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열두 살. 보통은 '중2병'이라 부르는 심각하고 우스운 상태가 조금 일찍 찾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꼭 열두 살에 온다. 열한 살도 아니고 열세 살도 아니다.
4학년도 아니고 6학년도 아닌 나이.이 책은 결국 나를 어린 시절, 그것도 딱 초등학교 5학년으로 데려다 놓고야 말았다. 세 명의 아이들이 등장하고, 시간은 성인이 된 현재와 아이였을 때가 교차된다.
계란프라이 자판기를 본 적이 있다는 한마디에 모임을 만들고, 자판기를 찾는 여정을 겪으며, 그것들이 사춘기의 감정들과 엮여 전개된다. 독특한 소재였다. 계란프라이 자판기라니. 그것이 실제로 존재했던 거라고 해서 놀라웠다. 반숙, 완숙을 선택할 수도 있었고, 소금을 칠지 안칠지도 선택할 수 있었다. 표지이미지나 제목만을 봤을 때 밝을 줄 알았던 이야기는 대책없이 차갑고 서늘하고 막막했다. 소외된 현실, 그 현실의 고달픔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주어진 삶에 적응을 해 버리면 십대도 마치 어른과 같은 삶을 산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주인공 지나는 평범한 소녀였다. 그 시절 초등학교 5학년들이 가지는 평범한 생각을 하고, 비슷하게 첫사랑을 경험한다. 현재 지나는 시나리오 작가이다. 현재의 지나는 어느 날 부고 문자를 받게 된다.
고 한지택.
한지택은 지나가 12살 때, 서울에서 전학을 온 친구였고, 조금은 특별했다. 지택이는 점심시간에 지나에게 식판을 내밀며 고기는 먹지 않으니, 야채를 달라고 했고, 그것이 동물의 권리를 침해하는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공장식 축산 산업에 대한 항의의 표시라고 설명했다. 지나는 그것이 왠지 멋있는 표현인 것만 같다. 어떻게 저런 표현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해지고, 지택에게 관심이 생긴다. 그런 지택의 관심을 끌기 위해 나온 말이었던 계란자판기. 그것은 지택이도 알고 있었고, 지택의 제안으로 친구들은 계란프라이 자판기를 찾으러 떠나게 된다.
어른이 된 지나가 지택의 빈소를 찾으며 사람들을만나게 되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교차되면서 이야기가 구성되는데, 과거의 일이 현재까지 연결되면서 아이들은 옛 일을 떠올리며 그 때의 일들을 하나둘 떠올려 보게 된다. 아이들이 녹화를 해가면서 찾은 계란프라이 자판기는 글의 제목, 사건의 흐름을 구성하는 중요한 소재지만 그것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었다.
지택은 태어났을 때부터 외로운 아이였고, 편견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힘들었다. 다름이 편견이 되어 돌아왔고, 그런 생각을 하는 어른들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조금은 불편한 상황과 대화들에 적응하기 힘들기도 했지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들이 매끄럽게 이어져 있어 이어 읽기에 거부감이 없었다. 책을 다 읽고 생각해 봤는데, 책을 읽을 때 나를 불편하게 만든 건, 내가 딱 지나의 나이였을 때, 그 때만 할 수 있었던 생각이나 행동들, 그 때 나만 하는 것 같던 공상들이 아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산발적으로 마구 떠올라서 그것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읽다보니 나중에는 웬만한 은어나 욕설이 나와도 괜찮았다. 그때쯤에는 이야기에 동화되어 내가 이미 그 때의 나로 돌아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 속에도 스스로 그어 놓은 선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돌아보게 된다. 그것이 다름이 아니라 틀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길 바래본다.
감각하는 세상의 규모와, 느슨하게 연결되는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의 빈도, 그리고 무엇보다 고개를 바짝 들었을 때 하늘이 먼저 보이는지 아니면 건물의 10층, 20층을 감싸고 있는 유리창과 외장재가 먼저 보이는 지에 따라서 사람의 마음과 인식은 천차만별로 간극을 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