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 수상록

어슬렁거리기, 책장

by 똑똑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읽을 때가 있다.

장소에 따라서는 일하는 곳, 거주하는 곳, 이동하는 곳

시간대에 따라서는 새벽, 오전, 잠들기 전, 그리고 주말.

상황이나 장소에 따라 다른 책들을 읽다보니 벌어지는 현상이다.

최근 읽은 책들 속에서 놀랍게도 반복적으로 '몽테뉴의 수상록'을 만나게 되었다.

여태껏 많이 언급되었지만 내가 인지를 못했던 걸까?

특별히 그런 책들만 최근 우연히 읽은 걸까?

아무튼 그 책들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며 내 손에 그 책이 들어오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억지로 시키면 하기 싫은 법, 내 손에 결국 와닿은 몽테뉴는 며칠을 나에게 찬밥 취급을 받고야 만다.

모른척 하고 있자니 괜시리 신경이 쓰여 시간대는 잠들기 전, 장소는 침대 위로 자리 잡고 내 삶에 들어와 앉았다.

글밥이 많지 않아 자기 전 하루에 하나의 이야기만 조금씩 읽자는 마음으로 읽었더니 다 읽는 데 오래 걸렸고, 처음 내용은 기억이 잘 나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일단 기억나는 대로 감상을 남겨본다.

결론은,, 잠들기 전 하는 단 하나의 생각이 결국엔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결국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었다.



몽테뉴는 16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사상가이다.

에세이라는 글쓰기 장르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에쎄'를 남겼고, 국내에서는 이것이 수상록이라는 제목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에쎄'는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담고 있고, 특히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죽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곧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된다.

죽는 것 자체에 대한 시각을 바꾸니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도 그에 따라 달라짐을 느낀다.

몽테뉴는 종교 전쟁과 페스트로 인해 죽음의 그림자가 깊었던 시대를 살았고, 낙마 사고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으며, 어린 시절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경험했다.

죽음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내려놓게 된 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그림자다.

하지만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깊이와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몽테뉴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회피하기보다는,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는 죽음을 통해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강조한다. 그의 에세이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걷어내고, 삶의 매 순간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노트에 쓴 몇몇 문장들을 적어보며 글은 마무리.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나답게 되는 법을 아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앎은 삶을 이해하는 방법의 일부일 뿐이다. 죽음에 대한 염려에 무게를 실어주지만 않는다면 이는 가벼운 삶의 요소일 수 있다.

-육체적인 고통 자체보다 그것에 대한 생각이 우리 감각에 더 영향을 준다.

-우리의 욕망은 우유부단하고 변덕스럽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것도 제대로 차지하거나 즐기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사물의 결함 때문인 줄 알고 잘 알지도 못하는 다른 것들로 채우고 즐긴다.

-아무도 자기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를 충실하게 누릴 줄 아는 것은 절대적이며 숭고한 일이다.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지 않기 위해 다른 조건을 구하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채 자신에게서 벗어난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형식에 질서 있게 들어맞으며, 비범하지만 부조리가 없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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