에 불씨가 됐습니다.


여의도가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 마음을 품은 채 넉 달 전, 소박한 영어교습소를 열었습니다.


이제 학원에는 스무 명 남짓의 학생들이 다닙니다.

크지 않은 숫자지만, 이름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떠오르는 소중한 아이들입니다.


영단어 하나에 끙끙대는 중학생, 대학 진학을 두고 불안해하는 고등학생들,

알파벳을 처음 배우며 눈을 반짝이는 초등학생까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제가 요즘 가장 많이 배우는 시간입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제 안에서 일어난 변화예요.


정치에 있을 때는 늘 큰 담론과 정책을 고민했다면,

지금은 한 아이의 성적이 조금 오르면 함께 기뻐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땐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상의 정치’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정치의 시작점은 이곳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물론 실제 생활은 녹록지 않습니다.

학원 운영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매달 월세와 공과금에 대한 걱정도 빠지지 않죠.


그래도 매일 밝게 인사해 주는 아이들을 보면

제가 선택한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듭니다.


최근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을 위한 무료 수업도 조금씩 늘려가고 있습니다.

거창한 교육 정책을 만들 능력은 없지만,

제 앞에 앉아 있는 한 명, 한 명에게는 분명히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요.

30대 중반, 낙선한 정치인에서 동네 영어학원 원장이 되기까지..


누군가는 실패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저는 이 또한 제 인생의 한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특별한 공간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관계 맺는 그 과정 자체가

정치라는 것을 요즘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학원을 운영하면서 우리 사회의 교육 격차가 생각보다 훨씬 더 일찍, 더 깊게 벌어진다는 걸 매일 느낍니다.


초등학생인데 이미 영어를 포기해버린 아이,

맞벌이 부모님 때문에 여러 학원을 돌며 시간을 보내는 아이,

대학입시만을 위해 공부하는 아이,



이 아이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요즘에 제가 가르치는 중2 학생이 있어요.

be 동사도 모르던 아이였는데, 알고 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학원을 다녔지만

뒤처지기 시작하면서 결국 포기해버린 거였죠.



그 아이와 4개월을 함께 하며 깨달았습니다.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한 번 뒤처지면 다시 올라올 기회조차 주지 않는 ‘구조’라는걸요.



비록 이곳은 공교육이 아닌 작은 학원이지만,

적어도 제가 가르치는 이 공간만큼은


누구도 뒤처지지 않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배움의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정치’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교육에서만큼은 다시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