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뭐라고

일단 손 들어!

by 윤슬빛

지금은 저출산 문제로 학교가 없어져서 문제지만

나 때는 애들은 많은 데 갈 수 있는 학교가 없어서 문제였다.


나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3월에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책가방, 실내화, 신발주머니, 공책, 연필 등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일단 모든 물건에는 이름을 대문짝만 하게 썼다.

그리고 학교 가기 전날 엄마는 연필 깎는 칼로 연필심 끝이 부러지지 않게 살살 조심조심하게 뾰족하게 깎아주셨다.

(엄마는 늘 엄하고 무섭고 버럭 같은 호통과 등짝 스매싱을 주셨지만 나와 내 동생을 빈틈없이 살뜰히 챙겨주셨다. 가게일과 시할머니, 시어머니, 시아버지와 함께 하는 큰 살림을 혼자 짊어지셔서 늘 마음의 여유가 없으셔서 더욱 나와 내 동생을 급하게 다그치셨던 것 같다.)


학교 가기 며칠 전부터 엄마의 끊임없는 신신당부가 이어졌다.

"물건 잘 챙겨, 아무 데나 놓고 잃어버리지 말고!"

"응 알았어요"

"잃어버리면 다시 안 사줄 거니까! 응? 알았지?"

"네"


"그리고 담임선생님이 물어보시면 손 번쩍번쩍 들고 대답 잘하고! 큰소리로~ 응! 틀려도 창피한 거 아니니까 알았어? 출석 부를 때도 크게 네! 이렇게 하라고~ 개미콧구멍하게 대답하지 말고"


"네"

"아 크게 대답하라고!"

"네!!"


드디어 등교 첫날!

사실 정확히 어떤 기분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단지 엄마가 눈이 치켜떠질 정도로 머리를 바짝 묶어주셔서 머리가 아팠다는 느낌. 시장에서 큰 마음먹고 사주신 해바라기 모자 핀을 그 위에 꽂아 주셔서 기분이 좋았다는 것... 이 정도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 성함 "김 순 희" 선생님이셨다.


나는 오전반이었다.

88년도에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국민학교에 자리가 부족했다.

그래서 입학한 아이들이 1학년때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서 학교에 갔었다.

나는 1학년 1학기때는 오전반이었고 2학기때는 오후반이었다.

우리 반은 53명이었고 1 분단부터 4 분단까지 있었다.


정확하게 입학한 첫날인지 둘째 날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출석을 부르신 선생님께서 갑자기

"반장 할 사람 손들어봐~"라고 얘기하셨다.


손들어봐.....

엄마가 일단 선생님이 뭐 시키시거나 물어보시면 손을 번쩍번쩍 들라고 했었지.


"저요"


"아 그래? 그럼 네가 1학기 반장해. 그럼 조회 끝나고 선생님 따라와 봐"


"네"


나는 그렇게 국민학교 1학년 1학기 반장이 되었다. ㅎㅎㅎ


투표도 아니고, 그냥 선생님이 손들라고 했는데

가장 먼저 손들어서 반장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반장이 뭔지도 잘 몰랐다.

그냥 그런 게 있나 보다 했던 정도.


집에 가서 엄마에게 반장 됐다고 말씀드리자 엄마는 세상 밝게 웃으셨다.


"진짜? 어머! 어떻게? 어떻게 반장이 됐어? 벌써 반장선거 했어?"


"아니요. 반장 할 사람 손들라고 해서 손들었더니 선생님이 그냥 하라고 해서..."


"아~ 그래? 뭐 그래도 뭐 반장은 반장이니까! 반장이 무조건 선생님 다음이야~ 그러니까 얼마나 좋은 거야~ 그렇지? 반장을 벌써 뽑을 줄 몰랐네~ 암튼 잘했어~ 거봐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니까 반장도 하고 얼마나 좋아~ 그렇지? 엄마는 학교 다닐 때 맨날 반장 했었어~"


오랜만에 엄마가 하던 일까지 멈추고 나를 보여 크게 웃으면서 오래 얘기하시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나는 정확히 반장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지만 그냥 엄마가 너무 좋아하니까 그냥 좋았다.


그리고 며칠 뒤 엄마는 큰 사골냄비 한가득 식혜를 해서 학교에 오셨다.


무거워서 끙끙거리셨지만 조금이라도 흘릴까 싶어 조심조심 냄비를 이쪽 손 저쪽 손으로 옮겨가며

학교에 같이 가셨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반장... 그게 뭐라고

엄마는 그렇게 단비처럼 활짝 웃으셨을까...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20대 중반쯤? 암튼 나중에 커서 그때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엄마, 반장 그게 뭐라고 그때 식혜까지 해서 학교에 왔었어?"


"얼마나 대견해~ 학교 들어가자마자 반장 한 게"


"아니 투표해서 된 것도 아니고 그냥 손 빨리 들어서 된 건데 뭘. ㅋㅋ"


"어쨌든 반장 된 게 중요한 거지~ 너 그때 같은 반이었던 예경이 엄마가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알아? 예경이한테 모지리같이 손도 빨리 못 들었냐고 난리 쳤었데."


"아 진짜? 그 아줌마도 유난이셨네?"


"아휴~ 예경이 엄마가 샘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때도 엄마 마음이 잘 이해가 안 갔는데

요미를 낳고 요미가 유치원에 다니면서.. 나도 그때 엄마 마음을 살짝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그게 설령 내 자식이 잘나서가 아니라 운이 좋았던 거였더라도

그냥 내 자식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기분 좋고, 감사한 마음이 한가득 들게 되는 게... 엄마 마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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