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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어슬렁거리기,책장
by
똑똑
Dec 7. 2024
“카뮈의 어둡고도 순수한 작품 속에서 미래의 프랑스 문학의 주된 특징들을 식별해 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고전적인 문학을 약속한다.
그 문학은 아무런 환상도 주지 않지만 인간성의 위대함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고, 가혹하지만 불필요한 폭력은 배제하는, 열정적이지만 절제된 문학이다.”
ㅡ사르트르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았지만 신분 상승 욕구나 야심이 없고 생활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 이상할 정도로 주위에 ‘무관심한’ 뫼르소는 우발적 살인 이후 세상에서 ‘이방인’이 되어 버린다.
진실을 왜곡해 자신을 도우려는 변호사도, 하느님을 통해 뫼르소를 감화하려는 재판관도, 구원을 위해 그를 찾아온 사제도, 그 누구도 뫼르소를 진정 이해하지 못하고 뫼르소 역시 주위 세계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뫼르소는 자기 자신의 사건에서조차 철저히 소외되고 만다.
자기 스스로의 밖으로 쫓겨난 듯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낯섦을 느낀 뫼르소, 여기엔 이 세계의 불투명한 어둠, 부조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하다.
인간은 항상 부조리를 느끼는 것일까?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관성적인 삶을 살아가는 동안 인간은 부조리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소설에서 뫼르소가 선택하는 거의 자살에 가까운 죽음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부조리를 각성하지 못하는 인간의 삶의 가치는 0에 수렴하므로 이런 삶을 아무리 오래산들 삶의 가치는 0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부조리를 각성한 삶의 의가치는 무한대에 수렴하고, 6개월을 살든 1년을 살든 그 삶의 가치는 무한대에 가까웠을 것이다.
삶의 부조리를 각성한 뫼르소의 선택은 후자였을 것이다.
나는 대부분의 책을 독서 노트에 글을 옮기며 책을 읽는데, 그의 죽음 앞에 있는 글들을 거의 한 문장도 빼놓지 않고 그대로 옮겨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죽음 앞에는 죽음과 완전히 대립되는 단어들, 새로운 출발, 삶, 생명에 관한 단어들이 폭포수처럼 솟아나왔다.
마치 그 큰 분노로 나의 고민이 씻겨 내려가고 희망이 비워진 것처럼, 신호와 별이 가득한 오늘 밤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에 마음을 열었다.
나와 너무나도 닮은 세상이 그야말로 형제처럼 생각되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도록,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사형되는 날엔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좋겠다.
총 148쪽의 비교적 짧은 글의 소설이다. (내가 구입한 판형으로는!)
주말 오후의 나른함을 떼워보고자 잡았던 이 책은 저녁 식탁 위까지 스르르 타고 올라왔다.
오늘 하루는 하루종일 '이방인'이었다.
군더더기 없고, 절제되어 있는 문체가 특징이다. 매력있었다.
그것이 페이지 수만 늘이려는 각종 미사어구에서 벗어나도록 해주어 더없이 읽기 좋았다.
통속적인 감정으로 애써 꾸며내지 않고, 지독하게도 솔직하다.
설명, 증명을 하지 않으며 그저 묘사한다.
다소 비극적인 이야기로 이야기는 시작되지만, 뒤에 이어지는 뫼르소의 일상들은 그저 평범했기에, 특별할 것 없는 그의 삶에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조금 외로워 보이기는 했지만, 누구나 그렇지 않나. 하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그와 그의 주변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 보았다.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대부분의 계절적 배경은 여름이다.
이것이 우연이 아닌 것 같은 건, 초판본 표지에도 그려져 있는 해는 내지에도, 이 책 전반적인 내용에도 중요한 장면마다 등장하기 때문이다.
책에는 세 가지의 죽음이 등장한다.
어머니의 자연사, 뫼르소의 아랍인 살해, 뫼르소의 사형.
인간은 누구나 죽지만 그 부조리성에 대해 생각해보지는 않는다.
부조리성만 따지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머니의 자연사에서, 아랍인을 살해했을 때조차 죽음에 대한 부조리성은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죽음 앞에서 그것을 깨닫게 된다.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지만 인간은 생애 전반에 걸쳐 자신을 둘러산 세계와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도, 추구하는 바를 모두 이룰 수도 없으며, 종국엔 죽음에 이른다.
뫼르소가 항소하지 않은 건, 부조리함에 어쩔 도리가 없음을 그저 받아들인 때문이겠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고 사형을 당하는 처지에 놓인 게 나라면?
이런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에 놓여진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선택이라는 걸 할 수는 있을까?
아랍인 살인죄로 기소되었으나 실제 살인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엄마의 죽음 앞에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 냉혈한이라는 죄목으로 도덕적 심판을 받는 뫼르소.
가까운 이들의 증언은 철저히 무시당하고, 대중이 보는 자극적이고 피상적인 이미지만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걸 보며 현대사에서 개인의 고유성을 말살하는 게 얼마나 쉬운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에겐 실존과 진실만이 키치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보이지 않고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한 상징과 거짓을 거부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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