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중에 오스트리아에서 학회가 있어서 참석하게 되었는데 함께 가겠냐고. 늘 꿈꾸었던 아이들과의 유럽 여행이었기에 반갑게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것이 3월 초였다.
며칠 후, 친정엄마께 전화를 드렸는데 허리가 안 좋으시다고 했다. 지방 소도시로 귀촌하신 엄마를 모시고 와서 병원에 가는 것을 시작으로 한 달 반 동안 치료와 시술을 하게 되었다. 허리 시술을 하다가 우연히 머릿속에 뇌동맥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치료 기간이 길어지게 된 것이다.
언제나 강하던 엄마가 수술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엄마 앞에서 울지 않기는 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최면을 걸었다. '엄마는 다 괜찮아지실 거고, 나는 아무 탈 없이 여행을 가게 될 거야. 가장 멋진 곳에 가서 실컷 울어야지.'
사실 여행을 갈 수 있나 없나는 이미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것에 잠시 기대어 위로받고 싶었을 뿐.
눈부신 봄날을 그렇게 보냈다. 밖에는 봄 꽃이 지천인데, 병실에 있는 엄마를 생각하면 그마저도 서럽게 느껴졌다. 다행히 엄마는 모든 과정을 잘 이겨내시고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와 주셨다.
집으로 가시면 또 일을 하실 것 같아서 우리 집에 붙잡아 두고 온갖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누군가에게 잔소리하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다니.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할머니~~"하고 들어올 수 있는 것이 이렇게 큰 기쁨이라니.
엄마가 점차 회복되셔서 나는 조심스럽게 캐리어를 꺼냈다. 나 때문에 여행준비도 제대로 못했구나, 미안해하시는 엄마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 이 여행은 엄마가 나 보내주는 거야. 엄마가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당연히 다 취소하려고 했어. 그런데 엄마가 좋아져서 우리 여행 보내주시는 거예요. 고마워. 잘 다녀올게."
나는 파워 J형이다. 지금까지 몇 번의 여행에서 나는 거의 모든 것을 미리 알아보고 계획했다. 이동방법, 거리와 시간, 주변 식당과 마트가 문 열고 닫는 시간까지도. 그런데 이번에는 그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엄마의 컨디션이 어느 정도 올라오기 전까지는 여행을 떠올리는 것조차 죄송했으니까.
아, 우리 갈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을 때부터는 짬짬이 큰 것부터 해결했다. 비행기 표와 대략의 나라는 결정했으니 다음에는 숙박과 이동수단을 결정할 차례였다.
오랜만에 가는 유럽,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욕심이 생겨 너무 많은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나도 나이가 있는데 렌트로 편하게 가볼까?예전의 기차여행 참 좋았었는데.. '텐트 밖은 유럽'을 보니 캠핑도 낭만있겠다. 비행기로 이동시간을 아끼는 건 어떨까?